우리들의 영원한 국가대표

by Honey

2017년 8월 14일 월요일,


아침부터 휴대폰이 소란스러웠다.

평소 주변인들과 살갑게 연락을 주고받는 성격은 아닌지라 용건이 없는 연락들은 잘 오가지 않는 편인데..

특별한 날이 아니었음에도 다수의 지인들에게 메시지가 계속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나도 모르는 '내 일'이 어디서 벌어지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

'무슨 일들이야, 대체?'

맨 위에 수신된 메시지부터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고,

받은 메시지들을 읽어갈수록 여러 복잡한 마음의 표정들이 내 얼굴에서 다 드러나지고 있었다.


[이동국 국가대표 발탁]

2014년 10월 14일이 동국이형의 103번째 A매치였으니 정확히 2년 10개월 만이었다.

혹여나 그때가 마지막일까 싶어 늘 노심초사하기도 했던 탓인지 많이 감격스러운 게 먼저였지만, 조금의 걱정이 앞서는 마음도 감출 수는 없었다. 당시 국가대표팀의 감독이었던 '신태용'감독이 동국이형을 정신적 리더로서의 역할이 아닌 실제 경기에 보탬이 되고자 뽑았다는 이유를 들긴 했지만,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근데 이 사람들 국가대표에 뽑힌 건 동국이형인데 왜 나한테 축하를 하고 그래.. 고맙게... 엉엉...)




2017년 8월 31일 목요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9차전, 이란과의 홈경기가 상암에서 열리는 날,

동국이형의 A매치를 직접 보러 상암으로 갔어야 마땅한 날이었지만, (국대 발탁을) 정말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아주 한참 전, 엄마와 여동생과의 여행을 미리 계획한 날이 마침 오늘이었다.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엄마랑 동생까지 버리고 축구를 보러 갈 수는 없는 노릇, (더욱이 지금까지도 가족들은 나의 축구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대신 1박 2일의 짐에 동국이형의 국가대표 유니폼을 챙겼다, 엄마 몰래.

여행지가 홍도였던지라 오는 길 내내 뱃멀미로 고생하신 엄마가 일찍 쉬실 수 있게 협조하는 큰딸이 되기 위해, 아주 조용히 유니폼을 갈아입고, 더 조용히 휴대폰으로 동국이형의 A매치 104번째 경기를 마주하고 있었다.


떨림 속에 경기가 시작됐고, 보는 내내 화가 났다......

경기 내용? 터지지 않는 득점? 둘 다 물론 문제였고, 상대 선수의 퇴장으로 수적 우세의 상황임에도 답답한 경기력은 정말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이럴 거면 우리 동국이형 왜 데려간 건데!!

그래, 선발은 바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분위기 반전을 위한 교체가 필요한 타이밍엔 썼어야 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경기력을 선보이며 동국이형을 교체 카드로 꺼내 든 시각이 무려 88분,

맞다. 축구 90분 동안 하는 스포츠다.

물론 몇 분의 추가시간이 더 있긴 하겠지만 그래도 88분? 화가 난다, 정말.

이러고도 실제 경기에 보탬이 되고자 뽑았다고 말할 수 있었는지 아주 큰 의문이다.

결국 이란과의 9차전 경기는 0:0 무승부로 무기력하게 끝이 났고, 동국이형의 A매치 104번째 경기도 이렇게 허무하게 기록되고 말았다..

동국이형의 104번째 A매치, 근데 교체 시간이 88분? 이 정도면 나랑 싸우자는 거지, 지금?



2017년 9월 5일 화요일,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 10차전, 우즈벡과의 원정 경기가 열리는 날,

이번에 선발된 국가대표선수들이 치르는 2연전의 두 번째 A매치다.

(동국이형의 마지막 A매치는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9차전 경기를 이겼으면 좋았을 것을 결국엔 마지막까지 왔다. 이 경기를 이기면 본선 진출이 확정이지만 상황에 따라선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게 된 것이다.

객관적인 전력으로도 우즈벡보다는 대한민국이 앞선다고 평가를 받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겠지만.

더욱이 지난 경기의 분위기 반전과 자력 진출을 위해서도 승리가 꼭 필요한 대한민국이었다.

그래, 이번 경기도 선발은 바라지도 않았다. 마음을 조금은 비운 채 경기가 시작됐고, 지난번 경기가 워낙 최악이었던 터라 그보다는 좀 나아진 정도였지, 희한하게 이번에도 좀처럼 우즈벡에게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대한민국이었다.


'교체하자, 얼른, 분위기 좀 바꿔줘, 제발'

비단 동국이형 편을 들어서가 아닌 무득점을 깨기 위한 분위기 반전이 정말 필요해 보였다.

하지만 참 고집도 '쎈' 양반.. 이 경기에서도 결국 동국이형은 78분이 되어서야 그라운드를 밟을 수 있었고, 더욱이 마음을 아프게 했던 건 그 짧은 시간에도 두 번의 위협적인 슈팅을 보여주며(한 번은 골대까지 맞췄다), 혹시라도 더 많은 출전시간이 주어졌더라면 얼마나 더 많은 기회들이 있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결국 마지막 10차전 경기도 0:0 무승부를 기록하긴 했으나, 다행히 2위 자리를 지키며 월드컵 본선으로는 향할 수가 있었고, 동국이형은 2년 10개월 만의 국가대표 두 경기에서 고작 15분여의 출전시간만을 부여받은 채 경기장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동국이형의 마지막이 된 105번째 A매치..


그리고 결국 이날의 105번째 A매치는 동국이형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뛴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한때는 무릎에 붕대를 칭칭 감고, 청소년 대표, 올림픽 대표, 성인대표팀까지 오가며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던 형이었다. 그런데도 참 유난히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던 형.. 단순히 2010 남아공 월드컵이 마지막이라서가 아니라,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가지고 있을 그 진한 아쉬움이 왜인지 모르게 함께 느껴지고 있는 것 같아서..

서른아홉, 비록 그날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실제 경기장을 누빈 마지막 순간이었다 하더라도, 내 마음속에 동국이형은 영원히 우리나라 최고의 축구 국가대표선수임에 틀림이 없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를 앞두고 신태용 감독은 당시 동국이형의 출전 가능성에 부정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동국이형의 발탁 여부에 관한 질문에 '이동국 선수가 나이에 비해 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젊은 선수들에게 양보할 뜻을 보였다'라고 하면서 '본인이 물러나야 후배들이 성장할 수 있다'라는 말까지 동국이형이 전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월드컵에서는 K리그 팀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국 선수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라고.. 사실상 동국이형을 뽑지 않겠다는 생각을 이따위로 말한 것이고, 더욱이 놀라운 건 동국이형은 저런 말들을 한 적이 없다. 선수 본인 스스로 국가대표를 은퇴하겠다 단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데, 이건 뭐 이 정도면 은퇴를 당했다고 해야 하나?>











#이동국 #축구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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