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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y 03. 2023

그의 손을 잡고 내리다.

      

몇 주 전 일입니다.

그림책 모임이 있어 서울로 향했지요. 새로 이사 온 곳에서 서울까지 이렇게 멀 줄이야. 튼 한 달 만의 반가운 그림책 모임을 끝내고 전 다시 친정으로 향했어요.

    

친정까지는 버스로 스무 정거장.

모임은 점심때를 훌쩍 지나 마무리 되었지요. 배 밖으로 나오려는 오케스트라 소리를 간신히 붙들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버스 안으로 쏟아지는 한낮의 햇살. 후끈후끈한 기운에 버스에서 탈출하고픈 생각만 가득했지요. 정거장을 하나씩 세가며 내릴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제 눈에 딱! 들어온 것이 있었어요.


정확히 그는 저보다 두 칸 앞에 있었습니다.

눈에 확 띄는 노란 커버. 그는 바로 노약좌석에 앉아있었죠.


누가 봐도 정신없는 모습.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죠. 동행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습니다. 저런 상태로 어떻게 혼자 버스에 올라탔는지, 온통 미스터리 투성이었죠.


온 신경이 그에게로만 쏠렸습니다.

    

유심히 바라본바 그는 자기 자리에서 오른쪽_ 뒤로_ 왼쪽_ 앞으로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어요.

그래도 나름 규칙적으로 움직이긴 했지요. 잠시 멈춰 서서는 주위도 살폈고요. 그리고는 또다시 반복. 누가 봐도 묘한 행동이었습니다.


이건 분명 우주가 보내는 신호!

번뜩 그를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 마음 저편에서는 쯧쯧 혀 차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모른 척해도 될 텐데. 너 또 괜한 일을 만드는구나 싶었어요. 갈등하는 사이 제가 내릴 정류장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전 모든 걸 운명에 내맡기기로 했죠.

내릴 때 그가 제 반경 안에 있으면 끌고서라도 그와 함께 내리겠다고요. 반면 먼발치에 있다면 미련 뚝! 뒤도 돌아보지 않기로요.

      


전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제목에도 떡하니 써놓은 것처럼 우리는 함께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두 손을 꼭 잡고서 말입니다.

     

그는 의외로 저항 없이 순순히 따라 내렸답니다.

제가 우주 최강 오지랖퍼가 되는 순간이었죠!

     

일단 그를 데리고 내렸으니 돕기로 했어요.

주변을 빠르게 스캔. 잠잠하던 그가 언제 다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니까요. 초스피드 판단과 행동이 필요했습니다.  

   

일단 길을 건너야겠다 음먹었죠. 

건너는 양지바른 곳. 알록달록 봄꽃이 잘 가꾸어져 있는 공원과 벤치가 있었어요. 딱 봐도 최고의 장소였지요.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기만을 기다렸습니다. 그의 손을 놓칠세라 손에는 힘을 더 주었고요.  

    

반가운 초록불.

우린 후다닥 건널목을 건넜어요. 휴- 큰 한숨을 놀리며 벤치에 앉았습니다. 이제야 그를 제대로 바라봤지요. 그도 긴장했었는지 몸을 축 늘어뜨렸다 이내 곧추세워 앉았습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말하는 거예요.

정말 고맙다고요.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며 여기서부터는 혼자 갈 수 있다고요.  그는 불안한 눈빛에 흔들리는 저를 도리어  안심시켰습니다.


일렁이는 불안감에 재차 물었지요.

그는 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확신에 찬 또렷한 눈빛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죠.








저는 그를  보내주기로 했습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일상으로 스며들어 가는 것 같았어요. 저도 한낮의 버라이어티 한 꿈을 꾼 것 같았지요. 오늘의 에피소트는 이렇게 큰 사건 사고 없이  마무리되는 듯했어요. 제가  아이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 전까지는요.

     

아이는 확신에 차서 말했습니다.

행동이 무모했다고요!

그는 절대 잘 살아갈 수 없을 거라고요!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발언이었습니다.

     








맞아요!

전 개미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달리버스에서 길을 잃은 듯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개미가 노란 커버 덕분에 유난히 눈에 띄었습니다. 개미가 살 곳은 여기가 아니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최대한 살포시 개미를 잡아 버스에서 함께 내렸지요. 제 손가락 사이에서 생을 다할까 조마조마했고, 최적의 장소에 풀어주기 위해 버스에서 내려서는 근처 공원으로 내달렸죠.


 버스에서 만난 개미.


개미는 태어날 때부터 무리 생활을 한다지요.

그 속에서 자기만의 계급과 역할이 주어지고요. 무리에서 벗어난 개미는 분명 도태되거나 일이 잘 풀려도 기껏해야 다른 무리 노예가 된다네요.

        

생각지도 못한 진실 앞에서 아... 모든 것이 아쉽고, 속상했습니다.    

      







이변이란 없는 걸까요.

세상엔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곤 하잖아요.


누가 알아요.

그가 새 친구들 만나 잘 살아가고 있을 줄요.

아님 혼자서도 순례자 길 걷듯 뚜벅뚜벅 잘 살아가고 있을 줄요.










사진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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