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축구회에 나가는 아빠
달리기를 시작했다. 아직은 귀찮음보다 설렘이 더 크다. 집 근처에 바닷가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설렘 포인트다. 한 15분 정도 걸으면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마음이 왠지 설렌다.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간다.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어차피 달리기 시작하면 눈앞에 사람이 있는지 자전거가 오진 않는지를 살피느라 바다 풍경은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달리는 동안 바다가 내 옆에 있다는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집에서 나와 바닷가로 향하면서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하지만 달리기를 할 때는 다른 생각을 곰곰이 하지 못하고 오로지 달리는 그 행위에만 집중한다. 30분 정도 달리기를 끝내고 다시 집으로 되돌아가면서 아빠 생각을 이어나갔다. 그 시작은 이거였다. ‘생각해 보니 우리 아빠, 운동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아빠는 내가 초등학생 즈음부터 주말마다 조기축구회에 나갔다. 가끔은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뛰러 가자며 나를 꼬드기기도 했던 게 떠오른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는 골프를 시작했고 지금까지도 축구와 골프라는 스포츠에 꽤 열성적이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 시절엔 부모님과 그리 친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우리 아빠는 늘 운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삼십 년을 넘게 살고서야 내가 운동하길 좋아하는 아빠에게서 자랐다는 게 보였다.
어릴 적 들었던 아빠의 유년 시절은 축구 잘하기로 동네에서 유명했단다. 거기다 공부까지 잘했는데, 비록 시골이었지만 인기가 굉장했다고. 다섯 남매의 맏이로 온갖 기대와 교육을 독차지하고 그 기대에 부응하고자 축구선수 대신 공부의 길을 택했다는 게 우리 아빠의 ‘라떼는 말이야’ 이야기다.
평소 살가운 딸이 아닌 나는 따로 나와 살게 된 후로도 부모님에게 연락하는 일이 거의 없다. 명절이 있어 그나마 도리를 하는 정도다. 그래도 함께 살 적보다 명절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같은 집에 산다고 해서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니었으니까. 이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짐을 좀 덜어냈다. 명절은 아빠의 새로운 소식을 듣는 날이다. 재작년에는 아빠가 직접 과일을 깎아서 먹는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내가 보아온 아빠는 집안일일랑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전형적인 바깥양반 스타일이기에 매우 놀라웠다. 작년에는 엄마보다도 더한 수다쟁이가 되었단다. 엄마는 아빠와 거의 하루 종일 붙어있는 편인데 자기 직전까지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고 했다. 이번에 업데이트된 아빠의 소식은, 다이어트였다. 아빠가 뱃살이 늘어 몸무게를 줄이려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다고 한다.
엄마의 말에 따르면 아빠는 매일 같이 몸무게를 재 본다고 한다. 뱃살을 빼기 위해 밥도 적게 먹기 시작했다고. 내가 보는 아빠는 전혀 뚱뚱하지 않다. 물론 아주 마른 체형은 아니지만 다부진 근육형 몸매라 건강해 보인다. 그런 아빠에게도 드디어 뱃살이 생긴 건가? 하긴, 상상해 본 적 없다. 연락도 잘 안 하는데 부모님에게 언제 그런 관심까지 가지겠나. 대신 나의 경우를 떠올려 보니 퍼뜩 이해가 된다. 이제 환갑을 넘긴 아빠에 비하면 나는 아직 삼십 대인데도 벌써 뱃살이며 등살이 장난 아니게 많지 않은가. 그러니 아빠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운동하지 않고 몸 관리를 하지 않은 걸까, 싶은 거다. 아빠는 요즘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해 조기축구회에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그날 저녁은 쌈 채소를 곁들인 고기와 싱싱한 회가 동시에 식탁에 올라왔다. 나로서는 오랜만의 호강이다. 아빠는 상추 두어 장에 고기와 양념장, 밥을 조금 넣어 입에 한가득 넣었다. 소식한다던 말이 무색한 것 아니냐며 엄마와 내가 아빠를 놀렸다. 아빠는 나름의 변명이 있었는데, 지금 이렇게 먹지 않으면 자기 전에 배가 고파진다고, 지금 이렇게 먹어도 나중엔 소화되니까 괜찮다(?)고 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옳은 말씀! 내 먹성은 아빠를 닮은 것이 분명해.’
부모님의 밥상이 전과 조금 달라지긴 했다. 고기나 회가 있는 건 주메뉴라 그렇다 치고(어쩌면 내가 왔기 때문일지도?), 새로운 밑반찬이 생겼는데, 유기농나물무침과 유기농채소로 만든 김치였다. 이웃집에 사는 분이 나눠준 것이란다. 밥의 양도 상당히 줄었는데, 식당에서 주는 밥 한 공기의 3분의 1도 채 되지 않는 양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밥을 잘 챙겨 먹지 않아서 익숙한 양이었지만, 늘 반 공기 이상은 채워져 있던 밥그릇이 어쩐지 헐빈해보였다. 하지만 반찬은 푸짐했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아빠, 엄마와 셋이서 동네 한 바퀴를 걸었다. 느긋한 순간이었다. 내가 독립하고 나서야 부모와 자식 관계보다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겪는 이슈와 행복거리를 나누게 되었다. 지인들을 만나면 ‘확실히 가족은 자주 안 봐야 사이가 좋아지더라.’며 너스레를 떤다. 사실은 내가 바깥 사람이 되어 부모님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는 게 좋다. 그들의 보호를 받으며 함께 지낼 때는 오히려 가깝게 들여다볼 마음이 없었다. 이제야 나는 아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보면 아빠와 붕어빵이라고들 말했다. 어디 생김새뿐이랴. 인정하긴 싫지만 체형도 비슷해서 나도 아빠 따라 허리가 길고 다리는 좀 짧다(분명 롱다리는 아니다). 통뼈인 것도 아빠의 것을 물려받았다. 누가 봐도 엄마보다는 아빠 쪽 유전자의 압승이다. 엄마는 몸에 살이 별로 없다. 오빠도 마른 체형이다. 어릴 땐 나도 마른 축이었는데, 오빠는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말라 있다. 밤에 라면을 두 개씩 끓여먹고 자도 전혀 붓지도 않는, 이른바 멸치 재질을 타고났다.
한때는 내가 오빠처럼 멸치 재질을 타고나지 않았을까, 아쉬워한 적이 있다. 만약 그랬다면 굳이 운동하지 않아도 가벼운 무게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텐데. 그랬다면 내가 지금처럼 운동에 빠지는 일도 없지 않았을까? 아니, 시작하는 시기는 늦춰졌을지도 모르지. 이번 참에 느낀 건데, 그동안 아빠의 건강한 체형을 유지해온 건 상당한 운동량이 한몫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조기축구를 나가지 못하는 요즘에 활동량이 줄어들어 뱃살이 나왔을 테니까. 나도 운동하지 않으면 살이 찐다, 아빠처럼.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하루도 빠짐없이 달리기를 한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달리기에 관한 그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하루키 그도 서른 무렵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그후로 활동량이 급격히 줄었고 살이 불어났다고 고백했다. 그리하여 달리기를 하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그는 살찌기 쉬운 체질로 태어났다는 게 도리어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런 사람들은 체중이 붇지 않으려면 열심히 운동하고 식사를 유의하고 절제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으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과 달리 골치 아프지만, 따지고 보면 이 지속적인 노력이 결국 늙어서도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키 말마따나 “의식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자연히 근육이 약해지고 뼈가 약해져 가는 것이다. 무엇이 공평한가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지 않으면 잘 알 수 없는 법이다.(‘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들’, 무라카미 하루키, 문학사상, 2009, 71쪽)”
이제는 나도 운동하는 사람이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하자 운동하는 아빠의 모습이 보인다.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부양하는데 늘 책임감이 강했던 아빠였다. 그런 아빠는 늘 일찍 일어나 하루를 시작했다. 주말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운동가방을 챙겨 나갔다. 아빠는 축구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아빠는 언제부터 꾸준히 운동할 생각을 했던 걸까? 아빠는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골프를 왜 그렇게 좋아하는 걸까? 다음 명절 때 집에 가면 아빠랑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봐야겠다.
#크로스핏을하며생각한것들 #습작 #연재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