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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나 May 15. 2023

15년 경력이 아깝지 않냐고?

이직을 접다.


2022.11.15


올해 초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채용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갈 곳을 정하지 않은 퇴사는 생각조차 해본 적 없기에 남들처럼 갈 곳을 정하고 옮기리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채용사이트를 둘러볼수록 어림잡아 15년의 경력을 뽑는 곳은 거의 없었다. 딱 한 군데 내 연차도 가능한 곳이 있었는데 지금의 회사보다 네임밸류가 약해 서류를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 끝끝내 간판에 집착해 버린 곳을 제외하고는 근 몇 달간 뒤져도 갈 곳이 없었다. 이직은 어렵겠구나란 생각으로 이직은 옵션에서 지우고 마음속 깊이 단념했다 생각했는데, 신랑의 퇴사 선언을 듣고 나니 마음이 며칠간 어지러웠다. 


마음의 파고를 겪으며, 다시 채용 사이트를 들여다봤다. 때마침 내로라하는 기업에서 채용을 진행 중이었다. 저연차를 뽑고 있었기에 엄밀히 말하면 서류 전형부터 탈락일 거 같았다. 나도 서류전형을 심사할 때 너무 고연차면 아무리 출중해도 꺼려졌기에.


그런데도 불구하고 흔들리고 있었다.


신랑에게 조심스레 큰 회사 채용공고가 떴는데 쓸까 말까 고민이라고 했다.


신랑: 쓰고 싶어? 일 그만하고 싶었던 거 아니야?
나: 맞지. 근데 채용 공고 보니 흔들려서.
신랑: 그럼 일단 써봐. 일을 좋아하기는 했으니 흔들린다면 써봐야지.
나: 근데 저연차를 뽑아.
신랑: 안 돼도 그만이니깐 써봐
나: 응 일단 이력서 좀 오래간만에 써볼게.


12년 만이다. 이력서를 다시 쓰는 건.

지금의 회사를 입사하기 위해 캐나다에서 귀국 전 이력서를 썼던 2011년 2월의 어느 날 이후.




캐나다에서 귀국을 앞두고 유럽여행이 고민이 되어 엄마에게 유럽여행을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으나 1년 동안 쓴 돈이 얼만데 철없는 소리를 하냐며 유럽여행은 벌어서 가라고 하셨다. 1년 동안 얼마를 썼나 봤더니 하필 어학연수시절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캐나다 달러가 미국 달러만큼 귀한 대접을 받을 때라 얼추 4천만 원을 썼다. 캐나다행 비행기랑 어학원 3개월 등록금을 제외하고 첫 직장에서 2년 7개월간 모은 돈과 퇴직금 잔액을 합쳐 총 700만 원을 드리고 어학연수 길에 오른 속 없는 딸년에게 엄마는 얼추 2800만 원을 보낸 셈이었다. 너무나 간절히 유럽여행을 떠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가 말한 것처럼 돌아가서 진짜 취업이 안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다른 도피처가 필요했을 뿐. 엄마랑 통화 후 채용사이트를 들락거렸고, 지금 회사의 채용공고를 보게 되었다. 일주일을 공들여 이력서를 썼고, 답이 없으면 미련 없이 엄마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유럽을 가리라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일주일 꼬박 고심해서 작성한 덕분인지 갑자기 잡힌 면접 때문에 나는 서둘러 귀국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회사에 5월에 입사했다.


그때는 이 회사가 너무 간절했는데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입사를 꿈꾸던 회사에서 퇴사를 꿈꾸고 있으니. 




시간이 흘러도 너무 흘렀다. 요새는 어떻게 이력서를 쓰나 찾아보니 그때랑은 너무 다르다. 예전에 딱딱한 포맷이 지금은 한껏 정돈된 느낌이랄까. 요새는 그걸 포트폴리오라고 부르며 제법 그럴듯하게 쓰는데 이걸 다시 쓰려니 자신이 없다.


내가 12년 동안 어떤 일을 했나 이력서를 한 줄 한 줄 업데이트하다 보니 12년이 생생히 그려졌다. 한 줄로 요약되는 그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았나 돌아보니 참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상사 K는 늘 회사를 편하게 다닌다고 했지만 이력서를 쓰다 보니 마냥 편히 다닌 세월은 아니라는 생각에 억울함마저 든다. 


이력서를 다 쓰고 이제 자기소개서 타임이다.

간단히 적힌 이력서를 잘 풀어내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써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쓰는 걸 좋아하면서도, 단 한 줄도 쓰기가 싫었다.


다시 신랑에게 물었다.


나: 나 이력서 다 썼어.
신랑: 오~ 지원했어?
나: 아니. 나 여기 지원하는 거 맞을까?
신랑: 지원하고 싶어서 이력서 쓴 거 아니야?
나: 이력서는 다 썼는데, 자기 소개서를 쓰기가 싫네.
신랑: 왜?
나: 모르겠어. 왜인지.
신랑: 더 생각해 봐. 마음 안 내키면 지원하지 마.


주변 친한 사람들에게 이직에 대해 조언을 구했으나 답은 다 달랐다. 물을수록 혼란스러웠고, 어떤 답도 맘에 들지 않으니 묻고 또 묻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참 남의 답에 의존하던 내 모습을 보니 한심했다. 내 인생인데, 왜 남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는지.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내가 나한테 물었다.

‘너 진짜 가서 똑같은 일 하고 싶어? 그 일이 계속하고 싶은 거야?’


답은 No였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지만, 자리만 옮겨서 또 똑같은 일을 하고 싶진 않았다. 새로운 장소면 낫지 않을까? 새로운 사람들과 일하면 다르지 않을까?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답이 바뀌지 않았다.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며 나의 12년을 돌아봤다고 자위하며, 오늘 나는 ‘이직’을 아주 접었다. 


나를 잘 아는 건 나 자신뿐이다. 때론 흔들리는 마음과 직면하기보다는 날 잘 아는 주위에 답을 찾고 기웃거리지만, 답은 언제나 나에게 있다.




퇴사 후 내가 쓰려고 했던 자리에 거래처 대리님이 가셨다 들었다. 대리님이 퇴사하면서 주신 메일을 받고 아쉬워했었는데, 참 다행이다 싶었다. 그 퇴사 메일에 연이 닿으면 또 뵙기를 바란다 답장을 한 것 같은데, 내가 뵙기도 전에 닿을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끈을 자르고 나왔다.


대리님! 응원하겠습니다!


그리고 퇴사하면서 to do list에 넣은 게 하나 있다.

내가 기업 분석하면서 막연히 궁금했던 글로벌 회사에 조만간 영어 이력서를 내 볼 생각이다. 다신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게 조직생활이지만, 떨어져도 본전인데 지금 안 써 보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


J가 응원한 것처럼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새로운 문이 열리니깐, 그거 하나로 설레는 요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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