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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병민 Aug 04. 2023

당신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마지막 강의 | 프롤로그 저자 원문

See the Seen 

당신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1     


지난 2008년 SK텔레콤이 하나로텔레콤을 인수한 후 사명을 SK브로드밴드로 바꾸면서 SK에서 그 해 9월경 공중파에 내보낸 SK브로드밴드 론칭 광고, 기억하시는지요? 잘 기억나시지 않으면 더블유 앤 웨일(W & Whale)이 부른 R.P.G. Shine이라는 곡을 검색해서 한번 들어보세요.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다 보면 기억이 나실 겁니다.   

  

못 보던 세상 이제 시작이야 

뭔가 보고 느끼고 경험하고 싶어

누구도 볼 수 없었던, 보여주지 못했던

SEE THE UNSEEN 브로드밴드

약간의 TV, 약간의 인터넷, 

전화 약간 합치면 못 보던 세상

이제 내딛자 뛰어들자 들어가 보자

익숙한 세상이 놀랍게 변해

자, 지금부터 시작이다

SEE THE UNSEEN SK 브로드밴드

―SK브로드밴드, CI 론칭 CF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이 광고를 볼 때마다, 무엇보다도 광고에 삽입된 곡을 들을 때마다 차가운 ‘그 무언가’가 스멀스멀 제 안에서 기어 올라오는 것을 느낍니다. 약간 불편하고 어딘가 개운하지 않은 찜찜한 그 무언가가 말이지요.     


아무래도 제가 광고쟁이 출신이라 그런지 광고에 삽입된 카피에 촉이 서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단 세 단어로 구성된 이 카피를 읽고 음미하기를 반복합니다.    

 

See the Unseen   

  

번역하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라’입니다. 광고주나 제작사의 입장에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의도가 담긴 메시지를 깔아놓고자 했겠지요. 글쎄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랍니다. 그게 힘들면 적어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노력이라도 해보랍니다.     


참 난감하고 당황스럽습니다.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애초에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해보라고 하니 저로선 살짝 울화통이 터지려 합니다. 여러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나요? 아, 물론 여기에도 예외가 있긴 합니다.


경영이 무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경영이든 일상사든 문제가 생기면 

최소한 다섯 번 정도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원인을 분석한 후 대화로 풀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건희, 『이건희 에세이』에서     


이건희 前 삼성전자 회장은 1997년 말에 발간한 에세이집에서 경영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 본질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지요.  

   

저는 그룹 회장, 총수도 아니고 세계적인 경영학자, 구루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런 거창한 본질이나 정의에 대해서는 할 말도, 토를 달 생각도 없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게 딱 하나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앞으로도 영원히 볼 수가 없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것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것이 그저 황당한 난센스로 들릴 뿐이지요.     


그래서 한때 광고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저는 이 광고의 카피를 이렇게 바꿔보고 싶습니다.     


See the Seen     


‘보이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주야장천 달릴 게 아니라,이미 눈앞에 주어져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해 노력해보라는 뜻입니다. 내가 보고, 듣고, 만지고 있는 내 물건, 내 일, 내 주변 사람들(동료, 친구, 가족 등), 지금 현재 나를 거쳐가고 있는 그 모든 것, 그 모든 사람들에게 주의를 집중해보라는 겁니다.    

      

#2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요. 이 시대는 아래와 같은 단어들이 여전히 중요시되고 있고, 또 각광받고 있는, 그런 시대이지요.  

   

변화 혁신 상상력 리더십     


저는 워낙 호기심 천국이라 궁금한 건 절대 못 참는 성격입니다. 이 ‘중요하기 짝이 없는’ 단어들을 앞서 소개해드린 SK브로드밴드 광고의 카피와 엮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다음과 같이 말이지요.   

  

□□의 본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에 있다.     


박스 안에 변화, 혁신, 상상력, 리더십을 차례대로 넣어보세요. 이렇게 갖다 붙여도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변화해야 한답시고, 혁신해야 한답시고, 상상력과 창의성, 리더십을 갖춰야 한답시고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해 그동안 죽도록 열심히 뛰어다녔고, 지금도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관점(시각, 접근법), 새로운 트렌드, 새로운 이론, 새로운 컨셉, 새로운 정보, 이 모든 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매일 쏟아붓는 시간과 노력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다 그놈의 ‘보이지 않는 것’을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찾아내기 위해서이지요. 고생도 이런 생고생이 없습니다.

     

이제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이런 ‘머리만 빠개지는’ 추상적인 두뇌 놀이는 때려치웁시다. 변화, 혁신, 상상력, 리더십과 같은 가치가 정말로 중요한 시대라면, 이것을 조금은 이해하기 쉽게 풀어 자기 자신, 나아가 자신의 주변부터 점검해보는 건 어떨까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위의 문구를 이렇게 다시 정리해보고 싶습니다.     


□□의 본질은 ‘보이는 것을 제대로 보는 것’에 있다.     


변화하고 혁신해야 한다면, 상상력과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면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것부터 똑바로, 제대로 보기 위해 노력할 것. 어쩌면 이것이 나 자신을 위해 우리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이 시대를 잘 살아가기 위한 최적의 전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지금이 순간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것을 얼마나 제대로 보고 있나요?      


이 책은 이런 ‘우리의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우리가 ‘얼마나 잘 보고 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놓치거나 간과한 것들이 조금이라도 눈에 들어온다면, 나아가 그 놓친 것들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면 저는 제 소임을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굿 럭.              



혹, 『월리를 찾아라』라는 그림책, 기억나시나요? 저도 한때 이 책에 푹 빠져 눈알이 벌겋게 충혈되도록, 정말 미친 듯이 월리를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러셨나요? 자, 그때의 기억을 한번 끄집어내봅시다. 엄청난 수의 사람들 속에 숨어 있는 월리, 여러분은 그를 찾을 준비가 돼 있나요? 월리를 찾는 데 혈안이 돼 있던 바로 그때, 그 자세로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는 건 어떨까요. 그 속에 꼭꼭 숨어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할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사소하게 흘려보낸 (실은 전혀 사소하지 않은) 것들과 즐겁게 맞닥뜨리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3년 7월

Talent Lab 서재에서

허병민


 『마지막 강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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