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가도 콜라를 마셨다
꿈속에서 다른 공간으로 들어가 헤매고 있었다. 그 경계는 화장실이었다. 나는 오줌을 시원하게 누지 못하고 조금씩 길게 나누어 눴다. 한참 지나서 다른 사람들을 만나 함께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랐다. 그러다가 인간이 아닌 어떤 부류에게 잡혔다. 그러다 잠에서 깼다. 옆에는 반려묘 달이가 내 팔을 베고 누워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럴 때 집사라면 절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고픈 마음을 십분 이해할 것이다. 난 정말이지 달이의 체온과 내 팔에 기댄 느낌이 너무 좋아서 그대로 쭉 자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방광은 도저히 참을 정도가 아니었고, 잠에서 깬 것도 화장실에 너무 가고 싶었기 때문이라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했다. 몸을 조금 뒤척이자 달이는 금세 멀리 도망가버렸다. 아쉬움을 가득 담아 “달이, 미안해.”라고 말하고 곧장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꿨던 꿈이 실제로도 화장실에 가라는 신호였나 보다.
내가 잠에서 깬 건 화장실 때문만이 아니다. 꿈속에서부터 이상하게 몸이 덥고 땀이 났다. 감기에 심하게 걸리거나 몸살이 날 때 느꼈던 오한과 식은땀이었다.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고 나서도 온몸은 덜덜덜 떨리고 심장도 막 두근두근했다. 곧장 혈당측정기를 꺼내 손끝 채혈을 하니 화면에는 혈당수치가 60대로 뜬다. 부랴부랴 냉장고에서 콜라를 꺼내 한 모금 마신다. 콜라의 단순당이 직빵으로 혈당을 올려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한번 더 손끝 채혈. 혈당은 70대로 조금 올랐지만 내 몸은 여전히 덥고 땀이 흐르고 부들부들 떨린다. 심장박동이 거세서 불안함도 배가 된다. 콜라를 몇 모금 더 마시고 단백질볼도 입에 넣고 우걱우걱 씹는다.
깨어난 시간이 새벽 2시 20분 쯤이었고 다시 괜찮아진 때가 2시 40분이었다. 20분 정도 지나자 내 몸의 떨림과 땀은 점점 줄어들고 정신도 다시 맑아지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받은 교육용 책자며 리플렛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1형당뇨를 판정받고 인슐린 치료를 한 후 저혈당 증상을 겪은 건 처음이었다. 의사로부터 저혈당이 올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말은 듣기는 했으나 피부로 와닿은 건 아니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음식을 먹고 혈당이 높아지는 건 있을 수 있어도 혈당이 낮아지는 건 딱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1형당뇨인들이 모인 커뮤니티 카페에서는 저혈당을 겪은 얘기가 종종 올라왔다. 저혈당을 경험하는 혈당도, 그걸 느끼는 증상도 사람마다 조금씩 상이했다.
막상 겪어보니 저혈당은 정말 무서은 거구나, 실감했다. 경련이 일어나거나 마비가 올 정도는 아니었지만 몸이 덜덜 떨리며 정신이 혼미해지는 느낌은 그야말로 꺼림칙했다. 이러다 정말 정신을 잃을 수도 있겠구나. 처음 겪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아, 이건 저혈당 증세다.’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평소에 우리가 엄청난 노동을 하거나 집중해서 공부한 뒤에 “아, 당 땡긴다.”하고 느끼는 정도가 아니었다. 보통 사람과 달리 당뇨인은 췌장기능이 망가져 있으니 혈당이 하한선없이 무한정 떨어질 수 있고 그럴 땐 ‘당 땡긴다’정도가 아닌 ‘당이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 하는 상태가 된다. 나는 어떤 경험칙도 데이터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살기 위해 콜라를 마셨다. 떠오르는 건 입에 뭐라도 넣어야겠다는 것뿐이었다.
왜 저혈당이 찾아온 걸까. 지난 하루를 곱씹어보면, 그날 잠자리에 들기 전 허기를 좀 느끼긴 했다. 평소 세 끼를 먹지만 가끔은 아침저녁을 한 꺼번에 해결하고 두 끼를 먹을 때도 있는데, 그날이 그랬다. 그래도 저녁을 푸짐하게 배불리 먹었는데 왜 혈당이 내려간 것까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1형당뇨라는 게 원래 그런 거란다. 2형당뇨는 비교적 혈당폭이 크지 않은데 비해 1형당뇨는 춤추듯 혈당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허다하다. 게다가 인슐린의 부작용 중 하나로 저혈당 증세가 찾아오기도 한다. 저혈당은 자칫하면 정말 죽을 수도 있을 만큼 무서운 증상이다. 만약 몸이 저혈당을 자주 경험하게 되면 더이상 위험신호를 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몸에서 식은땀이 나고 심장이 쿵쾅대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어지러우며 몸이 떨리는 증상은 몸이 내게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내는 아주 똑똑한 행위다. 몸에 당이 부족하니 얼른 당을 섭취하라고 말이다. 저혈당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증상이 없으면 자신이 저혈당임을 모르기에 위험하다는 것, 그래서 평소에 최대한 당이 내려가지 않게 하는 것도 1형당뇨인이 해야할 관리였다.
나는 군것질거리를 쇼핑하기 시작했다. 저혈당이 올 것을 대비해 단순당이 들어간 간식을 상비하기로 했다. 커뮤니티 카페에 올라온 얘기를 들어보니 찰떡파이, 꿀스틱, 양갱, 과실음료 같은 게 혈당을 빠르게 올려준다고 한다. 당뇨가 되고나서 처음으로 좋은 순간이었다. 군것질을 치료 목적으로 죄책감없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당뇨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 그 좋아하던 군것질을 다 끊어야하나 싶은 마음에 우울했던 참이었다.
종종 간헐적으로 저혈당이 찾아오면 그럴 때마다 저혈당이 와서 자책하고 우울하기보다는 내 몸의 데이터를 쌓는다고 생각했다. 저혈당의 원인이 무엇일까 유추했다. 만약 인슐린을 너무 많이 맞은 것 같으면 그 다음엔 좀 줄였다. 먹는 것에 따라 인슐린이 작용하는 시간이나 용량도 다 다르기에 혈당이 춤추는 것은 내 몸의 소중한 데이터가 되어갔다. 저혈당이 오면 군것질을 할 수 있으니 좋은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잠들기 전, 자다가 깬 새벽에 무언갈 억지로 먹어야 하는 건 고역이었다. 내가 아무리 먹는 걸 좋아한다지만 자다가 깨서 반드시 먹어야 하는 건 하기 싫은 일이다. 저혈당이 올 때 씹는 것, 부피가 있는 음식을 먹으면 속이 부대낀다. 꿀스틱 같은 것도 너무 다니 입이 걸걸해져서 별로다. 가장 좋은 건 음료다. 단순당이 든 90ml짜리 과실음료 한 팩이 좋다. 하지만 너무 저혈당일 땐 15g의 당도 부족했다. 이제까지 저혈당을 가장 빠르게 올린 건 다름아닌 콜라였다. 평소에는 탄산음료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저혈당이 올 때만큼은 콜라를 대체할만한 건 없다. 탄산이라 속이 부대끼지도 않고 음료니 몇 모금 꿀꺽꿀꺽 삼키면 되고 그리고 나서도 바로 누워 잠들 수도 있다. 당뇨인인데도 콜라를 마시게 될 줄, 그것도 반드시 마셔야할 줄 누가 알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