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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얌 Apr 10. 2022

여드름 소녀를 닮은 멍게

아버지와 함께 멍게를 따던 시절이 있었다.

고향 바다에는 아버지를 닮은 것들이 참 많다. 그 중 하나가 멍게다. 이제 멍게빵까지 나와서 나는 더 자주 아버지를 생각하게 될 것 같다.


방축에 매달린 조각배의 벼릿줄은 잔잔한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린다. 방축 끝 말뚝에 묶인 벼릿줄은 배배 꼬여서 자리다툼이 시작되기도 한다. 이제 막 들어온 저인망 어선에서 대여섯 명 어부들이 넓고 긴 그물에 걸린 전어들을 어부가와 함께 툭툭 털어댄다. 은빛 물고기들이 연신 살려달라 꼬리를 흔들며 나부대는 모양이 애처롭다.


뱃사람들이 물고기를 그물 쪽으로 퍼 올려 나무상자에 담는다. 고기 상자를 가득 실은 트럭은 어판장으로 달린다. 비닐 앞치마를 두른 생선 장수 아주머니들은 머리에 빨간 플라스틱 통을 이고 줄을 서있다가 자신의 통에 물고기가 담기자마자 잽싸게 달린다. 그 바람에 물이 통 밖으로 넘치고 이를 틈 타 펄펄 뛰는 몇 마리 물고기들도 튀어나온다. 요행도 잠시, 물고기들은 땅바닥을 뒹굴다가 지나는 행인의 발에 밟혀 퍼덕거린다. 순신각에 행과 불행이 몇 번이나 자리바꿈하는 것이 마치 사람의 일생 같다는 생각을 하니 살려고 몸부림치는 물고기들이 처연하기만 하다.


강구안의 땅에서 눈을 들어 바다를 본다. 먼바다에서 한 척의 배가 멍게를 산처럼 높이 쌓아 들어온다. 천천히 들어오는 배는 마치 물 위를 걸어오는 피라미드처럼 보인다.


또 강구안 한 편 구석진 곳에서는 말 없이 재게 손을 놀리느라 분주하다. 생선이 담긴 다라 앞에 쭈그려 앉은 여자들이 시멘트 바닥에 빙 둘러앉아 다라에 담긴 고기들을 한 마리씩 차례로 꺼내 비늘을 벗겨낸다. 그리고 쇠 칼로 생선 꼬리를 툭툭 치면 옆에 있던 다라 안의 고기들은 그 소리에 먼저 놀라 몸을 배배 꼰다. 생에 대한 의지로 가득찬 여인들에게 물고기들의 몸부림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배를 타는 사내들 못지 않게 거친 여인들의 손은 가정을 이끌어온 내력이기도 하다. 나란히 주르륵 앉아 각자의 도마와 칼, 생선에 온 신경을 집중한 모습은 경건하게까지 보인다. 내장을 꺼내고 등뼈를 가를 때면 그 손은 누구의 손인지 분별할 수 없을 정도다. 손으로 홱홱 던진 납작한 생선들을 씻어내는 바닷물 주위는 선홍색으로 넘실거리면서 수채화를 그린다.


생선을 말리는 과정에는 또 다른 작업이 필요하다. 생선들을 45도 각도로 비스듬한 막대기에 걸쳐진 대발 위에 납작하게 줄지어 펼친다. 듬성듬성한 대발 구멍에서 올라오는 해풍이 생선에 이 고장의 풍미를 더해주리라. 통영 여인들의 익숙한 손질에서 탄생한 반건조 생선의 짭쪼름한 향은 내게 '추억의 향기'이다.


시계를 보니 오후 3시경, 나는 예전에 그림을 함께 그리던 지인을 만났다. 우리가 멍게빵이 신기하다며 감탄하자 카페 주인이 제조법을 설명해줬다. 


"멍게빵은 멍게 껍질을 말려서 밀가루처럼 가루로 만들어서 만듭니다."


 예전에 멍게는 삶거나 혹은 날로 초장에 찍어 먹거나 된장이나 국만 끓여서 먹거리를 했는데, 요즘은 이렇게 멍게 껍질까지 버리지 않고 빵을 만든다는 말을 듣고 놀라웠다. 문득 유년 시절 아버지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열 살 남짓할 무렵, 나는 아버지와 조각배에 돛을 달고 바다 밑의 멍게를 따러 갔다. 망망대해의 당산 끝에서 아버지께서는 닻줄을 세 개씩이나 뻗쳐가며 배를 고정을 시키셨다. 그러고 난 뒤 큰 장대 끝에 매단 쇠갈고리로 멍게를 따올릴 채비를 하셨다.


아버지께서는 서너 발 가량 되는 왕대를 어깨에 둘러메고 물속 깊이 있는 멍게( 자연산 멍게)를 따기 위해 두 시간가량 계속 왕대를 흔들었다. 아버지의 어깨 힘, 배의 힘, 나는 배등에 서서 흔들면서 삼박자가 합창을 하 듯했다. 그 힘이 전해져 배도 아버지처럼 꿀렁꿀렁 굴렀다.


시간이 흐르면서 깊은 바다 밑 멍게도 어쩌지 못해 군집된 멍게 발들이 쩍쩍 소리를 내며, 마치 시루떡이 돌금 돌금 갈라지는 모양으로 떨어졌다.

아버지께서 소리치셨다.


 “멍게가 올라온다! 바다 밑에서 꽃이 올라온다!”라고.


정말 멍게들은 큰 꽃처럼 아름다웠다. 빨간 공처럼 동글동글한 멍게는 동생을 젖먹일 때의 엄마 젖처럼 퉁퉁 불어 있었다. 엄마 가슴 같은 선홍색 공, 다닥다닥 붙은 하얀 멍게발, 소녀의 여드름 같은 멍게코... 그렇게 멍게는 정겹고 친숙한 것들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 배는 이렇게 한 배 가득 멍게를 싣고 돌아왔다. 가득 딴 멍게들은 이웃들과도 나누어 먹고, 노란 살을 까서 짚으로 한 묶음씩 꿰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다. 지금처럼 멍게 젓갈, 멍게 비빔밥, 멍게빵 같은 먹거리도 만들 줄 모르든 시절이었다. 오로지 그냥 생으로 먹었지만 그래도 멍게는 바다의 선물이었고 아버지의 땀이었다.




내 유년의 조각보에 수놓아진 추억들, 소녀의 여드름 난 얼굴 같은 멍게. 그 멍게는 아버지 어깨의 검푸른 멍 자국과 함께 지금도 고향, 통영 바다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내 앞에 놓인 멍게빵은, 멍게도 아니면서 멍게인 척, 또 한번 아버지를 생각나게 한다. 멍게처럼 고향 바다에 잠들어 계신 아버지의 땀 냄새가 해풍에 실려온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글쓰는 할머니, 구하나

: 손자들을 키우러 상경했다 60에 여고 입학, 70에 국문과에 입학, 팔십대인 지금까지 팔팔하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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