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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04. 2023

한 순간도 희망하지는 않았으리라.

강원도 홍태 이야기




20대 홍태는 치열하게 살았다.

졸업을 하기도 전에 취업에 성공했다. 마지막 2학기를 다 마치기도 전, 그는 강의실을 떠나 야근을 일삼았다.

빨간 날조차도 그에겐 사치처럼 느껴졌다.

출근 시간은 대기업 임원 못지않았다. 직주근접은 언감생심이었기에 그리 할 수밖에 없는 처사였다. 몸은 새벽 5시 15분 알람에 자동 반응했다. 물 한 컵 머금은 몸은 새벽 6시가 되기도 전에 출근길에 올랐다. 오래도록 밴 습관이었다.


이직할 때조차도 단 며칠간의 휴식은 없었다.

두 번째 이직은 결혼을 앞두고 서였다. 거리는 멀어지고, 일도 더 빡셌으나 미래의 장인,

장모님께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30대 내세울 거라고는 직장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책임감이라는 벽돌 두 장이 어깨에 오롯이 올려졌다.


그렇게 20대 청년 홍태는 40대 아저씨가 되었다.

흰 머리칼은 늘었고, 술 한 잔과 함께 마무리하는 늦은 저녁은 뱃살만을 남겼다.   

  

2022년 12월 1일 목요일.

40대의 마지막을 장식할 마흔아홉을 딱 한 달 앞둔 날이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차디찬 겨울의 냉랭함 마저 끌어안아주었던 그날.     


홍태는 단 한순간도 희망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는 희망 퇴직서에 자기 손으로 직접 사인을 했다.

명목상의 희망퇴직이지 강제 퇴출이나 다름없었다. 회사는 부서 자체를 없애 버렸다. 그가 이직해서 14년째 몸 담은 부서였다. 1년만 더 다니면 장기근속 포상을 꿈꾸던 자리였다. 회사의 부당함에 승소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굴하지 않겠다는 직원은 고작 한 명. 불의에 대응하기보다는 회사가 내놓은 3개월치 월급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가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오십을 바라보는 홍태도 그랬다.

회사는 정해 놓은 수순을 무차별하게 밟아갔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그의 기나긴 이야기는 한 달 안에 말끔히 정리됐다.   

  

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그가 마지막 근무를 하고 이른 귀가를 했다. 평일에는 좀처럼 가질 수 없었던 이른 저녁 외식이었다. 그동안 오가며 봐뒀던 근처 양꼬치 집으로 갔다. 남편과 나는 차가운 글라스 잔에 맥주를 콸콸 따랐다. 아이는 사이다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셋이서 합이 딱 맞은 “짠!”을 외치며 축배를 들었다. 남편의 퇴직을 앞두고 느꼈던 각가지 감정들이 시원한 탄산 속에 묻혀 모두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시원하고도 찌릿찌릿 짜릿했다. 이 맛에 술을 마시는가 보다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의 등을 가만가만 토닥여 주었다. 많은 말은 필요치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는 아들과 미리 준비한 깜짝 파티를 했다.

퇴직 파티라고 해서 특별할 것은 없었다. 여느 파티와 다름없이 꽃다발과 케이크를 준비했고, 선물과 편지를 준비했다. 다른 것이라면 좀 더 세심하게 정성을 기울였다는 거다. 이번만큼은 아이와 내 취향은 배제했다. 전적으로 남편의 취향만을 따랐다.


노란 튤립 꽃다발을 준비했다. 노란색이 가져다주는 발랄함을 택했다. 케이크는 질로 승부를 보겠다며 손바닥 만한 호텔 케이크를 야심 차게 준비했다. 아빠는 질보단 양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며 아들의 조언이 뒤따랐다. 오로지 사이즈에만 입각, 커다란 케이크 하나를 더 주문했다. 아이는 올리브영에서 거의 모든 남자 향수를 시향 해보고는 신중히 하나를 골랐다. 엄마는 가격대비 큰 사이즈 향수를 권했으나 아이는 오로지 아빠만을 생각했다. 아이는 아빠 선물에 지금껏 제일 큰돈을 썼다. 나 아까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 모습이 정말 예뻐 아이가 사달라고도 하지 않은 달콤한 간식을 다 사주었다. 아이도 나도 편지를 준비했다. 말로는 다 전하지 못하는 마음을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결혼 전 꼬불쳐둔 나의 소중한 비상금을 그에게 전했다. 그를 환하게 웃게 해 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준비한 깜짝 파티에 감정 표현 없기로 소문난 강원도 남자 홍태가 웃었다.

위아래 치아를 다 드러내며 환하게.

    

2023년 1월 1일 일요일.

새해 첫날. 우리 가족은 둘러앉아 떡국을 한 그릇씩 먹었다. 뽀얀 사골국에 하얀 떡국떡이 그득 든 새해 떡국을 먹었다. 속을 든든히 채워주는 뜨끈뜨끈한 국물이 일품이었다. 그가 하야디 하얀 순백 떡국처럼 뭐든 다시 새롭게 꿈꾸고 소망할 수 있기를 바랐다.    

  

2023년 1월 2일 월요일.

한 달이라도 맘 편히 쉬어 보라는 나의 권유도 만류하고, 그는 새 직장으로 출근했다.

단 하루의 쉼도 없이, 그가 늘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뒤에는 전업맘인 나와 아직은 초딩인 아들이 있다.

그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해봤다.   

  

달라진 것은 그가 새벽잠을 좀 더 청할 수 있다는 것과

가족과 함께 하는 아침식사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2023년 다짐해 본다.

남편을 위해 그동안 하지 않았던 아침밥을 손수 차려 보겠다고. 번거롭다 하지 않고, 투덜거리지 않은 채.

그에게 따뜻한 음식으로 나만의 든든한 위로를 건네 보고 싶어졌다.    

  

글로 밥 벌어먹고 살긴 힘들다 하지만

글쓰기에도 열심을 다해보고 싶다.

내 신랑도, 내 아이도, 나도 먹여 살려 보고 싶어 졌다.

타인까지도 돌볼 수 있도록 글 한번 잘 써 보고 싶어졌다.


모든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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