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원정 이야기
한 해 쉬어갔던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이 다시 시작됐다.
지난 시즌 K리그 우승팀의 자격으로 참가한 2018년 ACL에서 전북현대는 일본의 '가시와 레이솔' (또?), 홍콩의 '킷치 SC', 중국의 '톈진 취얀젠'과 한 조를 이루게 됐다.
시즌의 첫 번째 경기는 진짜로 '또' 만난 J리그 '가시와 레이솔'과의 홈경기였다.
지금까지의 상대 전적이 1무 5패일만큼 가시와 레이솔만 만나면 한없이 작아지던 우리였는데..
다시 만난 가시와 레이솔은.. 역시나 쉽지가 않았다. 근데 이렇게나 계속 털리면 너무 억울하잖아?
경기가 시작되고 전반에만 2골을 먼저 내주며 이번에도 역시나 이길 수는 없는 것인가.. 하고 좌절에 가까운 하프타임을 보내고 왔더니, 후반에 완전 다른 팀이 되어 돌아와서는 세 골이나 몰아치며 드디어 가시와 레이솔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게 됐다. 그것도 역전승을. (네, 우리 동국이형이 두 골이나 넣었다지요..)
이렇게나 시즌의 출발이 좋았다.
일주일 뒤엔 ACL 조별 2차전 킷치와의 원정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지난해에 떠나지 못한 해외 원정의 한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사실 나는 ACL 조편성이 나오자마자 홍콩행 비행기를 알아보고, 호텔을 예약하며 이미 일정을 잡아둔 상태였다. 늘 만나던 일본과 중국도 아닌 데다, 원정을 가기엔 엄두조차 내기 쉽지 않은 동남아나 호주도 아닌, 홍콩의 팀을 조별 경기에서 만나는 건 정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또 홍콩은 평소에도 내가 정말 가보고 싶어 했던 곳. 혼자라도 꼭 가야지 했던 원정에 뜻이 맞는 지인이 동행을 요청하며(우린 두바이에도 함께 갔다) 그렇게 홍콩 원정이 시작됐다.
2018년 2월 19일 월요일,
매치데이보다 하루 먼저 홍콩으로 향했다.
2월의 홍콩은 낮엔 따뜻하고 저녁엔 선선해서(전혀 덥거나 춥지 않음, 약간 우리나라의 4월과 비슷한 날씨?) 여행하기에 정말 딱 좋은 날씨였다. 오션뷰 호텔에 짐을 풀고, 인생 버거를 먹고, 침사추이로 넘어가 '심포니 오브 라이트'를 보며 맥주도 한 캔 마시고, 밤엔 야시장 골목까지 구석구석을 종일 열심히도 다녔다.
(홍콩 여행 이야긴 뒤에 따로 더 풀어볼 예정)
2018년 2월 20일 화요일,
홍콩 '킷치 SC'와의 매치데이날.
경기는 저녁시간이었지만 낮부터 바쁜 우리들이었다. 하루 다닌 홍콩은 정말이지 너무나 예상대로 내 맘에 쏙 드는 곳이었기에 경기장에 가기 전까지 또 부지런히 홍콩을 즐겼다. 호텔에서부터 할리우드 로드 골목골목을 걸어 다니며 다 훑어보고, 미드레벨 에스컬레이터에도 들렀다가, 딤섬 너무 맛있어서 진정 못하고 계속 추가했던 밥집도 들르고, 야무지게 커피도 한 잔 마셨다. 몸통만 한 걸개 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약간 빡세기도 했지만 들뜬 마음까지 이길 수는 없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경기장에선 ACL이 처음인 '킷치 SC'쪽의 경호원과 입장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잡음이 있긴 했지만('사랑합니다 전북'이 쓰인 걸개를 막무가내로 막아세웠음, 안 되는 영어에 손짓, 발짓 설명을 하다가 결국 우리 구단 직원이 나타나고 나서야 해결됨, 이 사람들아, 이 걸개가 나보다 해외 원정 더 많이 다닌 애라고~), 이것 또한 지나고 보니 재밌는 추억이었다.
사실 홍콩의 프로축구리그는 K리그와는 수준 차이가 상당한 게 현실이다.
오죽하면 조별 리그에서 홍콩의 팀을 만난 게 신기할 정도였으니..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정말 마음 편히 즐길 수만 있는 경기였다. (2021년부터는 조별리그 참가팀 수가 32팀에서 40팀으로 늘어나면서 더 많은 팀들의 출전이 가능해졌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작된 경기는 전반 6분 만에 전북현대가 선취 득점을 하면서 경기도 금세 기울기 시작했다. 이날의 경기에서 아드리아노는 두 번의 페널티킥을 포함해 해트트릭까지 성공시켰으며, 김진수, 티아고, 동국이형까지 고른 득점을 하며 6:0이라는 압도적인 스코어로 경기를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팀이 득점을 할 때마다 팬들이 함께 해주는 세리머니인 '오오렐레'를, 동국이형이 득점을 할 쯤엔 거의 지쳐서 하지 못하겠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정말 다득점의 통쾌한 승리였다.
경기 종료 후 선수단과 함께 하는 '승리의 오오렐레'에선 모두가 다시 한번 힘을 내면서 대승의 기쁨을 함께 누리기도 했다.
킷치의 팬들도 경기에 대한 실망보다 ACL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팀이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킷치의 일반석에서는 '이동국'의 이름을 부르며 경기 내내 환호를 해주기도 했고, 멀리 한국에서 온 원정팬들까지 함께 동국이형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 대한 화답을 해주기도 했다.
모든 것이 기대보다도 더 성공적인 홍콩 원정경기였다.
압도적인 승리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은 없다.
홍콩은 둘째 날 밤까지도 정말 완벽한 하루를 나에게 선물해 주었고, 이러니 '해외 원정 못 가고 어찌 살아' 하고 있었는데, 이게 마지막 해외 원정이 될 줄은 이때까지만 해도 정말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코로나 새끼, 진짜 나쁜 새끼야..
(2019년에도 해외 원정이 있는 날 인천공항에 가긴 갔었다. 다만 목적지가 달라서 문제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