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17일 일요일, 포항 원정,
A매치 이후 두 번째로 치러지는 리그 경기였다.
내가 보기엔 본인도 썩 온화한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포항의 '양동현'선수가 이 경기 약 한 달 전, SNS를 통해 우리 팀의 '조성환'선수를 공개 저격하면서 두 팀이 맞붙기도 전에 이미 분위기는 한껏 달아오른 상태였다. (조성환 선수의 가끔은 도를 넘었던 파울들까지 옹호할 생각은 전혀 없다)
경기를 이겨야 할 이유가 이미 분명했지만, 나에겐 다른 이유에서도 꼭 '잘해야만' 하는 경기였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고작 15분을 뛰게 하려고 온갖 언론플레이를 해가며 동국이형에게 상처를 낸 많은 사람들에게, 선발로 뛰는 경기인만큼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줬으면 하는 경기였기 때문이다.
간절함 속에 경기가 시작됐고, (근데 축구 왜 매일 간절해..)
일촉즉발의 상황처럼 경기가 진행될 것만 같던 예상과는 다르게 킥오프를 한 지 1분이 채 되기도 전에, 동국이형이 한교원 선수에게 로빙 패스로 내줬던 볼을 다시 받으면서 그대로 때린 슈팅이 포항의 골망을 흔들었고, 그렇게 40초 만에 첫 번째 골을 기록하게 됐다. 이른 시간 득점에 원정팬들은 크게 환호하기 시작했으며, 이 첫 번째 득점은 이날 경기의 전초전에 불과했다.
포항의 수비진들은 이른 시간부터 넋이 나간 것처럼 헐거워지기 시작했다. 전반 14분쯤엔 그 틈을 노린 이승기 선수가 탈취한 볼을 문전 앞의 이재성 선수에게 밀어줬고, 볼을 받은 이재성 선수가 그대로 득점으로 마무리하면서 본격적으로 경기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그러기를 이날 경기의 가장 결정적인 장면이 나왔으니, 전반 29분쯤,
한교원 선수가 슈팅한 볼을 포항의 골키퍼가 쳐내긴 했으나, 이후 포항의 안세희 선수(오죽했으면 이날부터 기억한 이름이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있다)가 위험 지역에서 제대로 볼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이재성 선수에게 무기력하게 볼을 뺏기게 됐고, 그 볼을 소유한 이재성 선수는 문전으로 쇄도하던 동국이형에게 곧바로 패스를 했으며, 포항의 골대 앞으로 돌진하던 동국이형이 이재성 선수에게 받은 그 볼을 그대로 슈팅하면서 팀의 세 번째 득점까지 만들어 낸 것이다.
(당연히 동국이형의 득점인 줄 알았던 이 골은 미처 문전 앞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한교원 선수의 '발뒤꿈치'를 맞고 들어가면서 득점자가 바뀌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겼다. 그로 인해 동국이형은 득점이 아닌 도움을 기록한 셈)
경기시간 채 30여분이 되기도 전에 팀의 압도적인 경기력과 무엇보다 보란 듯이 날아다니는 동국이형을 보고 있자니, 그간 쌓였던 설움에 오늘의 감격까지 더해져 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런 형을 데려다 그것들은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나 울어, 진짜..'
불과 열흘 전, 본인조차 마지막이었는지 몰랐을 그 소중한 기회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무것도 보여줄 수가 없던 그때의 마음은 정말 얼마나 복잡하고 힘들었을까.. 마치 오늘을 기다렸다는 듯이 뽐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후반이 시작되고 나서 포항에게 페널티킥을 내줄 뻔한 고비가 있긴 했지만, VAR(비디오 판독- Video Assistant Referees)을 통해 정정이 됐고, 이후에 오히려 기회를 잡아 골키퍼가 길게 킥을 한 볼을 이번엔 동국이형이 헤딩으로 방향만 살짝 돌려주면서, 수비수 사이를 절묘하게 파고들며 문전을 향해 달리던 이재성 선수에게 정확히 배달이 됐고, 이후 골키퍼까지 재친 이재성 선수가 추가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이로써 동국이형은 오늘의 경기에서만 (2골 1도움 같은) 1골 2도움을 기록하면서 자신이 왜 대한민국 최고의 공격수라 불리는지 몸소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여기에 추가로 엄청난 대기록까지 세워졌으니 오늘의 도움으로 K리그 최초 70-70(70득점-70도움)클럽에까지 가입하게 된 것.
구태여 많은 말들로 설명하지 않는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이 뛰고 있는 그라운드에서 직접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공평한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고 불평 한마디 하지 않는다. 서른아홉의 축구선수가 '살아있는 레전드'라 불리며 여전히 그라운드에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보여줄 뿐이다.
우리 동국이형의 축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동국 #K리그레전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