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기

질문의 연속

by 편린

우연히 잔나비의 노래를 듣던 중에 귀에 꽂힌 노랫말.


'답을 쫓아왔는데 질문을 두고 온 거야'.


순간 머릿속의 태엽을 거꾸로 빠르게 돌려보면서 나는 예전에 어떤 질문을 남겨두고 나의 일을 시작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 나의 미래를 떠올리며 염두에 두었던 답은 분명 경제적인 풍요로움 혹은 빛나는 명예와는 거리가 멀었다.

성인이 되기 직전, 그러니까 막 열아홉 살이 되던 봄부터 정식으로 도예수업을 배우러 다녔다.

그저 재미가 있어서 시작한 일이라 별다른 부담감 없이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유명한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입시를 준비해서 잘 알려진 미술대학교를 가고자 하는 마음도 물론 없었다. 누군가 내게 대학을 가지 말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꼭 가라고 부추긴 것도 역시 아니었으며 나는 그냥 내가 당장 하고 싶은 일만 했을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예술 활동을 위한 작품을 만들어 나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면서 사는 것, 또는 관련된 공부를 좀 더 해서 학력을 얻기 위해 다시 편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미술 강사의 신분으로 학교나 교육시설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할 수도 있다. 또는 상품제작 및 판매를 위한 개인 작업실 겸 매장을 차리는 일.

사실 10년 동안 어느 것 하나에 올인하지는 못했다. 조금씩이라도 발을 담가 경험을 쌓고 어떤 일이 나와 잘 맞는지에 대한 판단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작품활동이 가장 즐겁다. 올 봄이는 판매용 도자기 상품을 만들어 온라인 스토어를 열었지만 뜻대로 잘 팔리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sns 홍보활동을 열심히 하지 않았던 탓이었겠다.

하나를 딱 정해서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지 여러 가지를 조금씩 해봐야 하는지 갈팡질팡 하기만 하다. 이럴 때면 아예 초보때로 돌아가 자격증을 따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 든다. 목표가 한 가지 정해져 있으니 하나에만 몰두하면 되는 일이니까.

맨 처음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이 가장 중요해 보인다.

나는 왜 도자기가 좋았나? 왜 이 일을 했어야 했나?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흙을 한 번 만지고 나서는, 하루 지나 내일이면 또 흙을 만지면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흙을 만졌을 때의 느낌이야 물어볼 것도 없다. 하루 온종일 그 순간에 대해서만 생각해 본 적도 있고 더 멀리 나가 나도 멋진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을 해 본 적도 있다.

나는 늘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명확했고, 충분히 해 볼만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이 되면 끝까지 엉덩이를 붙이고 해낼 만큼의 지구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했다. 애초에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없어 보이는 분야에는 발을 들이지도 않을 만큼, 겉으로는 항상 웃지만 어떻게 보면 은근히 냉정한 소녀였다.

그렇게 긴 훈련을 하고, 자격증을 따고 작품전을 열기까지의 단계들을 하나하나 펼쳐보면 나의 작은 기쁨과 슬픔들이 방울방울 맺혀있다. 언젠가는 이제껏 해온 게 아까워서 그냥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도 해봤고, 그냥 단순하고 평범한 일을 했으면 같은 고민을 안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여럿 해본 적이 있고, 여전히 힘이 들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몇 글자라도 쏟아내면 마음이 가벼워지기도 해서 오늘도 노트북을 열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머리 위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앞머리를 들썩이고 있고, 눈앞에는 읽다 만 책들이 널브러져 있는 모양이 왠지 불편하지 않다.


벌써 오후 4시가 넘었으니 나는 다시 몸을 일으켜 빨래를 개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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