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오래 달리기

노래와 나, 삶과 달리기

by 편린


자극적이고 강한 비트가 선점하고 있는 요즘의 대중음악들의 색깔보다는 어느 순간 느리고 나른한 느낌의 인디밴드의 음악이 더 좋아지기 시작했다.

가수들마다 차이가 있지만, 요즘 들어 복고풍이라고 하는 90년대 초중반 시절의 분위기를 얼핏 느낄 수 있는 감성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내가 90년대 음악을 자주 듣고 자란 세대는 아니었지만 가끔 드라마를 통해 그 시절의 문화와 음악들을 간접적으로 느껴본 경험이 있었기에 알아챌 수 있었다.

여름에는 유독 잔나비의 노래를 자주 찾게 된다. 잔나비는 주로 청춘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에는 기쁨과 아픔이 있고 한편으로는 후회와 절망이 요리조리 섞여있다. 특히나 '작전명 청-춘!'이라는 곡에는 20대인 우리가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이 전부 녹아있는 것 같다. 2020년 발매된 잔나비의 미니앨범 <잔나비 소곡집ㅣ> 에 수록되어 있는 노래 중 다섯 번째 트랙인 이 노래 안에는 어릴 적 영웅이 되는 꿈을 꾸었지만 어른이 된 오늘에서야 바라보니 전쟁터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속에서 또 한 번 진짜 영웅이 되기 위해 비와 바람 그리고 천둥소리와도 같은 시련들을 이겨내며 우뚝 서기 위한 외침이 담겨있다. 귀 기울여보면 작전명 청춘을 외치는 우리 모두의 젊은 날에 대한 찬사처럼 느껴진다.

나는 마음이 지치고 도무지 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미친 듯이 먹거나 자는 일 둘 중 하나를 선택했지만 그것보다 더 좋았던 건, 좋아하는 음악들을 모아 파일로 만들어 지칠 때마다 들어가 보는 일이었다.

한 번도 본 적 없고 만나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없는 그들의 음악을 듣고 가사를 곱씹다 보면 왠지 나에게 말을 거는 것도 같고, 나를 대신해 말해주는 것과도 같아서 나는 항상 그들의 음악을 찾아들었다.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다고 이야기 하긴 어렵지만 나는 늘 가수들의 노래를 들으며 많은 힘을 얻고 살았다. 별다른 에너지와 비용이 들지 않는, 언제 어디서든 이어폰과 휴대전화만 있으면 금방이라도 다른 세상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

스무 살 때부터 평소 잔나비의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들었지만 20대 후반으로 넘어가서야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와닿기 시작했다. 나의 첫 번째 브런치 북의 제목인 '작전명 오래 달리기'도 여기서 영감을 받아 짓게 되었다.

어릴 때 상상해 본 어른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지금의 내가 어딘가 부끄러울 때가 종종 찾아온다. 좋아하는 일을 찾았으니 그저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 길이 열릴 것도 같은데, 기다리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삶은 오래 달리기처럼, 당장은 힘이 들어도 멀리 보고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백 번, 천 번이고 되뇌어도 버티는 일은 절대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종착지에 선 나의 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세상은 당장 내일도 장담할 수 없는 우연함들의 연속이기 때문에 무작정 버티고 참는 것도 참 어렵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8년 전 그들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지금만큼 인지도가 높지는 않았던 때였다. 200명 남짓한 인원이 꽉 들어찬 작은 지하 라이브 홀에서의 공연이었다. 그때만 해도 잔나비의 노래를 잘 몰랐고 어떤 음악을 만들고 있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친척 동생의 추천으로 한두 곡 대충 들어본 게 다였던 상태로 큰 기대를 품지 않고 공연장을 입장했던 기억이 난다. 그저 동생과 함께 공연을 보러 왔다는 것에 의미를 두기로 했지만, 막이 열리고 내 두 귀로 직접 라이브를 듣는 순간 10초 만에 공연에 흠뻑 빠져들게 되었다.

힐끔힐끔 눈치를 보며 숙지가 덜 된 가사들을 오물거렸던 내 모습이 지금 생각난다. 이곳의 사람들과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잘 모르지만 어떻게든 비슷한 타이밍을 맞춰 응원구호를 외쳐주고 싶은 마음에, 뒤처지지 않으려 열심히 노력했다. 그때 명확히 알았다. 콘서트의 현장감이란 게 이런 거였구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눈빛을 나누며 한 입으로 노래를 부르는 게 가능한 것이구나.

혼자 있는 방에서, 하교하는 버스 안에서 이어폰을 끼고 듣기만 했던 음악들을 실제 가수들의 목소리로 들어본 나의 최초의 경험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황홀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 내게 영향력을 주고 있다.

이렇듯 <작전명 오래달리기>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들, 꿈과 힘과 슬픔 그리고 모든 미움들이 만든 하나뿐인 책이 되었다.

더는 눈으로 읽히지 못한대도 영원히 마음속에 자리매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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