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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슬기 Jan 01. 2022

서른 즈음에

내가 운동을 결심하게 된 계기

유독 우리는 나이 앞자리 수가 바뀌는 걸 크게 받아들이지 않나 싶다. 나도 2에서 3으로 나이가 바뀔 무렵 “더는 예전과 같지 않을 걸? 주변 시선을 비롯해 많은 것이 바뀔 거야.”라는 말을 귀에 박이도록 들었다. 사람들은 나이 변화에 내 일처럼 진지했다. “당연하게 받던 호의적인 태도가 줄어든단다.”, “정서적으로 무너지는 날도 많아.”, “삶에서 젊고 아름답던 좋은 날은 다 끝난 거야.”…. 어디서 강아지가 짖는 소리, 고양이가 하품하는 소리 안 들려요?


나이에 따라 어울리는 지위와 성취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사회가 정해놓은 걸 제 나이에 이루어낸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되던가. 겨우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일에 인생 사형선고라도 받는 듯한 위화감을 느껴야 할까. 이미 그 나이를 지나온 사람들이 철썩같이 믿고 있고, 아직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이 진짜 그럴까봐 두려워 벌벌 떤다. 우리, 꼭 그래야만 해?


서른 살 무렵의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명예나 재력 중에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했다. 무기력과 권태를 못이겨 회사 생활을 관두고 독립해서 혼자서 삶을 꾸려간지 3년 차였던 그때. 나는 그저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감만 있었다. 어떻게 될지 한 번 지켜보자는 마음 뿐. 하루하루 고단했지만 그렇다고 막 기죽어 지내지도 않았다. 세상이 인정하는 범주에 들지 않아도 일상의 작은 것들로도 누릴 수 있는 낭만으로 족했다. 흔히 묘사되는 성공에 대한 집착이 적은, 나는 그런 사람이다. 


삼십 대도 이십 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건 다르게 말하자면 여전히 여러 가능성들과 함께 한다는 말이다. 주변과 사회에서 경고했던 수많은 이야기는 별로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좁은 세상이긴 해도 나만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가는 데 집중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든 게 불확실한 상태로 흘러간다는 사실이긴 했다.


불확실한 상황은 때때로 불안을 몰고왔다. 불안은 여러 범주로 치고 들어왔다. 다음 달 월세를 못 내면 어떡하지?부터 시작해 과연 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까지. 불안은 쓸데 없는 거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 가르치는 일로 밥벌이를 하게 되었을 때 수업하기 전엔 늘 불안과 비슷한 긴장감을 느꼈다. 그 긴장감은 내가 실수하면 어쩌나, 잘하지 못하면 어쩌나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오히려 집중해서 제대로 하게끔 만드는 동력이었다. 불안을 잘만 이용하면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서른 무렵 새롭게 생긴 불안 한 가지는 바로 몸이었다. 더 정확하게는 날로 무거워지는 살덩어리였고 쉬이 피로해지는 체력이었다. 말하자면 이것은 내가 이십 대에서 삼십 대를 넘어오면서 눈에 보이게 겪은 실체 있는 불안이었다. 어떤 건 눈에 보이기 직전까지도 믿지 못하는데 건강이 그렇다. 건강에도 관리가 필요한지 몰랐던, 스스로 건강체질이라고 자부했던 내 몸과 체력은 나이 앞자리의 변화와 동시에 급하강선을 그렸다. 


큰 질병이 생긴 건 아니었다. 다만 나 스스로도 이런 말을 자주 내뱉었던 것 같다. “아이고, 몸이 예전같지 않네.” 나는 굳이 먹는 것에 제한을 둔 적이 없었고 먹는 양에 비해서는 살이 ‘그렇게’ 찌는 타입도 아니었는데…. 미디어에서 대상화하는 몸매와 비교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비만으로 문제될 정도도 아니었고…. 하지만 점점 살집이 붙더니 몇 년 전 샀던 옷이 꽉 끼거나 입어도 예뻐보이지 않기 시작한 건 서른이 지나고 삽시간이었다. 아, 이것이 바로 ‘나잇살’이라는 거구나. 


몸의 무게가 더해갈수록 체력은 반대로 줄어들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이면 일어나기 힘들만큼 피곤했고 숙취의 여파도 며칠은 지속되었다. 자기 전에 뭘 먹어도 붓지 않던 얼굴이 어느 순간부터 부어서는 안 그래도 두툼한 눈두덩이가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이십 대 후반에 다시 시작한 학업으로 종종 밤샘을 하는 것도 더는 이십 대 초반 같지 않았다. 체력이 전과 같지 않음, 나를 고갈시키고 있음, 이런 걸 느끼게 만든 건 무엇보다도 집중력의 저하였다. 뭔가 제대로 할 여력이 달리는 기분. 아, 이것이 바로 ‘저질체력’이라는 거구나.


삼십 대가 된다고 해서 청춘이 끝나고 인생이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나잇살과 저질체력을 얻었다. 이로서 몸의 퇴화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다른 건 몰라도 몸의 변화를 경고해주는 역할인 듯 싶다. 몸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다른 것도 할 수 없다. 좋아하는 걸 하며 살고 싶어서 퇴사도 하고 독립도 했는데 건강을 챙기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 될 성 싶었다. 아무래도 게으름을 거두고 새로운 다짐이 필요할 때다. 다짐하기에는 그 어느 때보다 새해가 딱이다. 서른 살이 되던 새해, 나는 본격적으로 운동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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