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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Oct 23. 2019

당신 안에 천재 있다

천재란, 누구를 말하는 걸까요.


천재란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가 나와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남보다 훨씬 뛰어난 재주. 

또는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


제가 좀 예민한 걸까요. 

뭔가 개운하지 않고 께름칙합니다.

이 단어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있는 

‘주체’는 누구인가요. 남입니다. 

‘어떤 누군가’ 혹은 ‘그 사람들’이겠지요.

분명한 건 ‘나’는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충분히 길들여질 만큼 

길들여져온 것 같습니다.

남이 정해놓은 규칙,

남이 생각하는 방식,

남이 추구하는 스타일,

남의, 남에 의한, 남을 위한 삶. 

실체가 불분명한 

‘디 아더스’라는 그림자 때문에

우리는 자신을 기준으로 놓고 

무언가를 한 적이 생각 외로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천재’의 정의를 

다시 한 번 봐주실는지요.

과연 저 정의에서 중요한 것이 

‘선천적’ ‘타고난’ 

‘뛰어난’ ‘재능’ 이런 단어들일까요.

어쩌면 ‘남보다’라는 단어가 

우리가 진짜 

눈여겨봐야 할 단어인지도 모릅니다. 


‘남’을 기준으로 나를 바라볼 때,

그렇게 ‘남’과 나를 비교할 때,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관심을 둘 때

천재성은 증발해버리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나보다 잘난 ‘그 누군가’는 

언제나 내 주변을 얼쩡거리는데, 

너무도 쉽게 발견되는 그를 보며

지극히 감정적인 동물인 우리는

어떤 감정에 휩싸이던가요.

혹시 그를 보면서 

‘나’에 대한 판단을 내려버리지는 않던가요.


미국 일러스트의 거장 노먼 록웰(Norman Rockwell). 

아래는 그가 그린 ‘삼중 자화상’이란 작품입니다.


                                   Norman Rockwell, Triple self-portrait(1960)


그림을 자세히 봐주세요.

록웰이 거울을 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다시 그린 그림이지요.

그런데 자세히 보고 있으면 무언가 좀 이상합니다.

실제로 그는 안경을 쓰고 있는데

그림 속의 그림에서는 안경을 안 쓰고 있다,

뭐 그런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눈에 띄는 가장 이상한 점은

록웰의 얼굴이 실제와 다르다는 겁니다.


록웰은 66세 때 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분명 백발의 노인이지요.

그런데 그림 속의 그림 속의 그의 얼굴은

40대 중반, 많아 봤자 

4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아주 잘생긴, 중후한 신사의 얼굴입니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왜 이렇게 그렸을까요.

그가 자신을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이야 자연스럽게 드는 것이고,

남들 눈에는 엄연히 백발의 노인이지만

그는 자신을 나이 든 

‘할아버지’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요.

아직은 팔팔한, 인기 있는, 

잘생긴 멋진 중년의 훈남.

록웰은 남의 눈에 비쳐진 자신이 아닌,

자신이 알고 있고 자신이 봐온, 

자신이 느끼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 그대로를 그린 걸 겁니다. 


자, 여기에 또 다른 

한 명의 화가가 있습니다.

‘무의식의 화가’라 불려지는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 

천재, 괴짜, 과대망상증·노출증 환자 등 

붙는 수식어가 

참으로 다양한 작가이지요.

     

달리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세 살 때 요리사가 되고 싶었고, 

다섯 살 땐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다. 

이런 나의 야망은 점점 더 커져 

지금 내가 갖고 있는 꿈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꿈이 자기 자신이 되는 거라니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요. 

달리는 꿈이 없었던 걸까요.

‘성공한 화가’가 아니라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라니,

그는 왜 이런 

엉뚱하기 짝이 없는 말을 한 걸까요.


남들 눈엔 미친 사람처럼 비쳐졌을지 모르지만,

달리는 미치기는커녕 오히려 지나치게 

현실 인식이 정확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고,

나아가 스스로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앓고 있었던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나 사랑했던 그의 꿈이 

자연스럽게도 자신에게 도달하는 것이었을 수밖에요.


어쩌면 그의 천재성은 

그가 선보여온 엄청나게 색다른 작품들에 있는 게 아니라

그 작품들의 출발점인 달리 스스로에 대한, 

바로 달리 자신의 생각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가?


달리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자신이 생각하는 정확한 답을 갖고 있었던 거지요.


“내 안에는 천재가 살고 있다”란 그의 말처럼

그의 천재성은 그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걸어온 

최면의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최면의 밑바탕에는 

자신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 

든든하게 깔려있었겠지요.


결국 달리는 자신을 사랑했기에, 

남들이 자신을 미친 사람으로 생각하든 말든

그런 것 따위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나’답게, ‘나’처럼 살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자기 자신과 많이 친하신가요?

여러분은 자신을 

다른 누구보다도 사랑하십니까?


『곱셈인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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