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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Jan 18. 2023

라이킷과 댓글 사이

초보 작가, 라이킷엔 춤추지만 댓글에는 눈물 훔친다.


놀랍게도 브런치로부터 여섯 번의 시무룩 금지 메일을 받았다. 이렇게 까지 떨어뜨릴 이유가 없었다. 분명 브런치 내부 나를 향한 음모가 있을 거라 생각할 즈음, 일곱 번째 재도전으로 합격을 맛보았다.


내 브런치 스승(슬초 쥔장, 9시 아침요정)은 이런 말을 남기셨다.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라고. 브런치 작가가 된 이상 100편의 글을 써보라고. 일단 쓰기 시작하면  퇴보는 없다고. 글은 절대로 배신하진 않는다고.   

  

부적처럼 가지고 있는 스승님 친필 사인본


스승님의 말에 매료당해 가슴이 다 찌릿찌릿했다.

숨어있던 세포 하나하나가 모두 ‘나 여기 있어요.’하며 반응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는 너를 믿어보겠어. 그 마음이 변할세라 곧바로 브런치 프로필에다 ‘매주 수요일 발행’이라 새겼다. 

내 손으로. 직접.      


평소 몸과 마음이 하나인지라  조금이라도 몸이 찌뿌둥한 날에는 마음도 그 길을 따라 걷기 일쑤였다.

둘은 적당히 타협하길 좋아했다. 둘 중 누구 하나 힘든 날에는 좀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법이 없었다.

그런 나를 너무도 잘 알았기에, 이번엔 아주 브런치  대문에다가 ‘매주 수요일 발행’을 타투처럼 새겼던 거였다.


이러고 나니 확실히 마음가짐이 달랐다.

모든 행동이 '타협'보다는 '완수'해 내달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의 스케줄은 브런치 발행에 맞혀 행해졌다. 주말에는 온통 글감을 찾아 헤맸다. 몸뚱이는 휴식을 취한다지만 머리는 끊임없이 글감을 찾아 데굴데굴 굴렀다. 월요일부터 화요일까지는 글쓰기에 매진하여 어떤 약속이나 외출 따윈 만들지도 않았다.

이 날 만큼은 배달 음식에도 마음의 문이 활짝 열렸다. 식사 준비로도 글 쓰는 시간을 내어줄 수 없다는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수요일.

‘발행’ 후에야 세상의 모든 자유가 내 것이 되었다. 그제야 두 다리를 뻗을 수 있었고, 마음에 얹어진 묵직한 짐 하나를 툭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연스레 남은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만이 글쓰기 외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는 시간이 되었다.  

   




사람들이 눌러주는 라이킷은 나를 춤추게 했다. 새로운 글을 낳느라 며칠간 느낀 산고 따위는

라이킷 하나만으로도 말끔히 사라지곤 했다.

라이킷 몇 개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그 느낌 제대로 아는, 나는야 초보 작가이니 말이다.    


그러다 슬슬 욕심이 생겼다. 라이킷 수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수시로 들락대며 누적되는 라이킷 수만 쳐다봤다. 노려보기라도 하면 마치 라이킷 수가 올라가기라도 할 듯.


라이킷 숫자가 그날 하루 내 기분을 좌지우지했다. 숫자가 쌓여 가면 내 기분도 덩달아 구름 위로 업업업 되었다. 목소리는 도레미파솔의 ‘솔’ 소리를 내고, 얼굴에는 절로 사랑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그러다 라이킷 수가 정체 구간에 접어들면 바람 빠진 풍선 마냥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pixabay





한 번은 의도적으로 라이킷 숫자를 늘려보겠다며 라이킷 발을 감행했던 적이 있었다.


다른 작가들의 글에 라이킷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제목이 좀 땡긴다 싶음 라이킷.

속독으로 슉슉 읽어 내려가다 느낌 좀 있다 하면

또 라이킷.

구독해 준 사람들에게 라이킷.

라이킷 눌러준 사람  찾아 다시 라이킷.


이건 아주 간단했다. 많은 시간을 요하지도 않았다. 일련의 과정이 단 몇 초 안에 해결되었으니 말이다.


내가 누른 라이킷이. 나에게 화답으로. 꼭. 되돌아오길. 간절히 바라며. 열심히도 눌러댔다.


의미는. 없었고.

의도만. 있었던.

라이킷 남발의 시간인 줄도 모른 채.





그러다 나의 네 번째 글

[한순간도 희망하지는 않았으리라

부제 : 남편을 생각하며 글을 쓰게 될 줄이야]를

발행하면서 비루했던 내 행동을 반성케 하는 일이 있었다.


https://brunch.co.kr/@pieora2022/11

이 글은 갑자기 찾아온 남편의 희망퇴직을 다룬 글이었다.  씁쓸했던 마음을 담담히 적어 내려간, 재미라곤 일도 찾아볼 수 없는 다소 지루하기까지 한 글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에 가까웠다고나 할까.    

 

하지만 그 글에 달린 댓글들은 차디찬 겨울의 냉랭함 마저 끌어안아주는 무언가가 있었다.  

따스함이 배어 있었고, 진정한 위로가 있었다. 

라이킷의 가벼운 기쁨과는 달리

글이 전하는 묵직함이 있었다.


댓글을 읽어 내려가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달아본 사람은 다 알 것이다. 어디 댓글 달기가 그리 쉽던가.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 일이다. 나도 댓글 하나 남길라 치면 썼다 지웠다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지 모른다.


댓글을 달기 위해서는 결코 대충 읽기란 없다.

주인공이 되어 글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천천걸어봐야  한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 진심 어린 마음도  있어야 한다.

마음을 전하려 자기의 소중한 시간까지 

기꺼이 내어 주었으니 말이다.


글이 주는 커다란 힘을 믿게 되었다.

라이킷의 집착에서 벗어나

그들처럼 울림이 있는 댓글을 나누고 싶었다.




이해, 유미래, 나나스크, 빛나리, 하눕, 홍선영, 연이, 뚜샷뜨아, 하우     


몹시도 쓸쓸했던 그날.

지나치지 않고 위로의 손길을 건네줬던 그 내들.

내가 기억하고 싶은 이름들이다.


늦었지만 고마워요. 꼭 전하고 싶었습니다.

        

모두 기다리고 계세요.

가 나풀나풀 날아 다정한 댓글  남기러 갈 터이니.


@pixabay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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