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운동에 관한 이야기를 글로 쓰기 시작했을 때 책 한 권을 추천받았다. 제아무리 베스트셀러나 독자층이 두꺼운 인기 작가의 책이라 해도 내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관심조차 없다가도 누군가 ‘좋더라’ 이 한 마디면 나는 흔쾌히 마음을 내주고 만다. 이런 건 취향이 줏대 없다고 해야 할지 마음이 쉬운 축이라고 해야 할지, 그건 잘 모르겠다. 아무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내가 읽어 본 (많지 않은) 소설가의 산문은 문장이 굉장히 아름답거나 구태여 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느낌이다. 하루키는 후자에 속했고 그것은 소설을 읽을 때처럼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의 달리기에 관한 이야기를 두 눈으로 좇으며 나도 달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책에서는 오랫동안 달리기를 한 사람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심박수가 훨씬 낮다는 얘기를 했다. 하루키는 50에서 60 사이라고 하고 어떤 마라토너는 40이라고 한다. 그때 나의 심박수는 80. 운동을 오랫동안 하지 않던 시기였다. 내가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맘먹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낮은 심박수를 갖고 싶어서다. 평소 심박수가 70까지 내려가면 좋겠다. 나도 달리는 사람의 심장을 갖고 싶다. 하루키처럼!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학교를 졸업한 후로 몸을 쓰는 스포츠든 건강을 위한 훈련이든 몸을 움직이는 것과는 멀리 떨어져 지냈으니까. 달리기는 크로스핏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의 나는 반 대표 릴레이 주자로 뛰며 반 아이들의 함성을 온몸으로 받았었는데, 30대의 나는 뛰기 시작한 지 1분도 안 되어 두 무릎을 잡고 몸을 숙인 채 가쁜 숨만 내쉬었다. 알싸한 무릎 통증까지 느끼며 몸을 쓰지 않으면 퇴화는 금방이라는 사실을 마주했다.
한창 크로스핏에 재미를 붙이면서 달리기 동호회에도 몇 번 나갔다. 그러다가 또 귀찮아져서 관뒀다. 운동하지 않는 시기를 1여 년 보내다 다시 운동을 시작했고, 하루키의 산문을 읽었고, 다시 달려보기로 했다. 마침 내가 사는 곳은 조금만 걸으면 바닷가가 있다. 시작하는 첫날은 언제나 결연한 다짐이 뒤따른다. 앞으로는 바세권자의 삶을 바지런히 누려보리라!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꾸준히 달려보리라! 물론 금방 사그라들 다짐이지만 그래도 해보는 거지, 뭐.
달리기 전 간단한 다리 스트레칭을 한 후 스마트폰의 러닝 앱을 켜 달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달리는 내 몸은 제법 굳어있다. 예열이 되며 점차 숨이 차오르고 땀이 났다.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적당한 속도로 뛰었다. 스마트폰 앱에서 1킬로미터가 지났다는 소리와 함께 시간은 약 6분 30초가 지나갔다. 곧 옆구리에 통증이 퍼진다. 흔히 배가 땡긴다고 하는 이 통증은 횡격막의 경련 때문이다. 갑자기 강하게 달리기를 하면 창자와 횡격막이 붙어 있는 인대에 자극이 간다고 한다. 달리기 두 시간 전에 아침을 먹었는데, 그게 소화가 덜 된 걸까? 무리하고 싶지는 않은 마음에 이쯤에서 좀 쉬어야 할까, 생각하다가 그래도 포기할 정도는 아니니 조금만 더 뛰어보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저기, 길이 왼쪽으로 꺾이는 저 지점까지는 뛰자고 속으로 맘먹는다.
진짜로 점찍은 그 점까지 오자 배가 자꾸 아파서 속도를 줄였다. 걸으면서 숨 고르는 사이 옆구리 통증도 서서히 잦아든다. 가쁘게 몰아쉬던 숨을 재정비하고 조금 덜 회복되었을 때 다시 뛰기로 했다. 그때 하늘에서 얍실하고 촘촘한 비가 내렸다. 나오기 전 일기예보에 1시간 정도 소나기가 내린다고 한 사실을 떠올렸다. 대수롭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일상적인 외출이라면 몰라도 지금 나는 달리고 있으니까. 달리기를 할 땐 비가 와도 상관없는 마음이 든다.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데, 비 좀 맞는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오히려 비가 내려서 기뻤다. 최근 종종 비를 맞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아무 이유도 없이 비를 맞기란 엄두 내지 못했다. 이렇게 달리는 상황에서 비가 내려주니 자연스럽게 맞는다. 따로 용기 내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비를 맞으니 묘하게 해방감과 더 깊은 자유가 밀려왔다. 그런 충만함만 있었던 건 아니고 빗물이 자꾸 눈에 들어가는 바람에 제대로 눈을 뜰 수 없는 게 불편했다. 다음엔 모자를 써야지. 가끔 마른 땅에서도 넘어지는 경우가 있기에 빗길에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집중해서 발을 내디뎠다.
운동이든 노동이든 몸을 쓰는 행위 뒤에 사람들은 한결같이 개운한 감정을 느낀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면서 시원하다고 하거나 마찬가지로 온탕에 몸을 담그고 시원하다고 하는 것처럼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가쁜 호흡을 몰아쉰 후에 찾아오는 이 개운함은 느껴본 사람만 안다. 개운함은 복잡한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좋지 않은 기분이나 마음도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려 보낸다. 운동은 하기 전의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고 막상 해버리면 끝에는 이렇게 좋은 것들을 준다.
달리기든 운동이든 이렇게 개운함을 가져오는 것은 다름 아닌 생각하지 않음에 있다. 무념무상. 달릴 때 내가 생각하는 것은 고작 숨이 차다, 다리가 아프다, 얼마나 더 달려야 할까, 몇 분이나 지났을까, 좀 더 속도를 내볼까 따위다. 오로지 달리는 내 몸과 마음에만 집중한다. 몸을 움직이는 순간만큼은 번잡한 생각을 멈출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운동하게 만드는 이유 아닐까.
한 가지 더 얘기하며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하루키가 원고지 20매 분량의 글을 매일 쓴다는 것은 글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또 글쓰기만큼이나 달리기를 매일 한다는 것도. 사실 달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오래 하면 몸에 극도의 고통까지도 선사한다. 그럼에도 매일 꾸준히 달리는 것은 즐겁기 때문이라고 하루키는 말했다. 나는 달리기에 관해서는 백 퍼센트 이 말을 실감할 수 없다. 그렇지만 크로스핏에 관해서라면 한 구십 퍼센트 실감할 수 있다. 만약 나도 달리는 사람들이 느끼는 쾌감인 ‘러너스 하이’를 경험한다면 그 실감에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언젠가 꼭 한 번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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