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크로스핏의 균형
요행 없는 두 가지
살아온 나날 중 언제 가장 치열했는가?
누군가는 어린 시절을 떠올릴 테고, 누군가는 사회 초년생 시절을, 누군가는 지금 이 순간일지도 모른다. 저마다 시기는 다르겠지만 치열하게 산다는 건 꽤 뜨거운 상태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30대 중반에 이른 나에겐 서른 살 무렵이 좀 치열했다. 퇴사와 독립, 취업보다 하고 싶은 일, 가족보다 나를 돌보는 것 들로 삶을 바꾸어갔었다. 그렇게 원래 나아갔어야 할 삶의 궤도를 빠져나와 새로운 출발선에 선 시기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와 직장이라는 소속감을 내던지고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시작하는 일은 고달팠다. 또래들에 비해 뭣하나 이뤄낸 것 없는 미생 중에 미생인 시절. 벌이가 시원찮아 생활이 빠듯해 마음에 여유조차 없던 그때는 무시로 눈빛에 힘이 들어갔다. 지인은 당시의 내 눈빛이 레이저를 쏠 정도로 치열해 보였다고 했다.
그 무렵 크로스핏을 시작했다. 그건 참 대수였다. 운동하기 위해 돈을 들이기로 결정한 거니까. 직장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던 때에도 건강 관리에는 관심도 없던 나였다. 하지만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고 다짐하기 좋은 새해였다.
크로스핏은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코치의 수업으로 이루어지는 고강도의 그룹운동이다. 크로스핏을 하려면 있는 체력, 없는 체력 다 그러모아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다. 태어나 처음으로 운동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이고 나면 영혼까지 탈탈 털리는 느낌이다. 안 쓰던 근육이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는 것 같고 그래서 난 숨이 가쁘다. 그것이 싫진 않아서 매일 운동하러 갔다. 그때만 해도 몰랐지. 치열하기 짝이 없는 이 운동을 5년 넘게 계속 하고 있을 거라고는.
삶이 치열해서 그런가, 운동도 똑같이 치열한 게 좋았다. 그땐 석사논문을 쓰고 있었다. 논문도 내 삶을 치열하게 만드는 것 중 하나였다. 지방이 잔뜩 낀 뇌에 지식과 지혜를 넣어보려 무진장 노력했다. 요즘은 흔하디흔한 석사학위인데, 그마저도 난 여러 번 눈물을 쏟아냈다. 끝이 없을 것 같던 긴 터널을 지나 마지막 심사를 마치자 난데없이 내 안에 이상한 욕구가 솟구쳤다. 논문은 아니더라도 이렇게 계속 글을 쓰고 싶은 마음.
운동과 글쓰기를 비교해 볼까. 하나는 매달 적지 않은 돈을 내야 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일단 노트북만 있으면 충분하다. 얼핏 돈을 지불하는 게 아까울 수도 있었지만 그 마음 덕분에 더욱 크로스핏을 열심히 했다. 열심히 한 만큼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기에 얻는 성취감도 컸다. 글은 논문을 쓰기 전에도 썼지만 본격적으로 책을 쓰고 싶었다. 그때는 내가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봇물 터지듯 글을 쏟아냈다.
몸은 내가 시간을 쏟아부어 움직인 만큼 가시적인 결과를 보장해 주었다. 글은 이렇다 할 결과가 눈에 보인 건 아니지만 원하는 만큼의 시간을 들여 내가 하고픈 말을 할 수 있는 확실한 도구였다. 내겐 일종의 소확행이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이 두 가지에 대한 내 애정은 더해갔다. 하나는 몸을 쓰고 하나는 머리를 쓰는 활동. 아무리 생각해도 운동과 글쓰기는 서로 보완해 주는 최고의 활동메이트다. 흔히 글쓰기는 엉덩이 힘으로 쓴다는 말이 있듯이 긴 시간 앉아서 머리를 싸매고 있다 보면 오만 가지 잡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그럴 때 내 몸을 혹사시키는 크로스핏 한 번 하면 잡생각이 싹 사라진다. 복잡한 생각은 몸을 움직임으로써 해소한다.
내가 좋아하는 은유 작가는 ‘나만큼 쓸 수 있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무라카미 하루키나 김영하처럼 쓰고 싶어도 나는 내가 가진 만큼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 요령이 없다는 말이다. 참 솔직하다. 더디고 서툴러도 요행을 피우는 것보다는 내 능력만큼, 내가 써온 만큼 쓸 수 있다는 게 좋다. 그게 돈벌이나 관계여도 마찬가지.
운동도 마찬가지다. 내가 해 본 만큼, 시도하고 연습한 만큼 동작할 수 있다. 해 본 적 없는 동작을 한 번에 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법이다. 이 또한 솔직하다. 저마다 신체능력은 다르겠지만 내가 연습에 투자한 시간만큼만 그 동작을 해낼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턱걸이가 너무 하고 싶다고 말만 한다면 난 절대 턱걸이를 할 수 없다. 나는 왜 안 될까를 고민하는 시간에 한 개라도 더 연습하는 편이 턱걸이를 한 개라도 더, 그리고 빨리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크로스핏을 하면 할수록, 글을 쓰면 쓸수록 두 가지는 비슷하다. 글쓰기에 마감의 힘이 있다면 크로스핏에는 스퍼트의 힘이 있다. 제아무리 긴 시간이 있어도 마감일이 코앞에 있을 때 마법처럼 글이 써진다. 마감을 데드라인(Deadline)이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정해진 시간 동안 모든 동작과 횟수를 채워야 끝나는 크로스핏도 마지막 1분, 혹은 몇 초밖에 남지 않았을 때 더 빨리 할 수 있다. 스퍼트는 원래 달리기에서 어쩐 지점에서부터 전속력을 낸다는 뜻이다.
아무튼, 치열하게 쏟아내면서 요행도 없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그 가치를 알 수 있는 일들이 바로 운동과 글쓰기 아닐까. 이것들에 왜 이렇게 빠져있느냐고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적어도 나를 배신하진 않을 테니까. 몸이 거짓말하지 않듯 글쓰기도 거짓말하지 않는다. 쓴 만큼, 연습한 만큼 그만큼은 보여줄 수 있다. 그런 솔직한 점이 나하고는 잘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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