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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네가, 여기엔 내가 #6

by 허병민

가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외쳤어,

소리 없는 손짓으로.

이렇게나 많은 발자국들이

널려 있는데.

하나하나 담아

꼭꼭 숨겨놓지도 못했는데.

기억들을 점찍듯,

몰래 감싸 안아보지도 못했는데.


아직,

할 일이 너무나 많은데.

저 멀리,

넌 또 흔적들을 남겨놓겠지.

난 다시 또, 그것들을

천천히 밟아가겠고.

이렇게나 많아.

끝이 없어.

널린 게 발자국이야.

그래.


가만 보니,

여기저기 쌓여 있는 게

다 너의 발자국이야.


이제 그만하라고,

같이 가자고.

그래, 함께 걷자고.

뒤돌아보면서

네가 보인 웃음은,

단 한 번이었어.

수많은 발걸음 속에

네가 보여줬던 건,

눈웃음 한 번이었어.

다시, 또 한 번의

발자국과 함께.


그래,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야.

희한하지.

그때 분명 난

소리쳤던 것 같아.

손짓이 아닌

눈짓이 아닌

목소리로, 너에게.


머물러 달라고,

내 곁에.

더 이상 못 걷겠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

더 이상 담아낼

네 몫의 발자국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그렇게 담아내고

또 담아냈는데도,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난 다시 여기야.


너의 발자국을 세어보면서,

나의 발자국을 하나하나

꾹꾹 남겨놓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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