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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y 10. 2023

그런 위로

미란과 태희 이야기




잘 지내니?


잘 지내고 있는 거야?




첫 질문. 

시작부터 묵직함이 있었다.


선뜻  열고 들어가 보지 않았던 곳.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 다.


주어진 몇 분. 

겨우 몇 줄 끄적였을 때.


미란은 첫 번째 발표자로 지목되었다.     



뭐든 시도하는 네 모습이 멋져.

늘 최고일 필요는 없지.

잘하지 못해도 뚜벅뚜벅 끝까지 가보자.

걸어가는 길, 칭찬도 좀 듬뿍듬뿍하면서.     





달랑 네 줄 발표에

미란 얼굴은

빨간 단풍잎이 떼어질 줄 몰랐고,

목소리는 염소가 떼로 놀러 온 듯했다.

두 눈은 도수가 맞지 않은 안경을 쓴 듯 일렁였다.     


미희를 선두로 

계주 하듯 꼬리에 꼬리를 물며

발표는 이어졌다.










자신의 안부를 물으며

아무렇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울먹이거나

하나같이 눈물을 훔쳤다.

말을 잇지 못해 패스하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눈물 주의보 질문.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한 명.

태희.


그녀는 패스라는 말은커녕

한마디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눈물흘렸다.


강의 초반부터 시작된

그녀 울음은 말미까지 그칠 줄을 몰랐다.     

 






 



미란과 태희는

<인생 그리기> 강좌에서  처음 만난 동갑 친구다.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톡 깨질 듯

  얇은 유리막처럼 보였던

태희 첫인상. 


괜스레 겁이 나

일부러 거리를 두고 앉았던 미란이었다.





   태희는  

새하얀 피부에

윤기가 도는 검은 꽁지머리.

의도치 않아도 계이름 ''가볍게 넘나드는

가느다란 하이 톤과

부분 부분 귀여운 혀 짧은 소리.

특히 영어를 말할 땐

자연스러운 유창함이 매력적이었다. 




세상 가녀린 목소리로 

자기 생각을 끝까지 말할 때. 

미란은 그런 태희가 참 이뻐 보였다.

태희의 여리여리함 속 강인함이 마음에 들었다.     










이 날도 미란은 버스에서 태희를 우연히 만났다.

이렇게 자주 마주칠 수도 있는 걸까 신기해했다.


오월의 싱그러움과 함께

둘의 발걸음은 통통 가볍기만 했다.     


그렇게 웃음을 머금고 강의실로 들어섰다.





그런데


지금은


태희가 운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궁금증이 일었지만 누구 하나 묻지 않았다. 

질문을 한 강사님조차 함구했다.






   



          

강의가 마무리될 즈음, 태희는 스스로 입을 열었다.  

        

"제가 잘 지내고 있다 생각했어요.


근데 잘 살기는커녕

꾸역꾸역 버티고 있었던 것 같아요.


애써 힘든 마음을 외면하고 있었어요.


그 질문을 듣는 순간

작년에 돌아가아빠가

안부를 묻는 것만 같았어요.


아빠몰아쉬마지막 그 숨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빠가... 너무 보고 싶어요.”    

 




사람들은 일상에서 특별함만 찾아 쫓아.


평범함 속 깊은 소중함은 잘 몰라요.


아빠와 나눴던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너무나 그리워요.”    





태희는 꺼이꺼이 울면서도


끝까지.

용감하고.

솔직하게. 


자기 마음을 전했다.     




            

쉼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태희의 연예인급 스케줄을 들었을 때,

미란은 이미 태희가 겪고 있을

무거움이 짐작되긴 했었다.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오늘.

태희의 그 무거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깊은 슬픔 한가운데서

어쩔 줄 모르고 있는 태희에게

미란은 말했다.




태희야,

네게 이상하게 들릴 모르겠지만

난 네가 단 5분만 이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가 않아. 

아니, 절대 돌아가지 않을 거야!


이번엔 미란이 울부짖고 있었다.     





미란은 


 누구에게도 하지 않았던


꺼내 보기 싫어 꾹꾹 눌러 두기 바빴던

  

 이야기를 뱉어내기 시작했다.     





"태희야,

네가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말이야,

난 아빠의 부재로

평온함을 찾은 사람이야.

행복하다고까지 하면

네가 나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내 과거는 지우고만 싶은 부분이야.

난 아빠의 기일도 정확히 몰라.

그건 단지 몇 년 일이었고

그날은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는

안개 쌓인 뿌연 기억이야.

그 조차도 잊고 싶을 때가 많고.




태희야,

네가 아빠의 부재로

깊이 슬퍼하고 있지만 말이

난 그런 네가 부럽기만 하다.




 자신도 사랑할 줄 몰랐어.

내가 그렇게 증오했던 아빠,

그런 아빠의 일부이기도 하잖아.

그러니 내가 어떻게 나를 사랑할 수 있었겠니?


매일 걸음마 떼듯 연습을 .

주문을 걸어.

괜찮은 사람이다. 

난 참 좋사람이다라고.




그리고 말이야.

이젠 그렇게 미워했아빠에게도

조금씩 측은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


간장 종지 만하게 태어난 사람이

가족 모두를 품는다는 건

그에게도 무척 버거웠을 거라고 말이야."

       





둘은 오늘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갔다.


더 이상 말은 필요치 않았다.


마음속 서로의 안녕을 빌어줬다.










우린 저마다 아픔을 짊어지고 살아간다.

그 아픔이 절절해 들춰내기 싫고, 

숨기고만 싶을 때도 다.


하지만  불쑥 끄집어낸 릿한 생채기

다른 이에게 위로가 되기도 한다.





오늘 


미란이 태희에게  건넨


그런 위로처럼.

                












사진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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