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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May 22. 2023

아직 끝나지 않았어,

지난 시즌과 마찬가지로 올 시즌의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도 코로나의 영향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역시나 해외 원정은 꿈조차 꿀 수 없었고, 시즌과 함께 시작되던 조별 경기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에서야 저 먼 남의 나라에서 중립 경기로만 치러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당연히 무관중 경기다.


2021년 ACL에서 전북현대는 태국의 '치앙라이 유나이티드', 일본의 '감바 오사카', 싱가포르의 '템바인즈 로버스'와 한 조를 이루게 됐다. 이름조차 생소한 싱가포르의 클럽을 만난 김에 해외 원정이라도 갈 수 있었으면 참 좋았을 테지만 아직은 코로나 새끼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탓에...


조별 첫 번째 경기의 상대는 태국의 '치앙라이 유나이티드'였다. 분명 개최지는 우즈베크인데 태국 원정을 떠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의 경기력이라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 아, 물론 이기긴 했다.

그래도 초반의 우려와 달리 남은 조별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속해진 조에서 1위로 16강 진출을 결정짓게 됐고, 그렇게 결정된 16강전의 상대로는 태국의 'BG 빠툼 유나이티드'를 만났다.

다른 팀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쉬운 대진이었고, 더욱이 단판으로 치러지는 16강전의 경기 장소까지 전주월드컵경기장이라 여러모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다만 아쉬운 건 ACL은 국내에서도 여전히 무관중으로 경기가 치러진다는 점..


어쩌면 당연하단 듯이 승리를 예상하며 중계로 지켜보던 16강전의 경기는, 이게 지금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동점의 균형을 깨뜨리지 못하며 팽팽한 승부가 계속되고 있었고(더욱이 선제골을 넣고도 추격을 당함), 경기는 결국 연장까지 가서도 승패를 가르지 못했다.

'하.. 여기서 또 승부차기를 한다고?'

순간 정말 TV를 꺼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했다.

승부차기에서 이겨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런데 이것도 기적이라면 기적이라고 해야 할지, 세상에나 우리의 골키퍼인 송범근 선수가 빠툼의 세 번째와 네 번째 키커의 슛을 정확히 막아내면서 팀을 위기에서 구하고 8강에 올려놓는 게 아닌가,

진짜 장하다, 장해! (승부차기에서 승리를 가져온 건 2005년 이후 16년 만의 일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순간을 직접 눈으로 본 팬이 아무도 없네..)


그리고 이어진 ACL 8강전에서는 운명처럼 같은 K리그의 팀인 울산현대를 만나게 됐다.

8강전이 치러지기 전까지 리그에서는 울산이 1위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가는 중이었고, 우린 일말의 희망을 가진 채 그 뒤를 바짝 쫓고 있었다. 정규리그는 한 경기만을 남겨둔 채 파이널 라운드를 앞두고 있었으며, 어쩌면 올해야말로 울산이 진짜 '트레블(3개 대회 우승-울산은 당시 리그와 ACL, FA컵까지 모든 대회를 치르고 있는 중이었다)'을 달성할 적기가 아니냐는 목소리들까지 여기저기서 들려오고 있을 때였다.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동아시아의 중립 지역에서 치르기로 한 ACL 8강전과 4강전의 장소로 전주월드컵경기장이 결정됐다.

더욱이 8강전부터는 부분 유관중 입장도 가능한 터라 우리가 있는, 우리의 집에서 남의 잔치를 치러줄 수는 없는 일, 그러니 반드시 모든 걸 걸고 이 경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모두의 기대 속에 시작된 경기는 예상처럼 팽팽했지만 전반 초반 선제 실점을 하면서 쉽지 않은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전반이 끝나가기 전 만회골을 넣긴 했지만 추가시간에 다시 또 실점을 허용하면서 전반전은 1:2로 끌려간 채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여기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반이 시작되고 바로 동점골을 넣으며 다시 경기의 균형을 맞췄고, 그렇게 서로가 치열했던 경기는 결국 90분 안에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연장전에 돌입하게 됐다.

(일단 연장만 가면 불안해지는 이 마음을 정말 어찌해야 하나..)


연장전의 승부도 우열을 가리기는 쉽지 않았다.

승부차기까지 가기 전에 제발 이 경기가 끝났으면 하는 마음과 그래도 어떻게든 이겨주길 바라는 마음들이 복잡하게 뒤섞였다. 그러던 연장 전반 막판, 울산의 이동경 선수가 엄청난 중거리 슛으로 득점에 성공을 해버렸다. 그것도 우리 앞의 골대에서..

그렇게 응원석의 모두가 망연자실하던 찰나(관중 입장은 허용됐지만 육성 응원은 금지라 모두 마스크를 착용해야 했다), 골을 넣었던 이동경 선수가 우리의 응원석 앞에서 도발 세리머니를 하는 게 아닌가.. 정말 분노와 상실감이 동시에 끌어 오르는 순간이었다. 육성응원이 금지됐으니 망정이지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고도 남을 만한 풍경이었다.


하.. 우리의 N석 앞에서 정말... 참을 수가 없다, 참을 수가 없어......

 

결국 이날의 경기는 이렇게 끝이 났고, 우리의 ACL 여정도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만 했다.

치열하게 싸운 경기를 물론 질 수도 있다. 아쉽긴 하지만 그건 정말 괜찮았다.

하지만 우리 앞에서 했던 상대 선수의 도발은 정말 괜찮치가 않았다. 더군다나 3일 뒤에 치러질 4강전에서 우리의 안방을 홈으로 내어줘야 한다니 더 속이 쓰렸다. (그러니 제발, 영일만 형제여 힘을 내줘!)


ACL 준결승에서 울산현대는 같은 K리그의 팀인 '포항'을 만났다.

객관적 전력으로야 당연히 울산이 앞서고 있었지만 희한하게 우리도, 울산도, 중요한 길목에서 포항을 만나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번에는 내심 그렇게 되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리그 우승 경쟁을 하는 울산이 분위기를 타는 것보다야 우리의 영일만 형제인 포항이 이왕이면 결승에 진출하는 게 더 낫겠다는 바람이 정말 이루어지기라도 하려는 걸까..?

예상보다 팽팽하던 경기는 연장까지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울산 원두재 선수의 퇴장이 컸다), 결국 승부차기까지 이어지게 됐다. 그리고 얻어진 결과는 정말 모두가 깜짝 놀랄만한 포항의 승리..


4일 뒤에 치러진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우리가 제주를 상대로 무승부를 거두고, 울산은 성남에게 패하면서 리그의 순위마저 뒤바뀌게 됐다(같은 승점에서 다득점으로 전북이 앞서게 됨).

그리고 다시 3일 뒤에 치러진 FA컵 준결승전에서 2부 리그의 '전남드래곤즈'를 만난 울산은 그 경기마저 전남에게 승리를 내어주게 되며 트레블을 꿈꾸던 시즌에서 불과 8일 만에 리그 하나만을 남겨놓게 된다.




이제 남은 건 파이널 라운드에서의 맞대결뿐이다. 그 경기에서 승리를 챙기는 팀이 올 시즌 리그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반면에 다른 한 팀은 뼈아픈 무관으로 시즌을 마무리하게 될 것이다.


유독 부침이 많았던 이번 시즌의 마지막 경기날, 

과연 우리는 모두가 '행복한' 웃음을 지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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