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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Jul 31. 2021

거기엔 네가, 여기엔 내가 #3

있잖아.

왜 그런 날, 있잖아.     


길을 가다 

나도 모르게 멈춰버렸어.

그냥 무언가를 끼적이고 싶었는데 —

내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지.

다행히 근처에 아이들이 

분필놀이를 하고 있었어.

얘야, 분필 하나만 

잠깐 빌려줄래.

왠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 

기억에서 사라질 것만 같아,

말도 동작도 느려지고 있었어.

나도 모르게 말이야. 

     

그런데.    

 

네 이름을 적으려고 하니까, 

글쎄 이름이 떠오르지 않는 거야.

네 얼굴은 너무나 생생히, 

내 앞에서 생긋 웃고 있는

너의 그 얼굴이 

겹치고 겹쳐서 떠오르는데, 

고작 이름 따위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 

그래, 이름 따위가. 

    

추억보다도 못한, 

기억보다도 못한, 

함께 찍은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의 

단 한 장의 사진보다도 못한.   

  

그런데, 참 신기하지.

너의 이름을 계속 떠올리려고 

웅얼웅얼거리는 내 모습이.     


그깟 이름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뭐 그리, 대수라고.

이렇게 네 얼굴이, 

네 눈웃음이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데 말이야.  

   

그래서. 

난 참, 여전히 바보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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