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아니야
뮤지컬 공연 중에는 중간에 휴식을 갖는 '인터미션'이라는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보통은 15분에서 20분 정도의 시간을 갖는데, 관객들은 그 사이에 화장실에 다녀오거나 자리에 일어나 간단히 몸을 풀 수도 있고 배우들은 의상을 갈아입거나 메이크업 또는 헤어를 수정하기도 한다.
비슷하게, 내가 살고 있는 인생도 하나의 뮤지컬이라고 가정했을 때 어느 정도의 짧은 재정비의 기간은 꼭 필요하다고 느낀다. 완전한 끝이 아닌 중간에서 쉬어가는 시간이자 앞으로 있을 큰 무대를 준비하는 시간. 정말 이 정도로 쉬고 싶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성인이 돼서부터 3년 동안은 훈련하고 자격증을 준비하느라 벅찼고, 스물넷부터 여섯까지는 수업과 대외활동과 같은 경험을 쌓느라 바빴다.
마침내 스물여섯이 되니, 슬슬 내 안에 쌓였던 인풋들을 꺼내 보여야겠다는 결심이 서기 시작했고 전시 지원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데 내 모든 걸 갈아 넣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고민하고 찾아보고, 작성하고 읽어보고를 수없이 반복했었다.
그렇게 아주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스물여섯 겨울이 되어서 첫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행복함 그 이상의 감정이었는데 말로 형언하기 참 어려웠다. 이런 느낌 때문에 나는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구나, 그리고 창작을 진정 사랑하는구나. 여실히 느끼게 되었던 순간이었다.
작년까지, 한 번의 개인전 그리고 두 번의 단체전을 경험하고서 지금을 살고 있는 나는 또 큰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해결책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라서 다행이지만 아직까지도 고민을 진행 중이다.
완전한 휴식, 곧 힐링을 위한 쉼이라기보다는 이전과는 아예 다른 경험을 위한 쉼을 갖고 싶다. 도자기를 하지 않는 나를 상상해 본 적은 없지만, 어쩌면 나를 너무 강박적으로 밀어붙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나한테 솔직해보기로 했다.
사실은 경제적인 활동에 관한 갈증이 있다. 조금만 벌더라도 규칙적인 수입이 발생하는 어떤 시간들이 사람에게 주는 안정감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돈을 벌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주문처럼 되뇌면서 매번 타협하는 모습이 어릴 때는 마냥 멋진 일이었는데, 서른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애쓰는 것처럼 보인다. 잠깐은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살고 싶다. 어차피 예측할 수 없는 삶이라면.
소중한 경험들을 차곡차곡 밟아 올라서서 도착한 이곳은 어쩐지 정상은 아닌 것 같아 보였다. 이제는 정확히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도 잘 모르겠고 명확한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야 힘이 빠져가는 나를 인정하게 되었다. 어느새 1년의 절반이 지났고, 무르익은 계절도 조금씩 모습을 바꾸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 보인다.
눈에 띄게 줄어든 활력과 내일에 대한 기대감은 어쩐지 조금 무섭기도 하다.
그럴 땐 아주 잠시 커튼을 닫아야 한다. 뮤지컬에서처럼, 1부의 공연이 끝나고 나면 양쪽 끝에서 천천히 커튼이 닫히듯이.
또다시 이어질 시간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