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를 하면 생기는 일들
대중목욕탕을 안 간 지 오래되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19. 하지만 구태여 가지 않더라도 일상생활을 보내는데 아쉽지는 않았다. 사실 목욕탕은 내게 있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범주에 들지 않는다. 오히려 의무감이 드는 행동이다. 샤워로는 뭔가 충분치 않다는 느낌이 들 때 몸에 묵은 때를 벗겨낼 때가 왔구나, 싶다. 그러면 간편한 목욕용품을 챙겨 집 주변에서 가장 가까운 목욕탕으로 향한다.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곧장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탕으로 들어간다. 피부마다 뜨거움을 느끼는 온도가 다르기 때문에 탕 안에 들어가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다. 발부터 넣어 온도에 익숙해지면 허리춤까지 들어갔다가 서서히 상체를 물속으로 집어넣는다. 탕에 목까지 다 넣고 물속에 가만히 앉아 있기를 한 5분에서 10분. 좀 있으면 몸은 때 밀기 좋게 불어날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쓰지 않는 이태리타월로 몸에 붙은 각질들을 북북 박박 밀어내고 나면 몸무게가 500그램은 빠져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기도 했다. 모든 작업을 해치우고 바깥으로 나와도 몸에는 한동안 온기가 붙어있다. 그 상태로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바람을 맞으면 개운하다. 여기서 바나나 우유 같은 걸 마셔주면 하루치의 행복감이 채워진다.
대중목욕탕의 기억은 나의 어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맞벌이하던 부모님을 대신해 때가 되면 할머니와 함께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태리타월을 손에 낀 할머니의 드센 손길은 어리고 여린 내 피부를 발갛게 만들기 일쑤였고 나는 그게 고통스럽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그랬겠지만 나도 반드시 몸의 때를 벗겨내야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게 우리나라에만 있는 문화라는 걸 알았을 땐 왠지 속은 기분도 들었다. 때는 한 번 밀었던 사람에게만 계속 생긴다 ‘카더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미리 알았더라면 피부가 벗겨지는 듯한 고통을 피할 수도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곁에 할머니는 없지만 때 미는 행위를 관두지는 않았다. 어릴 땐 할머니가 내 몸을 닦아주는 일을 도맡아 했고, 어른이 되고서는 세신사에게 그 일의 비용을 지불했다.
그날도 오랜만에 몸에 묵은 때를 벗겨내고자 목욕탕엘 갔다. 세신을 하려고 탕 안쪽 구석에 자리한 맨들거리는 장판으로 된 침대 위에 누웠다. 미용실 의자에 앉으면 머리를 하는 동안 미용사와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지만 목욕탕에선 그런 일이 자주 없다. 알몸을 보이는 공간이라 그런 건지, 내 나이가 비교적 젊기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하지 않는 게 암묵적 룰이다. 세신사는 손짓만으로 고객의 몸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그리고 엎드리라고 지시하곤 하는데, 난 그런 손짓언어에 익숙하지 않아 늘 말로 해줘야 알아듣는다.
한창 몸을 맡기고 누워 있는데 세신사 분이 내게 물었다. “아이고, 여기 어쩌다 멍이 이래 심하게 들었대요?” 그러고 보니 그날 크로스핏으로 역도 동작을 열심히 한 터였다. 역도를 하고 나면 늘 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었다. 멍은 주로 쇄골 주변과 앞쪽 허벅지에 든다. 멍들의 색깔이 마치 크리스마스를 연상시킨다. 별로 아프지는 않았고 제법 웃겼다. 나는 “아, 제가 운동을 하거든요.”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다시 무슨 운동을 하길래 이렇게 멍이 드냐고 물었고 난 “역도요.”라고 말해주었다. 그것으로 대화는 끝. 그다음부터는 예의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엎드리고, 다시 앞으로….”와 같은 그의 명령에 따라 나는 내 몸을 빠짐없이 그리 하는 데 집중했다.
여러 가지 크로스핏 동작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를 꼽으라면 나는 무조건 역도. 크로스핏의 꽃은 당연 역도다. 두 발을 단단히 땅에 고정하고 서서 두 손으로 바벨을 힘껏 들어 올리면 누군들 자신감이 생기지 않을까? 전 국가대표 장미란 선수에게 미치지는 않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힘이 내 안에서 솟아난다. 역도를 할 때의 나는 절대 왜소하거나 약해빠진 사람이 아니게 된다. 이런 마음은 분명 역도를 하는 자세에서 기인한다. 자, 두 발을 어깨너비로 벌리고, 바벨을 잡을 땐 허리를 구부리지 말고,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힘껏 숨을 들이마신 후 바벨을 번쩍 들어 올리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바벨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두 손으로 바벨을 잡고 바닥에서부터 허벅지까지 들어 올리는 데드리프트(DeadLift)라는 자세가 선행되어야 한다. 바벨을 어디까지 들어 올리느냐에 따라 역도의 종류가 다르다. 역도에서 ‘용상’이라 함은 바벨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그다음에 머리 위로 올리는 동작이다. 크로스핏에서는 이를 클린(Clean)과 저크(Jerk)라고 한다. ‘인상’은 바닥에서부터 머리 위까지 단번에 들어 올린다. 크로스핏에서 이를 스내치(Snatch)라고 부른다. 내 몸의 근력만으로 들어 올리느냐(Muscle), 반동의 힘으로 들어 올리느냐(Power), 스쿼트 자세로 앉으면서 받아내느냐(Squat)에 따라 몸이 낼 수 있는 힘과 속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크로스핏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역도는 흔히 ‘쇠질’로 통한다. 쇠가 몸에 닿거나 쓸면서 멍이 들면 운동 좀 했네,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크로스핏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초보일 때는 클린이나 스내치와 같은 역도 동작을 하고 나면 앞 허벅지에 위아래 없이 중구난방으로 멍이 생겼다. 쇄골의 멍은 나조차도 헉, 소리가 날 만큼 커서 목이 패인 상의는 도저히 입기 민망할 정도였다. 조금 숙련된 후에는 쇄골의 멍도 그 크기가 줄어들었고, 허벅지에도 딱 한 군데에만 집중적으로 멍이 생겼다. 몸에 멍이 어떻게 들었냐에 따라 내 역도 수행 능력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역도 동작은 까다롭다. 하나의 동작을 위해 세분화된 단계로 배워야 했다. 처음엔 한 동작, 한 동작을 익힐 때마다 코치의 설명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그대로 하려 애썼다. 그러다가 여러 단계를 연속으로 이어할라치면 배운 건 오간데 없고 몸이 중심을 잃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하기 일쑤였다. 머릿속으로 잘해야지 맘먹으면 되려 잘 안되는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럿이 그런 몸개그를 하고 있노라면 어느새 저기서 코치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러분, 생각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이제부터 뇌가 없습니다.” 그 말에 겉으로는 웃었지만 속으로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맘을 먹게 되는 것이다.
MBTI 성격 검사에서 직관적인 성향을 가졌다면 어떻게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냐고 반문하겠지만, 나는 감각적인 성향이라서 아무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다! 실은 코치님의 말을 이렇게 해석한다. ‘나는 역도를 한다’는 것 외에 앞서 배운 것은 깡그리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움직여라. 왜냐고? 앞에서 연습한 걸 몸이 기억할 테니까 몸을 믿고 그냥 하면 된다는 얘기다. 코치님은 몸이 제대로 못 하는 건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아무리 머리로는 알 것 같아도 몸으로 계속 부딪혀봐야 하는 이유다.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거다!’ 싶은 느낌이 온다. 그렇게 제대로 가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워진다.
역도는 어느 정도 숙달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려서 더욱 소중하다. 나는 꽤나 신중한 타입(이라 적었지만 사실 겁이 많고 우유부단한 성격)이라서 역도를 배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매우 많은 생각을 했다. 딴에 분석적인 척해보았지만 이건 반복해서 달달 외우는 암기에 더 가까웠다. 내가 생각하느라 동작이 엉성할 때면 마치 슬로모션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기에 코치님으로부터 피드백을 자주 받았다. 사람들마다 약점과 강점이 다 다르다. 그래서 어떤 이는 유연성이 떨어지고, 어떤 이는 관절이 좋지 않고, 또 어떤 이는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역도 동작을 하는 데 변수가 생긴다.
역도는 당연 시간을 들여야 몸에 익는 동작이다. 그리고 바벨을 최대한 몸에 가깝게 붙여야 하는 동작이기도 하다. 몸에서 멀리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무거운 중량을 들기가 버거워진다. 바벨을 종아리부터 허벅지에 딱 붙이고 가슴을 지나 머리 위로 들어 올릴 때도 최대한 떨어지지 않게. 마치 헤어지기 싫은 연인처럼 애틋하게….
나도 바벨을 헤어지기 싫은 애인처럼 몸에 딱 붙이고 꾸준히 시간을 들여 연습에 매진했다. 처음보다는 몸이 기억하는 동작이 많아졌다. 몸에 동작을 새기면 이제 몸에 멍을 새길 준비가 되었다. 그러니까 내 몸에 든 멍은요, 오랜 ‘습’의 결과, 영광의 상처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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