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UBUD_day4
내가 아침부터 길을 나선 건(오늘이 체크아웃 데이임에도!) 근처에 ACAI 스무디볼 매장을 봐 두었기 때문이다.
숙소에서도 조식을 먹을 수 있었지만 스무디볼 못 참아.
문 열자마자 들어가는 부지런한 여행객. P는 상상도 못 할 나에게만 무계획인 여행이 계획대로 착착 흘러가고 있다. (mbti 과몰입 중)
이제 슬슬 이곳의 더위에 익숙해지는 것 같다. 나름 요령이 생겼는데, 아침 일찍 이동해서 한낮에는 매장에 있다가 다시 3시쯤 움직이는 것.
그래 봐야 acai queen처럼 노 에어컨 매장에선 소용없는 일이지만.
아사이볼은 훌륭했다. 특히 그레놀라인지 뭔지 정말 맛있어서 나중에는 골라 먹었다. 코코마켓에 가거든 저건 좀 사 갈만 하겠다.
혼자 해외로 여행을 가면 싫은 순간을 몇 번 만나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지금 같은 순간이다. 비교적 덜 유명한 스타벅스를 찾아 조용한 아침 시간을 보내려고 했건만 여지없이 들어오는 화려한 옷차림의 한국인.
그들도 여기서 나(한국인)를 만난 게 썩 달갑지 않겠지만 나 역시도 피하고 싶은 게 사실이다.
벌써 여행의 1/3이 지나고 있다니. 어제는 잠들기 전에 그간의 기록을 보다가 그리워져 버렸다. 아직 우붓인데도 우붓이 그립다니. 여긴 도대체 어떤 곳일까.
매연 가득한 공기, 발리밸리(라고 부르고 장염)에 걸릴 까 봐 얼음도 함부로 먹을 수 없는 곳이 대체 왜 이렇게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건지. 그리고 나는 또 왜 거기에 이끌린 건지.
밤에 도착한 첫날을 제외하고 3일을 지내보니 여긴 매우 게으른 곳이다. 바쁘게 움직려고 해 봐야 그럴 수가 없다. 덥고 덥고 또 더우니 조금 걷다가 이내 포기.
서두를 것 없잖아. 나는 아무 의무나 책임이 없는 자유로운 여행객인 걸. 나에게 주어진 건 그저 여행을 즐기는 것 뿐.
오늘은 좀 더 시내 외곽의 정글로 들어간다. 시내와 제법 거리가 있는데, 여기까지 온 이상 호캉스도 한 번은 해야 하지 않나 싶어 선택한 곳이다.
더 카욘이니 아야나니 유명한 호텔도 많지만 예약 당시에 소속이 없는 신분이었던 관계로 적당한 가격선에서 합의를 봤다. 11시 30분이었던 체크아웃 시간을 30분 늦춰 놨으니 좀 더 여유를 부려도 되겠다.
해외까지 와서 벌써 두 번째 스타벅스라니 이게 무슨 여행자답지 않은 행보인가! 내가 아무리 ‘여행객이라면 현지 음식도 잘 먹고 현지인처럼 보내야지’ 결심한다 해도 구글맵 없이는 아무 데도 못 가는 데다가 식당을 갈 때도 구글 평점과 리뷰를 볼 수밖에 없다. (구글 님은 천재시고 저는 현지인을 흉내 내는 여행객일 뿐입니다.)
고젝 바이크는 무척 재밌고 편리하다. 오토바이라니 처음엔 좀 겁이 났는데 이내 익숙해져서 5분 이상 거리는 고젝 바이크로 다녔다. 배가 너무 부르거나 주변을 좀 보고 싶을 땐 걷기도 했는데 이러다 쓰러지는 건 아닐까 싶었으니까.
바이크를 타고 지나가는 풍경을 보다가 문득 유리에 미친 나는 늘 웃고 있었다. 왜 이렇게들 나에게 인사를 하나 했더니만 웃고 있으니 말 걸기 쉬웠겠구먼.
이따금 현지 구멍가게를 지나가기도 했는데 mini MART나 circle K 같은 편의점은 처음 봐도 구멍가게는 제법 익숙했다. 14년 전에는 아마 저런 곳에만 갔었을 거다. 난 돈 없는 여행자였거든.
정든 내 첫 번째 우붓 숙소를 뒤로 하고 정글 속 호텔로 이동했다. 가격이 5-7배는 될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숙소는 훌륭했다. 창문 너머 보이는 정글도 예쁘고. 수영을 잘 못 하는 나에게 적당한 수영장도 마음에 들었다.
이제 여기서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