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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붓 숲속 한 가운데서 요가를

04. UBUD_day3

오늘도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어제 우연히(?) 시간이 남아 참석한 요가반_YOGA BARN의 요가가 매우 좋았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힐링힐링한 명상 겸 스트레칭 코스를 들을까 빈야사를 들을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숙소를 나섰다. 그러려고 한 건 아니지만 이미 이 여행에 계획 따윈 없거든. 뭐가 됐든 도착해서 결정하자.





이번에는 아침 요가. 가장 가까운 시간에 들을 수 있는 클래스는 빈야사였다. 빈야사 강도가 꽤 강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일단 등록.



수업 시간 전에 선생님이 한 명씩 인사하면서 특별히 원하는 것이 있는지 물었다. 나는 그냥 relax를 원한다고 했다. 너무 강한 요가 말고 여유 있게 즐기고 싶다고.


내 말을 듣고 선생님이 빵 터졌는데 이유를 모르겠다. 어림없다는 뜻이었을까.


내 얘기 때문인지 그녀는 학생들에게, 아니다 요기니들에게 서두를 필요도, 무리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고. 자신을 느끼고 지구와 맞닿는 순간을 경험해 보라고.


.. 참 성실한 나는 잘도 그 얘기를 실천했다. 동작은 반도 못 따라가는데 눈치 없이 땀은 왜 그렇게 나는지 이러다 내 팔과 다리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닐까 고심하다 보니 수업이 끝났다. 요가하러 발리 간다는 나의 야심 찬 계획은 그걸로 종료. (까불어서 미안합니다.)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요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영성 때문이다. 정신을 깨우고 영적인 의미까지 받아들이고 나면 긴장된 나의 일상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주는 것 같아 좋았다.


요가반에서의 빈야사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중간중간 하늘의 LOVE를 받아 가슴에 품고, 다시 LOVE를 끌어당겨 땅으로 내보내는 동작을 반복했는데 그 순간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결국 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 하늘과 나 그리고 땅, 하나인 우리.


아무튼 그렇게 하늘의 기운을 받아 땅으로 보내고 나니 뭔가 기특한 일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요기니들이 많기 때문일까. 발리에는 꽤 여러 개의 비건 레스토랑이 있는데, 오늘 zest라는 비건 레스토랑 & 펍 앤 바에 가기로 했다.



우아, 님들 여기 왜 안 가요?


진심 우붓에서 간 곳 중에서 손꼽히게 좋았다. 들어가면서부터 우아~ 소리가 절로 나는 풍경. 레스토랑 안의 분위기도 힙해서 두 시간 정도 식사도 하고 글도 쓰며 시간을 보냈다.


스파 예약만 아니었으면 더 있어도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것 같다. 다시 생각해도 베스트.



05. tip for traveling in bali
*지점명: ZEST
*총평: 무조건 가세요! 가는 길이 조금 험하긴 한데 투자할 가치가 있습니다. 노트북, 책 뭐든 들고 가서 앉아서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세요.
비건 데리야끼 버거랑 아이스 롱블랙 주문. 버거는 약간 짰지만 나쁘지 않습니다. 양이 꽤 많아서 2인이 갈 경우, 버거 하나 시키고 사이드 메뉴를 추가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아보카도가 듬뿍 들어있음. 롱블랙 굿.
경치 + 힙한 분위기 미쳐 버린 곳.
*추천 지수: 5점(5점 만점)


여기서 브런치에 올릴 글 하나 뚝딱 쓰고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무계획 여행자인데 은근 일정이 타이트한 J의 여행이란 정말 못 말려.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으니라고.






@카르사 스파, 숲속에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어요


다시 고젝 바이크를 타고 이동한 곳은 카르사 스파. 센터에서 제법 떨어져 있어서 걸어가는 건 무리다. 인기가 많아 두 달 전에도 예약이 꽉 찬다는 소문을 듣고 여행이 정해지자마자 카르사 스파부터 예약했다.


이래도 내가 무계획이야?(아무도 안 물어 봤는데 왜이래)


@RECEPTION
@마사지 설문지 작성하고 오일 향도 고른다
@야외에서 홀딱 벗고 있자니 상당히 머쓱하지만 해냈다!



나는 태국, 그것도 방콕을 여러 번 여행한 경험이 있는데 이유의 5할은 마사지다. 저렴한 가격에 시원한 마사지를 받을 수 있으니 몸이 찌뿌둥해지면 방콕에 와야 하는 거 아닐까 생각했다.(요즘은 가격이 많이 올랐다지만)


카르사 스파는 숲속 한가운데서 물소리 새소리 정체 모를 소리를 들으며 마사지를 받을 수 있어서 인기가 좋다. 마사지는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부드러워 만족스러웠다. SANTI라는 마사지사에게 팁을 듬뿍 주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현금을 거의 쓰지 않아서 그나마 가지고 있는 작은 돈을 모두 털어 주었다.


이날의 마사지 이후에 누가 내 몸을 가차 없이 두드려 팬 듯한 근육통에 시달렸는데 생각해 보니 마사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마사지를 받을 때마다 느끼는 건 내가 그간 긴장된 상태에서 살았다는 것과 경직된 근육이 단지 어깨만은 아니라는 것. 마사지받을 때조차 의식적으로 힘을 빼지 않으면 좀처럼 스스로 이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이토록 혹독한 거지 뭐야. 긴장을 늦추고 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늘 긴장하고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긴장을 풀기 위해 제일 먼저 동네 산책(?)부터 했다. 숙소 주변을 파악하고 나면 어느 정도 낯선 긴장이 풀리고 그때부턴 조금 더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의 긴장은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는 새로운 환경과 사람을 만나면 엔도르핀이 돌고 기분이 좋아진다던데 나는 긴장부터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얼마나 많은 ‘낯섦’을 만나고 적응하느라 온 근육이 수축되고 미어캣처럼 주위를 살피며 살았던가. 재밌는 건, 내가 이렇게 낯섦에 취약하다는 걸 주위에선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그 또한 나의 가면, 그런 척하는 것임을 다들 모르겠지.


당신들은 속고 있다. 사실 나는 뼛속까지 I야.







@짬뿌한 로드, 트래킹하기 좋아요. 강추합니다!



시원하게 마사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짬뿌한 로드를 걷기로 했다. 한낮이라면 절대 도전하지 않았겠지만 이미 시간이 4시에 가까워 오고 있었고 바람도 살랑살랑 부는 게 기분이 좋았기 때문이다.


길을 걷다 보면 문득 정글 한가운데 혼자 남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여기선 누가 날 잡아가도(그게 심지어 들짐승이라 해도!) 모르겠다 싶어지면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러다 건너편에서 또 다른 트래킹 여행객을 만나면 그 인기척이 그렇게나 반갑다. 이 긴 길 가운데 혼자가 아니구나. 우리는(?) 마주쳐 지나가며 가벼운 인사를 하곤 했는데 하나같이 굳어진 표정이 펴지고, 환하고 반가운 미소로 서로를 맞이했다.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요가에서 배운 것처럼 하늘의 사랑을 받아 내 가슴에 품고 다시 사랑을 모아 땅과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이 길 위에서도 사랑을 만난다.






대략 30분 정도를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의 끝이 나타났다. 카르사 스파까지 걸어서 갔다면 출발했을 곳으로 도착해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오늘은 된장찌개와 삼겹살을 먹을 거야. 내가 이렇게나 한식을 좋아하는지 몰랐네.



@SINSSIHWARO
@SINSSIHWARO
@KIMCHI & BINTANG
@삼겹살(100g)
@된장찌개



시내를 그렇게 돌아다녔는데 처음 가 보는 길로 한참을 들어가니 나타난 신씨화로. 훌륭한 여행 선생님인 유튜브에서는 직접 구워 먹는다고 본 것 같은데 이날은 다 익혀서 서빙되었다. (정책이 바뀐 걸까?)


삼겹살보다는 마늘이 반갑고, 된장찌개에 밥 한 공기 뚝딱 가능한 곳.


여기 와서 한식의 맛평가는 의미 없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걸!


마늘, 고추, 김치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고 싹싹 먹고 나니 밤이 되었다.


이제 내일이면 좀 더 정글로 숙소를 옮긴다. 다소 아쉬웠던(그 가격에 예약했으면서 기대하다니!) 가성비 숙소였는데 막상 떠나려니 아쉽다. 이렇게나 정을 빨리 주는 나, 못 말린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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