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산이는 남미로 갈 거라 했다. 자기 외모가 남미에서 좀 먹힐 거라나. 산이는 내 맘도 모른 채 신이 나서 말했다. 도대체 남미 중 어느 나라로 가는지는 물음표만 남겼다.
산이가 떠난 지 2개월이 지난 지금. 오늘도 나는 산이를 생각한다. 식탁 앞에 앉으면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저 멀리 호수 건너 양옆으로 쭉 뻗은 길. 그 길 위로 하루 종일 차들이 오고 간다. 그럴 때면 울컥 산이가 생각난다.
산이와의 첫 만남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내가 막 임신 했을 때이니, 산이는 우리 아이와 운명처럼 나이도 똑 들어맞는다. 산이는 멀리서 봐도 반짝반짝. 하얀 피부에 또렷한 이목구비로 눈길을 끄는 아이였다. 허나 아이 답지 않게 듬직하고 과묵했다.
산이는 늘 곁에 있어주었다.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했다. 산이가 싫다며 버티지 않는 한 우린 늘 같이였다. 산이가 우리 가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 알고 있는 이유다.
산이는 주말에 일주일치 장을 보러 갈 때도 함께였다.
차 안 오가는 대화 속 우리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다 알았다. 내가 갈 때마다 샐러드와 사과를 매번 사는 것에 놀라워했다. 더신기해했던 것은 매번 사면서도 한치도 질려하지 않는 내 태도였다. 남편의 라면 사랑에 대해서는 은근 동의하는 눈빛을 보냈다. 매일 다른 종류 라면을 먹을 수 있다는 것에 들리지 않는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아이 간식이 치즈에서 점점 매운 음식으로 바뀌는 것에도 흥미로워했다. 아이 최애 간식이 떡볶이라는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는 그 맛을 무척이나 궁금해했다.
매해 봄날 꽃구경도 함께 즐겼다.
산이도 봄날을 좋아하는지라 단 한 번도 나들이를 거부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와 함께 발맞춰 산책을 하지는 않았다. 산이는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아 봄날 정취에 푹 취하기를 좋아했다. 바람 끝에 따스함이 깃든 봄바람을 즐겼다.눈을 반쯤 감고 봄날 짜릉짜릉한 햇살을 누렸다. 그러다 벚꽃 잎이 한 잎이라도 떨어질 때면 온몸으로 꽃잎을 맞았다. 몸에 떨어진 꽃잎을 일부러 털어 내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도리어 사뿐히 앉은 꽃잎이 바람에 날려 흩어질까 돌부처처럼 그 자리를 지켰다. 그 모습이 좋아, 나도 산이 옆에 가만히 앉아 떨어지는 꽃잎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다.
긴박한 순간에도 산이는 함께 해주었다.
아이가 독감으로 응급실을 방문해야 했을 때. 산이는 보호자인양 자청해서 나섰다. 내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뛸 때. 산이는 나와 정반대로 극도의 차분함을 유지했다. 나에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전히 병원까지 가야 한다며 다독였다. 그 모습에 번뜩 정신이 들어 허둥대지 않고 차근차근 아이를 챙겼던 일이 생각난다. 늘 그렇듯 큰 목소리로 다그치지 않고, 전하려는 바를 확실히 알려주는 산이었다.
내 친구라며 떠벌려 자랑하고 싶을 만큼 산이는 참 매력적인 아이였다.산이에게 빠진 만큼 비례해산이부재로마음에는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슬픔은 남은 자의 몫이라 했던가. 나만 절절하고 어쩌면 산이는 여기를. 또 나를. 우리를. 말끔히 잊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한 장의 사진을 받았다.
산이였다!
카메라 화질이 좋지 않아서였을까? 산이가 꼭 옛 사진 속에 머무르다 튀어나온 것처럼 희뿌옇게 보였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는데,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걱정되는 모습과는 달리 산이는 씩씩한 목소리로 전했다.
자기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결말은 아니었다고.
도리어 나에게 응원을 건넸다.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는 데는설렘과 함께 덩치큰 두려움이공존한다고.꽤 괜찮은 경험이니 너도 일단 시도해 보라고. 절대 늦은 건 없다고.
지도에서 위아래 길게 뻗어있는 그곳을 뚫어져라 바라봤다.산이가 있다는 그곳. 칠레다.
산이는 14년 동안 함께한 자동차다.
새 차를 장만하게 되면서몇 년 동안 오롯이 나와 함께했다. 장롱면허 탈출 1등 공신. 말미에 나를 만나는 바람에 여기저기 생긴 상처가 자꾸 마음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