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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May 18. 2023

행복은 회사 밖에 있다.

퇴사의 가장 큰 이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2022.11.17


감정의 동요가 없는, 설령 있더라도 감정의 풍파를 다 진정시킨 후에야 담담히 감정을 전달하는 언니 K가 지하철을 기다리며 물었다.


언니 K: 퇴사의 가장 큰 이유가 뭐야?
나: 가장 큰 이유라... 회사가 다니기 싫은 건 맞는데, 뭐 때문인지 아직 저도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어요. 생각해 볼게요.


언니 K가 사준 양갈비에 온 마음이 두둑해져 있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퇴사의 수많은 이유를 마음속에 되뇌며 착실히 퇴사일기를 작성 중인데 정작 “가장 큰 이유” 하나만 꼽으라니 말문이 막혔다. 매일매일 퇴사가 옳다고 합리화하고 있으면서 단편단편 조각난 기억들로만 나의 퇴사를 응원했나 하는 생각과 인생의 중요한 결정조차도 뭐가 핵심적인 문제였는지 조차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생각에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다시 퇴사의 이유를 훑었다. 이미 쓴 일기를 뒤적이며, 아직 쓰지 못한 이유를 돌아보며. 부적응. 비전. 팀장. 관계. 작은 조각들이 촉매제 역할을 한 건 맞지만, 확실한 건 가장 큰 원인은 아니었다. 하나하나 적어가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남들은 3, 6, 9년 차로 온다는 퇴사 욕구가 나에겐 없었다. 그 시기엔 대기업 명함에 취해 있었으니깐. 어디 가서 명함을 내밀며 “저 이런 사람입니다”했을 때 이름을 알만한 기업에 나이에 맞는 직함이 있었고, 다른 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급여이나 자주는 아니어도 매 시즌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옷 한 벌 살 때 주저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급여, 1년에 한두 번은 해외여행 시 제공되는 호텔비 지원 등 사람답게 사는 것 같은 느낌에 이 안정감이 나쁘지 않았다. 취미 생활 중에 만난 사람들처럼 시간이 좀 자유로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막연히 일을 안 하면 좋겠다는 꿈은 꾸었지만, 직업이 없는 내 모습을 생각해보진 않았고, 퇴사를 구체화시켜 본 적도 없었다. (직장이 있었을 뿐, 직업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근데 그것도 잠시. 가치 있게 느껴졌던 명품 옷, 명품 가방, 명품 신발을 걸치고 출근하던 어느 날 깨달았다. 나를 아무리 포장해도 내가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회사만 그만두면 다 불필요한 겉치레가 그저 뱁새가 가랑이가 찢어지도록 황새를 쫓는 허한 기분으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 기분은 심리학을 공부하며 더 명확해졌다.

올해 초 요동치는 퇴사 욕구를 밀어 넣기 위해 무엇을 공부할까 고민하다가 고등학교 시절 막연히 가고 싶었던 “고려대 심리학과”가 떠올랐고,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 당시 유튜브에서 다양한 심리 관련된 강의를 찾아 듣는 상태라 심리학이 궁금하기도 했던 터였다.

‘마음 공부 하면 좀 답이 나오지 않을까? 커가는 조카들이 (내 애는 낳을 생각도 없이) 나처럼 꿈이 없다고 낙담할 때 답을 줄 수 있는 고모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점은행제를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이 공부가 나의 가치관을 바꾸었다.


영원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도취된 대기업 명함, 남들이 하는 걸 정작 스스로 원하는지 원치 않는지 모르면서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좇으며 채워보는 허영, 남들 가니 나도 따라가 보는 목적 없는 여행, 남들도 하나씩 사니까 나도 사 보는 명품 가방, 신발이 그저 허울이라는 것을 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김창옥 교수님이 이 말씀하셨다. 사람의 마음에 정서가 허기지면 물건이 없다는 착각을 한다고. 그래서 하나 둘 물건이 늘어난다고. 물건이 늘어가는데도 내 안의 정서적 허기는 없어지지 않는다고.

돌아보니 그랬다. 누가 읽은 책 한 권의 이름은 생소하면서도, 굳이 라벨이 드러나지 않아도 어떤 옷은 기똥차게 브랜드를 알아맞혔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헛헛한 마음에 쇼핑몰을 들락거리며 몇 번 입지도 않을 어울리지 않을 옷을 사거나, 어울리지도 않는 옷을 비싼 값을 지불하고 비싸다는 이유로 회식자리에는 입고 가지도 못할 옷을 엄마 말에 의하면 이고 지고 살고 있었다.

보이는 삶에 치중한 건 아니었을까 자각한 순간. 불행한 몸뚱이를 가리려고 겉만 번지르르한 어울리지도 않은 하찮은 명품을 두르고 하루하루 꾸역꾸역 관성처럼 출근하는 내 모습이 너무 불행했다.


여전히 번화가의 상가들은 “임대”를 내건 채 숨 고르기를 하고 있고,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으로 세계경제는 위기라는 기사가 앞다투어 쏟아져 나의 퇴사욕구는 사치처럼 느껴지지만 나의 불행을 더 이상은 방치할 수 없다는 결론.


결국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정서적 허기를 채우려고 쌓고 쌓아온 더미들이 아니라, 행복이었다.


“언니, 퇴사의 가장 큰 이유는 회사에 제가 찾고 있는 행복이 이제 없어요. 행복하고 싶어요.”


작년 5월 신랑과 제천 여행 중 “행복은 회사 밖에 있다”는 문구를 보고 맞다고 고개를 끄덕였었는데, 이제야 회사 밖 행복을 찾으러 간다. 회사 안에 행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기에.


이미 알고 있었던 답을 이제야 깨달은 내가 부끄러우면서도,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싶다.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래. 가고 싶은 길로, 설령 돌아가더라도 천천히 가보자.


그래서 오늘도 답도 역시 행복으로 가는 ‘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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