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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Apr 27. 2023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퇴사 결심


2022.10.19


유독 바람이 차게 느껴지는 날.


지금 직장은 나의 자부심임과 동시에 엄마의 자부심이면서, 우리 가족의 자부심이었다.

12년 동안 안락함을 주는 급여와 소비를 조장하는 달콤한 계열사의 복리후생 혜택에 낚여 나는 내가 성공한 인생을 사는 줄 착각한 채로 어느덧 내 나이 40을 바라보고 있다.


캐나다를 간다고 26살에 첫 퇴사를 한 지 13년 정도 흘렀고, 나의 첫 퇴사는 별 볼일 없는 급여에, 별 볼일 없는 비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만두겠다는 딸과 비슷한 나이의 나에게 내 상사는 비수를 꽂았었다. "돌아오면 더 나이 먹는데, 네가 갈 곳이 있을 것 같아?", "진짜 어학연수 맞아? 너 이직하는데 어학연수라고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라며, 미련도 사라지게 내 선택이 옳아야만 하는, 그 길밖에 없도록 나의 어학연수를 독하게 응원해 줬다.


지금 나이 서른아홉. 내년 초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할 땐 나는 꼬박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된다.

내 인생 두 번째 퇴사인데 퇴사는 늘 쉽지 않다.


13년 전엔 지금보다 더 잃을 게 없었다지만,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는 잃을 게 많다. 그때보다 훨씬 넉넉한 급여, 연초에 나오는 인센티브, 각종 복리후생 혜택, 그리고 나를 설명해 줬던 명함. 아침에 살기 위해 마셨다지만 내가 너무 사랑한 한 모금 한 모금이 소중했던 내 비싼 모닝커피.


근데 잃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대단한 것도 아닌데, 하루하루 세상 불행한 표정으로 앉아서 돌아오는 월급날만 기다리며, 막상 그 월급날도 마냥 행복해하지는 않으면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 대사 속 이선균처럼.


어떻게 하면 월 5-6백을 벌어도 저렇게 지겨워 보일 수가 있을까.
대학 후배 아래서 그 후배가 자기 자르려고 한다는 것도 뻔히 알면서 모른 척
성실한 무기징역수처럼 꾸역꾸역.
여기서 제일 지겹고 불행해 보이는 사람
- 드라마 '나의 아저씨' 중


퇴사하겠다고 하면 예상되는 주위 반응은? "세계경제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네가 어디 가서 이 돈 받을 줄 알아?", "네가 배를 안 곯아 봤구나?", "네 나이에 다시 취업은 힘들어" 등등 각종 살을 에는 추위와 배고픔에 대해 걱정하는 말들을 잔뜩 늘어놓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말하고 생각할 거다.

"그 급여받으면서도 제가 주리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그냥 배가 고팠는지, 지식이 고팠는지, 인정이 고팠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바람도 안에 있을 땐 모릅니다. 바깥에 바람이 불기는 하는지, 기분 좋은 바람인지, 살을 에는 바람인지. 그래서 제가 몸소 느끼러 나갑니다."라고.


낭만에 취해 나간다고 비웃어도 좋다. 맘껏 비웃어주면 13년 전과 같이 그 길 이어야만 하는 것처럼 굳세게 헤쳐 나갈 테니깐. 그래야 다시 이 지긋지긋한 조직생활이 하고 싶지 않게 마음속 깊이 단념이 될 테니.

낭만은 원래 고픈 거라고, 어차피 고픈 거라면 낭만이라도 좇겠다고 당당히 이야기하겠다.


"생각이 없구나", "너 참 속 편하게 다니는구나", "내일이 없구나" 등 조직생활에서 수집한 각종 피드백처럼, 난 한결같이 내일 없이 오늘만 살아왔으니까. 그게 내가 조직에 어울리지 못하고 늘 겉돌았던 이유일 테니.

이제는 흘러가는 대로, 그저 살아지는 대로 말고, 그리는 대로, 꿈꾸는 대로, 하고픈 대로 살고 싶다.


“저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퇴사합니다.”




2011.5.2. 내 인생 두 번째 회사에 입사했고, 막연히 '일을 안 하고 싶다. 시간이 자유로운 사람이고 싶다'라는 생각은 했으나, 369로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퇴사 욕구도 없이 입사 후 10년간 퇴사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 내가, 2021년 4월 2일. 사무실에 있으면 바로 사직원을 낼 것만 같은 충동을 간신히 억누르고 급히 오후 반차를 내고 막연히 서대문역에서 내렸다. 점심시간인지라 큰 빌딩들에서 일제히 사람들을 쏟아 내는데, 숨이 턱 막히는 기분.

그 빌딩들을 뒤로하고 서대문에서 삼청동까지 걸었다. 코로나 여파가 휩쓸고 간 "임대"딱지가 크게 내걸린 가게들이 즐비한, 내가 좋아하는 그 삼청동을 봄날임에도 늦가을 같은 기분에 젖어 한참을 걷고 내가 내린 결론은, ’삼청동이 이럴 수 있나. 너무 내 신세 같다. 지금 퇴사하면 저 비어 있는 가게처럼, 나도 아무 쓰임새가 없어지는 걸까’하는 불안감에 압도되어 사치스런 퇴사 대신 회사로 돌아가 애써 정을 붙여가며 다시 열심히 일을 했다.


다른 이유도 한몫했지만 2022년 봄 다시 퇴사 욕구는 일렁였고, 꾹꾹 억누르던 퇴사 욕구가 또다시 차오른 건 2022년 10월. 삼세번. 이번엔 진짜 결단을 내야 할 것 같았다.

직장인이라면 늘 꿈꾸는 단어. 늘 마음속 깊이 품고 있는 단어. 나에겐 막연히 조금은 두려운 퇴사.


그날 시작된 나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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