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내안의나 11화

허영진: 항상 겸손한 배우가 될래요 (下)

by 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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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람이 좋은 배우다’라는 표현을 했는데요. 좋은 배우에는 겸손함이라는 마음가짐을 포함해 가져야 할 기술적 태도도 있을 것 같아요.

허: 겸손함이라는 마음가짐과 더불어 자기가 해야 할 바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해내는 배우가 좋은 배우라고 생각해요. 연기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과 호흡을 맞추는 작업이거든요. 주어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강약을 조절하며 주고받는 거죠. 예를 들자면 나보다 상대 배우가 돋보여야 하는 장면에서는, 내가 더 잘 보이려고 넘치는 연기를 하면 신 전체를 망치게 되는 것처럼요. 영화나 드라마라면 편집하거나 다시 촬영하면 되는데, 연극과 같은 무대에서는 아니거든요. 생각보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요. 강한 인상으로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욕심이 과하면 작품 전체를 망치게 되기 때문에 지양해야 할 태도죠.







처음 자기소개로 ‘연기하는 허영진입니다.’라고 해주셨는데요. 배우라는 직업에 초점을 맞춰 새롭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허: 도화지 같은 배우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어떤 역할을 해도 다 잘 어울린다고 해요. 저도 한 가지 이미지보다 다양한 모습을 선보이길 원하고요. 앞에서 사람들을 관찰한다고 했잖아요. 이로 인해 스스로 쌓인 빅데이터가 정말 많은데, 이 데이터를 다양한 모습으로 연기에 녹여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웃음).


보통 연기를 시작하면 주인공을 하고 싶어 하는데요. 반대로 저는 주인공에 흥미가 적었어요. 뭔가 역할이 정해진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 멋진 모습만 보여줘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재미를 줄 수 있는 다양한 역할을 주로 맡았어요. 재미를 주는 역할을 조금 더 설명하자면, 제 해석을 더 많이 녹여낼 수 있는 역할을 의미해요.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어요.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맡다 보니 반대로 주인공을 연기하는 건 쉽더라고요. 반대로 주인공만 주로 했던 친구들은 제가 했던 연기를 어려워하더라고요.









다양한 역할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허: 대학교에서 선보였던 창작 뮤지컬이 기억나는데요. 실존 인물인 아프리카 르완다 부족의 이야기예요. 부족장님이 한국에 오셔서 직접 만나기도 했어요. 르완다라는 나라도 저에게는 생소한데, 살아있는 실존인물을 연기한다는 특별한 경험이 큰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텍스트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과 실존인물에게 듣는 이야기는 정말 다르더라고요. 내용도 더 구체적으로 들을 수 있고 당사자가 느꼈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죠. 물론 이때도 관찰을 하며 그분의 습관 같은 것들을 연기로 가져오기도 했고요(웃음).







좋아하는 작품이나 장르는 무엇인가요?

허: 주제 의식이 명확한 작품보다 생각에 잠기게 하는 작품을 좋아해요.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 <버닝>이 좋은 예가 되겠네요. 처음에 영화를 보고 ‘그래서 뭐?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이 원작인 것을 알고 난 후 책도 읽었는데, 더 많은 물음표만 남기더라고요. 그래서 영화관에서 다섯 번 관람했어요. 스스로 해석하고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찾아보기도 했는데요. 모두가 다르더라고요. 각자의 시선과 가치관, 처한 환경이나 감정에 따라서 작품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게 재밌더라고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님의 영화도 좋아해요. 영화를 보고 난 후 스토리가 이해되지 않거나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캐릭터의 행동이나 화면에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할 정도로 감독님만의 표현을 구체적으로 담아놨거든요. 원인과 결과를 따라가면서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 감독님의 의도를 유추하는 게 재밌더라고요.







10년 넘게 배우의 길을 걷고 있잖아요. 본인이 좋아서 하는 일에도 장점만 있진 않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장점과 단점을 더 명확히 구분하고 있을 것 같아요.

허: 시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어떤 마음으로 임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10년 넘게 진심으로 공부했기 때문에 연기에 대한 전문성이 생긴 게 장점일 것 같아요.


반대로 단점은 노력에 따른 보상을 확신할 수 없다는 거예요. 주변에 잘 풀리지 않아서 ‘이걸 그만두면 뭘 해야 하지?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인데.’라는 막막한 생각을 가진 친구들이 있거든요. 한 우물만 파다 보니까 사고의 흐름이 연기에만 멈춰 있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일부러 다양한 사람을 만나려고 해요.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대화하면서 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고 있어요.







배우라는 직업을 지속할 수 있겠다는 결심을 갖게 된 계기는요?

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처음부터 배우라는 직업이 저와 잘 맞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직업을 지속하느냐 마느냐는 다른 문제더라고요. 지금도 경제활동을 위해 배우와 다른 일을 겸하고 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배우로서 돈을 벌며 지속해 나가는 걸 보면 ‘내가 시간을 헛되이 쓰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좌절의 순간이나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 이런 만족이나 성과 없이 포기해야 할 이유만 찾다 보면 정말 포기하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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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를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본인의 감정이나 어떤 것을 표현하고 싶기도 하나요?

허: 한 번은 그림을 그린 적이 있어요. ‘글처럼 명확한 형태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내 감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갤러리나 미술관에 가도 일부러 작품 해석을 읽지 않거든요. 연기처럼 저의 그림을 통해 사람들이 생각하게 하고 싶다는 마음도 가져봤어요.







스스로 사고하며 작품을 해석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요.

허: 그렇죠. 저는 모든 것의 이유를 끝없이 파고들었어요. 1+1=2라는 간단한 식도 ‘왜?’를 붙여가며 끝까지 파고드는 연습을 많이 했어요. 연습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저에게는 놀이였어요. 이해가 안 되고 말이 안 돼도, 계속 답을 찾다 보니까 어떤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보통 책에 답이 있었어요.








어떤 책을 주로 읽는지 궁금한데요. 최근에 읽은 책은 무엇인가요?

허: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수사학>이라는 책인데요. 너무 어렵더라고요(웃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 데다가 책도 두껍더라고요. 꾸역꾸역 페이지를 넘기면서 기원전 사람들이 보고 느꼈던 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게 신기했어요. 수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진리는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요.







앞에서 잠시 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현재 배우활동 외 어떤 경제활동을 하고 있나요?

허: 다행히 학교에서 뮤지컬을 전공하며 배운 노래로 결혼식 축가를 부르고 있어요. 평일에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요. 오늘도 아침에 잠깐 하고 왔어요.







사실 앞의 질문은 오디션에 대해 묻고 싶어서 인데요. 오디션 날짜가 정기적으로 정해진 것도 아니고 급작스럽게 공고가 나기도 할 것 같거든요.

허: 오디션 날짜가 확정되면 일하는 곳에 먼저 양해를 구해요. 너무 감사하게도 오디션이 먼저니까, 잘하고 오라는 말씀을 해주세요. 지금까지 모든 분들이 이렇게 응원해 주셨어요. 사실 민폐가 될 수 있는데 제 입장을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연기 수업을 하기도 하잖아요. 연기를 가르치다 보면 다양한 상황이 있을 것 같은데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소개해주세요.

허: 연기를 공부한 게 아닌 동아리나 취미활동을 통해 무대에 서야 하거나, 자신감을 기르고 싶다는 이유로 저에게 의뢰를 주세요. 그런 분들께는 이론적인 부분보다는 연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수업을 진행했어요.

그중에서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는데요.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를 읽고 감동받았다는 여자친구를 위해서, 작품 속 장면을 연기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작품 속 주인공의 대사를 함께 찾고 고르면서 연기를 지도했죠. 잘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여건이 되면 영상을 찍어서 보내달라고 했는데 이후에 연락이 오지 않아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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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질문입니다. 배우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길 바라나요?

허: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가진 편견이 있잖아요. 가십거리로 다루는 부정적인 부분이 커서 안 좋은 인식이 큰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모든 직업에 있어서 이런 사람 저런 사람 있듯이, 배우라는 직업 안에서도 진심으로 공부하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1. 인터뷰이 허영진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_heoyoungjin/

2. 인터뷰어 배대웅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ifyouknowb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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