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어나 Jun 08. 2023

엄마를 부탁해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를 잃어버렸다.


파리 공항에서 입국수속이 밀려 엄마와 나는 밤 10시 가까운 시간에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긴 비행과 수속 대기로 피곤한 엄마 얼굴에 낯선 땅에 짙게 깔린 어둠이 두려워 보이는 찰나에 파리 시내로 가는 지하철이 들어왔다. 더 이상 사람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는데, 엄마는 뭐에 홀린 듯 엄마 트렁크를 턱 하니 올리더니 혼자만 홀가분하게 그 지하철에 올라탔다.

그리고 이내 문은 닫혔고, 나는 멀어져 가는 엄마를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엄마는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고, 호텔이 어딘지도 몰랐고, 돈은 나에게 있었고, 데이터고 전화고 다 차단된 꺼진 핸드폰 하나만 들고 홀연히 사라졌다.


파리에 오자마자 엄마를 잃어버렸다고 오빠에게 전화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국제 전화는 터지지 않아 그저 카톡 보이스톡만 연신 해댈 뿐이었으나, 엄마의 전화기는 계속 꺼져 있었다.






엄마의 청바지가 낡디 낡았다. 청바지가 낡기만 한 게 아니라 연세에 안 맞게 꽤나 날씬한 허리의 소유자가, 최근에 아프면서 살까지 빠지고 나니 기운 없이 축 늘어진 엄마처럼, 늘어나기까지 했다.


6년 전 파리에 갈 때 사드린 그 청바지는 엄마의 어떤 여행 사진이던 늘 등장했다.


엄마는 매번 해외여행을 조르는 딸에게 “딸 시집보낼 생각은 안 하고 속 없고 팔자 좋게 여행이나 다닌다고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라고 하시며 순순히 동행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꽤나 집요한 편이라 엄마는 시집 안 간 딸과 홍콩/마카오, 말레이시아 그리고 라오스를 같이 다녀왔고, 엄마는 꽤나 좋은 여행친구였다.


지인들과 다녀온 패키지여행에서 좋아하지도 않는 쇼핑몰을 몇 번이고 데려갔다고, 나랑 하는 자유여행이 좋다고 말하는 우리 엄마. 같은 길도 한 번은 페리를 탔으면 한 번은 2층 버스를 타고 오길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여행지에서의 엄마는 내가 평소 알던 엄마는 아니었다. 그래서 새로운 엄마를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은 매번 좋았다.   


엄마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고, 환갑 기념 여행은 엄마가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잘 사는 나라’에 모시고 가고 싶었다. 잘 사는 나라라 그런지 유럽에 가는 것은 그나마 다른 국가에 비해 설득이 쉬웠다. 전제 조건은 내가 가본 국가는 제외할 것. 단 한 가지.

엄마는 유럽의 어느 국가라도 다 안 가본 곳이니 어디든 좋다고 했고, 내가 가보고 싶은 곳이면 더 좋겠다고 했다. 최종 환갑기념 여행지는 엄마를 위한 스위스와 나를 위한 프랑스가 격돌했으나, 환갑기념이란 타이틀이 무색하게 프랑스로 결정되었다. 다행히 엄마는 프랑스도 좋다고 했다. 유럽의 어디여도 상관없었을 엄마는 ‘드디어 유럽에 간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행복했다.


우리가 갈 곳은 다름 아닌 패션의 도시 파리다.

패션위크 같은 화려함은 아니더라도 엄마의 옷장에 있는 어느 옷도 파리에 가져가고 싶지는 않았다. 엄마의 옷장엔 음식이 튀어백혀도 티가 안 날 어두운 계열의 옷뿐이었고, 쇼핑을 좋아하지 않기에 늘 지청구를 들으면서 내가 옷을 사다 날랐지만, 그것도 엄마 입맛에 맞는 스판기 있는 편한 옷들 뿐이었다. 그러니 엄마를 위한 쇼핑이 필요했고, 나는 서울, 엄마는 광주에 사니 같이 쇼핑을 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렵고, 그렇다고 파리에 간다고 비행기며 호텔이며 실컷 돈을 쓴 딸이 옷까지 사놨다고 하면 손사래를 칠 게 뻔했다. 그래서 쇼핑은 엄마가 모르게 했다. 혼자 백화점을 몇 바퀴를 뱅뱅 돌며 엄마 옷을 고르고 또 골랐다. 엄마는 쇼핑은 좋아하지 않지만 취향은 확고하고, 나름 까다롭기까지 해서 쇼핑이라면 내내 즐거운 나인데도, 엄마의 입맛에 맞는 쇼핑은 힘들었다. 더군다나 엄마가 여행 하루 전날 광주에서 올라오실 테니 마음에 안 들더라도 환불은 불가하기에 실패 없는 쇼핑이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사로 잡혀 온 신경이 곤두선 채로 쇼핑을 마쳤다.


너무 통이 넓지도 좁지도 않은 살짝 찢어진 듯한 디테일이 있는 청바지와 엄마 얼굴을 화사하게 밝혀줄 꽃무늬 블라우스, 그리고 절대 거부하지 못할 무난한 스트라이프 블라우스와 스트라이프 티셔츠를 샀다. 바지는 직접 입어보고, 앉았을 때 엉덩이가 보이지 않게 밑위길이가 긴 것으로, 스판기가 짱짱해서 앉으나 서나 살이 옥죄지 않는 지를 점검했고, 블라우스는 행여 너무 박시하여 얻어온 옷 같지 않게 적당히 낙낙한 한 것으로 골랐다. 고르면서도 점원에게 이거 60대도 입을 수 있는 거죠를 몇 번이고 묻고 또 물었었다.


출국 하루 전 광주에서 올라온 엄마에게 짜잔~ 하고 쇼핑의 결과물을 자신 있게 내밀었건만, 역시나 “찢어진 청바지를 이 나이에 어떻게 입냐, 니네 세대나 입는 거지. 그리고 꽃 블라우스가 어울리기나 하냐? 이것도 너 입어. 그리고 너는 스트라이프를 몇 개를 사냐 똑같은 옷을!!”


하. 역시 쉬운 게 없다. 어차피 환불은 어려우니 일단 가져가보자고만 했다. 엄마 안 입으면 내가 입겠다고 하고. 파리에서 엄마와의 추억을 담으려고 스냅을 신청해 둔 터라 시밀러룩으로 입고 싶었던 나의 로망은 차차 설득할 계획으로.




다행히 우리의 안타까운 이별을 목격한 파리지앵이 엄마가 타고 간 건 급행이고, 다음 열차는 완행이란 고급 정보를 주었다. 나는 혹시나 몰라 모든 역에서 내려 엄마가 있나 없나 확인을 했고, 한 역 한 역 지나도 엄마는 보이지 않았고 속은 타들어 갔다.


신경숙 작가님의 엄마를 부탁해가 떠오르며 프랑스에서 엄마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찾아야 하나, 오빠에겐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나는 엄마 없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나: 엄마.
엄마: 울었어? 뭔 일 있었어?
나: 너무 슬퍼.
엄마: 뭔 소리야. 왜 울어?
나: 책을 읽고 있는데, 잃어버린 엄마를 찾질 못해.
엄마: 그게 울 일이냐? 어여 자. 하여간 너는.


엄마를 부탁해를 읽다가 감정이입을 심하게 했고, 엉엉 울다가 기어이 울 엄마 생각이 나서 통화버튼을 눌렀고, 감동이 와장창 깨진 채로 현실로 돌아왔다.

책이었지만, 엄마를 잃어버린다는 상상은 읽는 내내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도 한참을 나를 괴롭혔다.  




내가 엄마를 잃어버릴 줄이야.

지하철에서 잃어버린 것처럼 똑같이 엄마를 잃어버릴 줄이야.


숨을 쉬는 것도 죄스러워하며 손으로는 계속 보이스톡만 눌러대고 있었다.


나: 엄마!!!!!! 어디야?
엄마: 나? 네가 아까 말한 역에서 내린 거 같은데?
나: 그게 어딘데!!!!
엄마: c.h.a.t.e.l.e.t. l.e.s.h.a.l.l.e.s. 몰라 뭐라고 읽는지. 뭔 역 이름이 일케 긴지.
나: 나 아직 거기 가기 전이야. 엄마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아까 탄 자리에서 꼭 기다려.


다행히 엄마는 내가 비행기에서 급행 기준으로 몇 번째 정거장에서 내린다고 알려준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를 드디어, 찾았다. 짧은 시간 지옥을 경험하고 온 터라, 이제 좀 숨이 쉬어질 것 같았다.


그 사이 속이 까맣게 타버린 나와 달리 “말 안 통한다고 한국을 못 갈까. 너는 참. 지나가는 한국 사람 붙들고 뭐라도 말하면 대사관이라도 데려다주겠지. 돈이나 좀 주고 호텔 주소 써서 줘”라고 하며 웃는다. 내가 해외여행 갈 때마다 한국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조심하라고 했던 사람이 어디다 팔아넘길지 알고 저리도 해맑은지.


그렇게 시작했다. 굳이 파리까지 모셔와서 엄마를 버리고 갈뻔한 그 여행은.


스냅사진을 찍는 날엔 내가 사준 신발에, 내가 사준 청바지와 스트라이프 블라우스를 입고. 가기 전엔 무슨 스냅이냐고 역정 냈던 사실은 잊고, 우리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주니 좋다고 엄마는 연신 웃으셨다. 나의 부자연스러운 미소와 달리 찐 미소가 남아 있는 우리의 파리 스냅을 보면 어쩐지 마음이 이내 짠해진다.


엄마가 웃는 게 이리도 귀엽고 이리도 천진난만했던가. 엄마가 이리도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었나.


엄마말 듣고 스냅 예약 안 했으면 어쩔뻔했나 싶다. 엄마 말이라고 다 곧이곧대로 들을 건 아닌 거 같다. 우리가 삼각대나 셀카봉을 들고 찍었다면 저리 자연스러울 수 없을 것 같다.


소라랑 골뱅이는 먹으면서도 달팽이는 못 먹는 엄마는 음식이 안 맞아 폴 베이커리에서 크루아상으로 10일을 버티면서도 크루아상이 맛있어서 좋다고. 어느 날은 내가 시킨 스테이크의 사이드로 나온 감자튀김을 먹다가 목이 맥혀 권한 콜라를 맛보고는, “니들이 콜라 먹는 이유를 알겠다”라고 하시고. 현지 시장에 가서 그 나라 과일을 사 먹는 걸 좋아하는 엄마는 파리의 멋진 튈르리정원에서 투명 비닐봉지에 담긴 포도로 야무지게 당을 충전하고, 예술 작품은 하나도 모른다고 미술관은 가기 싫다고 했지만, 막상 오르세에 가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도, 한창 정치적으로 풍자된 그림도 뚫어져라 보면서 관심을 표하고. 하루에 2만 보, 3만 보를 걷는 강행군에도 하나라도 더 보려고 발길을 재촉하고. 돈 아깝다고 여행 가서 같은 곳은 절대 다시 가지 않는 엄마지만 하루 한 번 에펠탑을 봐야겠다는 딸과 함께 늘 같은 버스를 타는 길은 길치이면서도 외워버린. 딸이 길을 헤매고 있으면 책이며 핸드폰이며 들여다보는 딸이 무거울 새라 가방을 들어주는. 그야말로 배려 넘치는 멋진 여행 메이트.


그리고 어느 날 저녁 전화를 걸어 우리가 본 그 예쁜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다고 누구보다 속상해했다.




엄마의 낡은 청바지를 보며,


나: 청바지 하나 사야겠다.
엄마: 뭘 사. 너 안 입는 청바지 가져와. 요새 살 빠져서 맞을 거 같아.
나: 그냥 하나 사지.
엄마: 뭘 사? 돈 애껴. 네 거 가져와.


요샌 백수 됐다고 노골적으로 지갑은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 엄마가 새 청바지 사지 말고 안 입는 청바지를 좀 챙겨 오래서 하는 수 없이 몇 개 챙기고 있는데 옆에서 신랑이 “입던 거 엄니 가져다 드리게? 좋은 거 하나 사 드려”한다.


그러게. 안 입는 거라고 하고 새 청바지 사서 가져가도 될 것을 진짜 안 입는 청바지를 챙기고 있는 나란 애는. 어디까지 얼마나 생각이 짧은 건지.


요샌 걷는 걸음마다 힘에 부쳐하는 엄마를 산티아고 순례길 메이트로 정한 내 버킷리스트를 위해, 그리고 그때 양보한 스위스에 가서 소녀처럼 뛰어다니는 엄마를 보기 위해. 이번 광주에서의 목표는 걷기 연습이다. 다시 파리에서처럼 2만 보, 3만 보는 아니어도 나랑 여행 갈 체력은 다시 생기도록.


내가 아는 엄마는 여행 정도 되어야 얼마 하지도 않을 새 청바지를 마음 편히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니. 새 청바지를 위해서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1980.05.18.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