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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얌 Sep 19. 2022

복어를 살려주다

고향 바다에서 다시 만난 친구와 복어

LA에서 친구가 왔다. 초등학교 동창인 우리 부부는 안부를 묻기도 전에 친구의 눈빛에서 향수를 읽었다. 친구와 우리는 낚시도구를 챙겨 고향으로 향했다.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는 골목길로 들어섰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한참 후, 여기가 자기 집이 있던 곳이라 했다.




친구의 옛 집터엔 2층 양옥이 들어서 있었고, 앞마당엔 쌀쌀한 날씨에도 동백꽃이 만개해 있었다. 친구는 연신 집 안팎을 살폈다. 장독대와 우물 벽돌담도 손바닥으로 훑으며 채송화와 꽈리가 있었다는 장소도 가리키고, 뒷마당의 흙을 한 움큼 만지며 냄새를 맡기도 했다. 지나간 시간을 되찾으려는 듯 그의 큰 두 눈에선 눈물이 맴돌고 있었다. 친구는 미적대며 발을 떼지 못했다. 그에게 고향집은 어머니의 자리였다.


친구는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20년 전 어머니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을 때 아들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친구는 고단하게 살아온 어머니가 안타까워 침상 아래 돈다발을 깔아드리면서 목 놓아 통곡했다. 어머니께서 고지대에 살던 시절, 빗물로 밥을 지어 타향에서 공부하는 아들 친구들까지 따뜻하게 보살폈다는 이야기도 했다. 작은 에피소드 하나까지 추억하고 있는 친구의 말에서 오랜 세월 타국에서 그가 겪었을 외로움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음 우리들의 목적지는 낚시터였다.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판데목 해안도로를 한가히 걸으면서 우리는 달라진 경관에 놀라워했다. 바다에는 큰 배들이 속력을 내며 지나가고, 작은 배들은 파도타기를 즐기고 있었다. 작은 배들은 큰 배에 꽁무니에 얹힌 목줄을 놓칠세라 붕붕거리며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옛날엔 미수동으로 가려면 해저터널(일본인이 바다 밑으로 파 놓은 굴다리)로 다녔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통영대교가 당당하게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나폴리를 거닌다는 상상 속에 노래를 불렀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남편과 친구는 방파제 끝에 자리를 잡고 낚시를 했다. 나는 섬처럼 우뚝 방축에 앉았다. 문득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의 어느 겨울날이 떠올랐다.




어부이신 아버지를 따라 조그만 통구밍이(조각배)에 돛을 달고 노(櫓)를 저어 욕지도에 갔을 때, 우리는 많은 물고기를 낚았다. 도미, 볼락어, 수밍어, 꺽더구(황점볼록), 도다리, 삼벵이 등 색색 물고기를 낚아 올렸다.


그때 새끼 복어가 미끼를 물고 올라오면 아버지는 어리다는 이유로 바다로 다시 돌려보내 주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다. 그 복어들이 커서 되돌아와서 금복어가 된다는 사실을 훗날 어른이 된 뒤 알게 되었다.





그 일주일 동안 아버지와 나는 물고기를 잡았다. 물간 마다 물고기들이 가득할 때면 고기들을 살려서 팔아야 제값을 받고자 아버지와 나는 쉬지 않고 이틀 동안 노를 저었다.


그런데 서호시장으로 가던 중, 우리 배가 판대목 썰물에 떠밀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우리 배를 본 내 친구들이 어깨에 밧줄을 매고 젖 먹던 힘을 다해 힘껏 당겨 배는 무사할 수 있었다.




수십 년이 흘렀건만 바다는 변치 않고 아름답게 일렁인다. 그 물결 위로 겹치는 친구들 얼굴이 새록새록 반짝이며 바닷물을 홈질한다. 그때 우리 배를 안간힘을 다해 끌어당기던 친구들 얼굴이 떠오른다. 금용이, 옥자, 경화, 순철, 태운이... 고맙고 너무도 그리운 얼굴, 얼굴들이다.



권현망 모선 두 척에서 굴뚝 연기통을 붕붕거리고, 그 뒤로 예닐곱 꼬마선들이 큰 배의 목줄을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가고 있다. 그리고 배들의 꽁무니를 줄지어 날아가는 바다 갈매기들의 날갯짓은 배들 못지않게 장관이다. 저 어선들과 갈매기 떼처럼 우리들의 삶이 순탄하게 흘러간다면 좋으련만... 과거와 현재의 시간들이 마치 한 올 한 올 얽어 만든 그물코처럼 짙푸른 물살 속에서 하늘거린다.


방파제 끝에 서서 친구와 남편이 손짓을 했다. 추억에 허기진 우리 낚시꾼들을 위해 낚싯줄이 흔들리며 드디어 복어가 물렸다.




어릴 적 우리에게 복어는 장난감이었다. 배를 땅바닥에 비비면 복어는 공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걸 발로 '뻥' 차서 터뜨리며 우리는 깔깔거렸다. 요즘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개미를 가지고 놀듯, 그 시절 우리는 복어를 괴롭히며 철 없이 재밌어했다.


이제 성인이 된 우리는 막 낚시에 물린 복어의 낚싯바늘을 뽑아내었다. 그 옛날 어부 아버지처럼 나는 복어를 바다에 풀어 주었다. 물속으로 헤엄쳐 멀어져 가는 모습에 마음이 흐뭇해졌다.



“운 좋은 복어들아! 멀리멀리 헤엄쳐 가거라, 가서 너희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주렴. 내년 이맘때도 우리는 이곳에 서서 너희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2014년 『월간문학』 7월호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표제:  Clker-Free-Vector-Images

본문 1.  jacobjayu0

       2. samyoung pyun

       3. 용한 배

       4. 서 은성

       5. liggrafik

       6. TRẦN V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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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할머니, 구하나

: 손자들을 키우러 상경했다 60에 여고 입학, 70에 국문과에 입학, 팔십대인 지금까지 팔팔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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