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by 그리다

반짝이는 도시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들.

날마다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와 자극 속에서 지내는 우리들의 이야기.

매일이 빠르게 흘러가고, 바쁜 일정과 목표 달성에 몰두하지만, 문득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로봇이 된 것 같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이런 생각들을 공유할 친구들이 있다는 것.


학원 수업이 끝나고 다음 수업 가기 전에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기로 했다. 우리에게 저녁은 빠르게 먹을 수 있는 라면과 삼각김밥 그리고 빵과 우유를 각사 사서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먹는다. 유난히 지치고 힘든 날이라서 친구들에게 쓱 이야기를 꺼내본다.


현서 : 계속 학교랑 학원이 반복되는 일상이 이제는 점점 버거워.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대학은 가고 싶은 게 맞는 건지. 미래의 내가 되고 싶은 꿈같은 것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요새 많이 해.


영인 : 나도 그냥 기계처럼 살아가고 있는 느낌임. 공부가 중요한 것도 알겠고, 그래서 해야 한다는 것도 알겠는데 납득이 안돼.


서영 : (급발진) 야 너희 배부른 소리 한다. 너희는 성적도 전교권에 있잖아. 나 같은 중하위권 애들한테는 그런 고민이 사치라니까. 나는 그냥 계속 공부 밖에 답이 없어. 기계처럼 공부한다고 느껴도 대학 가려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심지어 같은 학원을 다니는데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 나에게는 너희의 고민이 배부른 소리처럼 들려.


송현 : (서영을 말리며) 진정해, 진정해 별거 아닌 일로 싸우겠어. 그러지 말고 우리 이번에 기말 끝나고 방학하면 캠프가지 않을래? 우리 같이 여행 간 적 없잖아. 같이 가자.


서영 :....


현서 : 캠프? 어떤 캠프?


송현 : 「느림의 미학 - 나만의 속도, 나만의 세상 찾기」 SNS 보다가 이런 캠프가 있더라고,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며, 느림의 가치를 직접 체험하는 캠프래


영인 : 가고 싶지만, 부모님 허락받아야 하는데... 우리 방학 때 다 학원 가잖아. 특히 나는 다니는 학원만 5개라 허락 안 해주실 거 같은데.


송현 : 그래도 1박 2일로 다녀오는 건데 이틀정도는 괜찮다고 해주시지 않을까?


친구들에게 서운함을 느끼는 서영은 그저 듣고만 있다.

자신의 고민이 그들에게는 아무런 고민이 되지 않는 듯 그저 투명인간이 된 것만 같다.

서운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삼키고 친구들에게 한마디 한 후 자리를 일어난다.


서영 : 너희끼리 가라. 난 안 갈래


현서, 송현 : (애교석인 목서리로) 아~ 왜~


영인 : 왜겠어. 우리가 본인 짜증 안 받아 줘서 그렇지.


현서 : 아! 쫌!


의자에 놓인 가방을 확 낚아채며 서영은 자리를 뜬다.

서영의 고민은 별거 아닌 것이 되었고, 대문자 T 같은 영인의 발언에 서운함이 마음에 터져 씩씩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서영이가 가고 바로 직후 영인이는 엄마한테 말해본다고 말하며 학원으로 향했다.

왠지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 '나도 물어보고 말해줄게'말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남은 학원 수업이 끝나고, 나를 기다리는 엄마가 보이는 차로 달려갔다.

엄마를 보니까 오늘 하루의 긴장이 풀리는지 축 늘어졌다.

그 모습을 보고 엄마는 나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며 사랑을 듬뿍 담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거기에 보답하 듯,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주고받는다.


현서 : 맞아, 나 오늘 엄청 수고했어. 그래서 집에 가면 바로 기절이야.


현서 엄마 : 그래서 그런가 오늘 유난히 더 힘들어 보이네


현서 : 아니 그냥 요즘 기분이 학교, 학원 또 숙제 이러니까 하루가 다 똑같이 흘러가는 기분이 들어서... 오늘 영인이는 자기가 로봇이 된 것 같대. 그런데 그 말에 공감 가는 거 있지 엄마.


현서 엄마 : 네가 요즘 숨 쉴 틈 없이 바빴잖아. 새로운 경험도 필요할 때가 있지.


현서는 지금 캠프를 가고 싶다고 말할 절호의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말을 할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정면돌파가 답이라는 생각에 5초 생각 후 바로 엄마에게 말했다.

그만큼 캠프가 가고 싶은 현서였다.


현서 : 그래서 말인데 엄마. 사실 송현이가 이번 방학에 '느림의 미학 캠프'라는 거 가자고 했어.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하는 캠프래


현서 엄마 : 캠프 기간이 어떻게 되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은 것처럼 들렸다.

안될 것 같은 직감... 하지만 캠프 기간을 물어보는 거 보면 보내줄 것 같아서 조금 들뜨기도 했다.


현서 : 1박 2일 일정 이래


현서 엄마 : 그럼 학원을 이틀을 빠져야 하네.


현서의 마음은 다급해진다.

엄마 입에서 '안돼!'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돼'라는 말이 나오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현서 : (엄마의 말을 가로막으며) 엄마 내 말 잠깐 들어봐 줘. 진짜 잠깐 다녀오는 거야. 말이 1박 2일이지 이틀째 되는 날은 돌아오는 날이라 하루 반만 다녀오는 거고... 거기 가서 애들이랑 추억도 쌓고, 그리고 가서 뭔가 많이 느끼고 올 수 있을 것 같아. 그냥 쉬는 게 아니라, 뭐랄까.. 숨 좀 쉬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캠프랄까?


말하면서 애원해야 하지만 눈으로는 엄마에게 레이저를 쏘고 있었다.

'빨리 된다고 해 엄마'


현서 엄마 : 음...


현서 : 다녀와서 진짜 공부 열심히 할게. 엄마. 나 진짜 가고 싶어


현서 엄마 : 네가 그렇게까지 가고 싶다고 하니까 좀 고민인 되네. 엄마를 이렇게 설득하는 것도 참 오랜만이고 말이야. 진짜 가고 싶은가 봐 우리 딸.


현서 : 맞아 정말 너무 가고 싶어. 간절해~~ 엄마~~. 애들한테는 엄마가 혹~ 시나 안된다고 할까 봐 가고 싶다는 티도 못 내고 물어본다고만 했어. 나 진짜 가고 싶어. 요즘은 내일이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아. 근데 거기 가면 매일이 새롭고 나한테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송현이도 다 같이 가자고 하고...


현서 엄마는 그런 현서를 보며 빵 터졌다. 자기 변론을 열심히 하는데, 매일매일이 새로울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딸아이가 정말 가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다. 그리고 그동안 힘들게 공부했을 내 아이에게 쉼을 주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서 엄마 : 그래 알겠어. 대신 약속 하나 하자. 다녀와서 숙제 밀리지 않고, 학원 진도도 바로 따라잡는 거야!!


현서 : 응! 약속할게 엄마.


대화 중 멈췄던 신호가 바뀌고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현서의 눈은 반짝이며, 생각은 이미 캠프에 가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눈에서 생기가 도는 현서를 바라보는 엄마도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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