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여름

by 편린

사람의 몸은 참 신기하다. 농번기로 인해 실천 중인 미라클 모닝을 한 달 넘게 지속하다 보니, 이제는 새벽 4시만 되면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져 눈이 저절로 떠진다. 졸린 걸 떠나서 화장실을 가야 하기 때문에 몸을 안 일으킬 수 없다. 그리고 막상 몸을 일으키면 다시 잠에 들기에도 애매해진다. 곧바로 칫솔을 들고 파이팅 넘치는 양치질을 시작함과 동시에 남아있던 졸음마저 사라지는 걸 경험할 수가 있다.

​이번 주는 그래도 살짝 주춤하는 호박의 성장 속도 때문에 우리도 약간의 여유를 부릴 수가 있게 되었다. 일하는 중간중간 앉아서 간식을 먹거나 몸을 풀기도 한다. 마시고 뱉는 모든 숨이 뜨겁고 팍팍하게 느껴지는 폭염이 또다시 찾아온 건 3일 전부터의 일이었다. 비가 아주 쏟아붓지 않으면 더워서 죽을 것 같은 극단적인 기후는 멀쩡한 마음도 심란하게 만들고, 부드러운 사람도 난폭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다행인 건 글을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자세를 고쳐 앉도록 노력한다는 점이다. 언젠가는 브런치 활동을 시작한 걸 후회할 뻔한 적도 있었다. 농사를 짓는 동안은 일 아니면 먹고 자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몸을 움직여 음식을 가져다 놓고, 정성스레 씹어 끼니를 때우고 또 밥그릇을 씻어 정리하는 일만 해도 정말 수고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쯤 되었을 때까지는 호기롭게 오후 시간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도 해 봤지만 역시나 그 이상은 무리였다. 비 오듯 땀방울을 흘리며 달려본 게 언제인지도 이제는 가물가물하다. 다음 주부터는 다시 운동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솔직히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가까스로 지금의 몸무게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긴다.

​올해는 수박이 일을 시작하면서 찾아온 슬럼프와 기력저하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네모지게 잘라놓은 수박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꺼내 먹을 때가 내가 하루 중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 자고로 수박은 아주 천천히 입천장으로 뭉개서 먹어야만 진정한 맛을 느낄 수가 있다. 그럼 웬만한 피로와 스트레스는 한방에 지울 수가 있다. 특히 여름에는 제철과일을 부지런히 챙겨 먹는 일 만으로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요즘은 푹푹 찌는 날씨 때문에 잠깐의 외출도 쉽게 허락되지 않고, 일을 하고 나서는 대부분 집에서 피곤에 못 이겨 낮잠을 자거나 짤막한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드라마를 띄엄띄엄 보는 일이 대부분이라 크게 무언가를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오늘은 밖으로 나올 구실을 만들어냈다. 치명적인 날씨를 견디어 잠깐의 외출을 허용하기로 했다. 미용실에 간다는 엄마를 따라 나와 나온 김에 함께 빙수를 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책냄새를 맡고자 도서관을 찾았다. 출입구를 통과하자마자 온몸에 시원한 바람이 스미는 이곳이 최고의 피서지다.


평소보다 꼼꼼하게 책장을 훑어보며 읽고 싶은 책을 고르는 순간만으로 마음이 평화로웠다. 이곳을 찾은 이름 모를 사람들도 대충 비슷한 마음이겠지. 작은 인기척이 들릴 때마다 고개를 살짝살짝 돌리며 조심스레 사람들을 관찰해 보는 것도 나의 재미다. 언젠가 헬스장에서 몇 번 봤던 얼굴들, 좀 전에 갔었던 커피숍에서 봤던 얼굴들이 보인다. 서로 알지는 못하지만 나만 알고 있는 얼굴들이다.


그들도 나와 비슷하게 여름을 보내는구나 싶었다. 치열하게 각자의 일을 하며 가끔 운동을 하고 시원한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도서관을 찾는 일상이 꽤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일 것이다. 이 계절에서 나만 더울 리 없고 나만 지칠 리 없다. 모두가 뜨겁고 텁텁한 숨을 들이쉬고 뱉어내는 지금이 모쪼록 안전하게 흘러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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