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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ey May 25. 202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던데..

지난봄부터 두 계절 가까이 내려와 있었던 리그 1위의 자리에 다시 올라섰다.

파이널 라운드만을 앞둔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순위가 뒤바뀌긴 했지만, 사실 우리가 잘해서라기보다는 경쟁 상대가 단 8일 만에 믿기 어려운 결과들을 만들어 내며 얼떨결에 올라서진 자리가 아닌가 싶다.

'올해야말로 전북의 시대는 끝났다'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5개월을 넘게 굳건히 지켜오던 순위표의 가장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 울산과, 다시 되찾은 그 자리를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우리에게 남은 경기는 이제 단 5경기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이번 시즌 리그 우승의 향방을 가르는 결승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 번의 맞대결이 남아 있다. 하지만 우린 이렇게까지 울산에게 무기력했던 시즌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올 시즌 단 한 번도 울산을 이긴 적이 없다. ACL(아시아챔피언스리그)까지 총 네 번의 맞대결에서 상대 전적이 2무 2패다. 


같은 승점이지만 다득점의 차이로 순위표의 자리를 바꾸게 된 상황에서 치른 파이널 라운드의 첫 번째 경기에서 전북과 울산은 나란히 승리를 챙기게 된다. 그리고 다시 또 67점의 같은 승점 상황에서 운명처럼 맞붙게 된 35라운드.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지난 라운드 수원 원정에서 4:0이라는 대승을 거둔 뒤라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더욱이 오늘의 경기는 상대도 상대지만, 올시즌 홈에서 있었던 두 번의 맞대결에서 모두 패한 바가 있던 만큼 꼭 승리를 챙기며 유종의 미를 거둬야만 했다. 오늘 경기 하나의 결과에 따라서 얻는 것과 잃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차이인 셈이다.

승점 6점짜리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중요한 오늘의 경기엔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만 명이 넘는 관중이 모여들었다. 모두의 기대만큼 긴장감 넘치게 흘러가던 경기는 전반 23분, 우리의 송민규 선수가 선제골을 넣으며 분위기를 가져오기 시작했다. 더욱이 득점 후엔 (다소 주춤거리긴 했지만) 지난 아시아챔피언스리그에서 울산의 이동경 선수가 했던 세리머니를 원정석 앞에서 되갚아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를 오래 지켜가면 좋았을 것을 선제골이 터지고 약 14분 뒤, 세트피스 상황에서 울산의 수비수 임종은 선수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소문난 잔치답게 리그 1~2위의 경기는 단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팽팽했으며 서로가 이렇게 한 골씩을 나눠 가진채 전반전을 마무리하게 됐다.


그리고 이어진 후반전,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경기는 후반전이 시작되고 20여 분뒤, 류재문 선수가 팀의 두 번째 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앞서가기 시작했다. 응원석은 열광적인 환호로 가득 찼고, '이번 시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울산을 오늘은 이길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이 생기며, 이 분위기 그대로 어쩌면 순위표의 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까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렇게 쉬우면 축구가 아니지......

이번에도 역시나 전반전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오기라도 한 듯 득점 이후 약 14분 뒤, 울산의 이청용 선수에게 다시 한번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다.. (VAR까지 보며 오랜 시간을 들여 인정한 울산의 이 득점은 경기 후 결국 오심으로 밝혀졌다. 대체 주심은 뭘 한 건지.. 이동준 주심은 정말, 여러모로 악연이 분명한 것 같다..)


이제 서로에게 남은 시간은 정규시간으로 약 10여분이 전부다.

오늘의 경기에서 골고루 승점을 나누게 되는 무승부의 결과는 그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일일 것이다. 더욱이 전북으로서는 마지막 다섯 번째 맞대결마저 자존심을 구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모두의 간절함 속에서 선수들이 사력을 다하는 동안에도 승부는 기울 줄을 모르고 있었고, 그렇게 90분의 시간도 다 지나갈 즈음, 시즌 내내 구스타보와 함께 공격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며 팀을 먹여 살리던 일류첸코가 교체되어 들어왔다. 그리고 주어진 추가시간은 5분.


추가시간이 시작되자마자 울산만 만나면 펄펄 날아다니던 바로우가 위협적인 찬스를 만들기까지 했지만 결승골을 터뜨리기엔 부족했고, 응원석에선 시간이 점점 지나갈수록 탄식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나오고 있었다.

선수들도 남은 시간까지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지만 기다리던 득점은 끝내 터지지 않으며, 이렇게나 잘 싸웠지만 다소 아쉬운 결과로 오늘의 경기도 끝나가나 싶었던 경기 막판, 추가시간 5분 중에서도 정말 20여 초밖에 남지 않았던 그 시각에, 왼쪽 측면에서 쿠니모토가 올려준 그림 같은 크로스를 문전 앞에 있던 일류첸코가 기가 막힌 헤딩으로 득점에 성공하면서 그렇게 기적 같은 결승골을 만들어내게 됐다.

전주성(전주월드컵경기장)은 환호로 가득 찼고, 벤치에 있던 모든 코치진과 선수들까지 그라운드에 달려들어 일류첸코와 기쁨을 같이 했다. 정말 바로 앞의 골대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벅차고 귀한 득점이었다.

 

동료의 이런 득점에 진정할 수 있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일류첸코는 오빠가 정말 확실하다. 잘생기고 축구 잘하면 다 오빠라고 했어... 그래, 네가 최고야, 최고!!

 

결국 이날의 경기는 일류첸코의 천금 같은 결승골이 터짐과 동시에 끝이 났다.

동일한 승점에서 다득점으로 앞선 순위였지만, 이젠 한 경기차의 점수를 벌린 채 남은 라운드들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시 말해 여러모로 우리가 유리하다는 뜻이다. 남은 경기들을 설마 다 지기야 하겠어..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린 후, 다들 정말 애썼다, 애썼어.. 축구 정말 매일 너무 간절해...




이렇게 더 바랄 게 없는 주말이 지나고 일주일 뒤, 다음 라운드에서 우린 올시즌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던 수원FC를 만났고, 울산은 제주를 만났다. 그리고 우린 역시나 이번에도 또 수원FC를 넘지 못했고, 울산은 제주를 상대로 승리를 챙기면서 다득점에서 우리가 앞서긴 했지만 승점은 다시 또 같아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 남은 경기는 단 두 경기..

이 남은 두 경기가 다 끝나고 나면 누군가는 기쁨의 눈물을 흘릴 테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게 되겠지..



이번 시즌 우리의 마지막 경기 상대가 '제주'던데, 과연 우린 지금의 순위를 그대로 잘 지키며 다시 한번 '약속의 제주'를 만날 수 있을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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