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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어라 Mar 15. 2023

대신 부치게 된 편지

제주 원로화가 강용택 할아버지 보세요.

         



강용택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전 할아버지의 존재를 익히 알고 있어요.

엄마의 옛이야기 레퍼토리에 늘 등장하셨거든요.

꾸준한 스테디셀러처럼 말이에요.     


엄마의 이야기 속 할아버지는 군인 아저씨인데,

세월을 가늠해 보니 올해 벌써 93세의 할아버지가

되셨겠네요.  

    







한 달 전 엄마를 찾아뵀을 때의 일이에요. 현관을 막 들어섰는데, 엄마의 상기된 목소리가 저를 맞았죠.      


“진화야, 찾았어! 그 아저씨.”

“왜 여태 그 생각을 못 했나 몰라.”     


그러시며 코앞으로 핸드폰을 들이미셨죠. 화면 가득

아저씨 기사였습니다.     





저에게 아저씨 하면,

‘엄마 찾아 삼 만리 건빵 아저씨’로 기억돼요.     


아저씨는 종이 한 장이 귀하디 귀하던 시절,

저희 엄마에게 <엄마 찾아 삼 만리>를 선물해 주셨다죠. 엄마는 지치고 힘들 때마다 언덕 위에 올라 그 책을

펼쳐 들었다 했어요.

어찌나 슬프던지 어린 마음에도 엉엉 울었다 했어요.

그럼 돌덩이 얹힌 가슴이 좀 뻥 뚫렸대요.   

울 엄마, 이 책에 빌어 울었을 거예요.

아빠 잃은 설움, 집안 어른들의 매정함, 동네 사람들의 빨갱이 손가락질까지 모두 다요.  

    

참! 그리고 건빵 아저씨로도 기억돼요.

아저씨도 기억하실까요? 엄마네 집 앞 너른 들판을

지나, 언덕을 넘어, 군인들을 데리고 냇가에 멱 감으러 다니셨던 거요.

오며 가며 건빵 봉지 쓱 건네주고 가셨던 거요.

엄마는 아직도 아저씨 목소리까지 성대모사하시며

들려주세요. 먹을 거 귀하던 시절, 얼마나 귀한

간식이었을까요? 건빵 한 봉지는 굶주린 배는

물론이거니와 찬바람만 불어댔던 엄마의 마음까지도 온기로 가득 채웠겠지요.


지금 중학교 아들을 둔 제가, 그때의 아저씨를 생각해 보면, 참 훈훈하고 멋진 청년이 그려지네요.

     






아저씨가 엄마에게 그려주셨던 그림들.

엄마의 소녀처럼 들뜬 목소리로 그때의 그림들이

되살아나 병풍처럼 좌르륵 펼쳐집니다.  

    

담장 아래 흐드러진 노란 개나리가 있던 초가집 풍경.

가던 발길 멈춰 서서 그림을 그려주셨다죠. 도화지 위로 쓱쓱 그려지는 그림을 보고 엄마는 감탄했대요.

그 마음 잘 표현할 줄 몰라 마음속으로만 ‘아저씨, 그림 정말 잘 그려요.’ 외치고 또 외쳤대요.  

     

엄마는 다듬이질하는 아낙네 그림도 생생히 기억하고 계셨어요. 머릿수건 두르고, 치마저고리 걸친 아낙들의 옷자락 주름이 아저씨 손끝에서 살아 움직였대요. 마치 다듬이질 소리까지 들릴 듯 섬세했대요.

     




엄마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지금도 얘기해 주시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어요.


아저씨와 시장 구경 갔던 일이요. 그때는 따라나서는

것도 망설여지는 부끄럼쟁이였대요. 아저씨는 수줍은 시골 소녀를 이끌고 장에 가서 뜨끈뜨끈한 풀빵을 사주셨대요. 한 끼 때우기도 어려웠던 시절, 풀빵 맛은

세상을 다 가진 맛이었대요.

       

또 물방개 야바위도 시켜주셨다지요.

대야 속의 물방개, 물방개가 헤엄쳐 들어가는 칸마다 쪼르륵 적혀있던 이름들.

그때 최고의 선물이 캐러멜이었다던데,

운 좋게도 그날 물방개는 아저씨와 엄마 편이었대요.

캐러멜을 받아 들고 엄마랑 아저씨 둘 다 활짝 핀

해바라기 꽃 마냥  꽉 차게 웃었대요.  

    

선물 같은 날들이 있은 두어 달 후, 아저씨는 군복무를 마치고 고향인 제주도로 향하셨다지요.


돌아가시면서는 엄마 손에 아저씨 사진 한 장과 집주소를 꼭 쥐어 주셨고요.


아저씨는 다정한 편지를 보내주셨대요.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예요. 엄마는 그때를 국민학교 1, 2학년으로 기억하시 더라고요. 아저씨 편지를 받아 보고신기했고, 뛸 듯이 기뻤대요.

엄마는 보내주신 편지를 읽고 또 읽었대요.

<엄마 찾아 삼 만리>를 읽었던 그 언덕에 올라

외우다시피 읽었대요.  

    

답장을 하고 싶어도 편지지랑 우표 살 돈이 없고,

또 어떻게 보내야 할지도 몰랐대요. 어린 마음에

고민했지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대요. 그때 어른들은 먹고사는 거 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대요.

 

좀 살만해졌을 때, 아저씨에게 답장할 생각으로 그 편지를 찾았으나 온데간데없어 속앓이를 하셨대요.


그 뒤로 아저씨는 엄마의 타임캡슐 속에 봉인되어

그 안에 머무르셨죠.








엄마는 무척 아쉬워하셨어요.

지금에서야 아저씨를 찾아낸 일을요.

왜 아저씨가 화가가 되셨으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을까 너무 애달아하셨어요.

아저씨가 화가가 되셨을 줄은 꿈에도 모르셨대요.

     

그리운 마음으로 무심히 검색해 보셨던 거래요.

‘제주도 강용택’ 여섯 글자를요.

그림 잘 그리시던 아저씨, 혹시 화가가 되신 건 아닐까? 하는 밋밋한 마음으로요.


   

그러곤 심장이 쿵! 발치까지 떨어지셨대요.     



아저씨가 고향 가시며 엄마 손에 쥐어 주셨던 그 사진.

똑같은 사진이

엄마를 기다렸다는 듯 미소 짓고 있었대요.   


강용택 화백의 젊은 시절

   

엄마는 다시 그 시절로 내달려 아저씨를 만나며

많이도 행복해하셨어요.

일제강점기와 해방, 제주 4.3 사건과 6.25 전쟁까지

어렵고 불안한 정국 속에도 붓을 놓지 않고 정진하신

아저씨를 자랑스러워하셨죠.      




아저씨의 병환 소식을 알기 전까지는요.

미술 행사 중에 쓰러지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는

기사를 접하시고는 가슴을 치며 아파하셨어요.  





   

이렇게 쉽게

여섯 글자만으로도 찾을 수 있는 아저씨였는데,

너무 돌아왔다. 너무 돌아왔어.


좀 더 일찍 찾았어야 했는데.


아저씨 건강하실 때 찾아뵀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다.

너무 늦었어를 연발하셨죠.    





그래도 전 엄마와 아저씨가 다시 만나는 그날을

그려봅니다. 그날을 꿈꿔봅니다.  

   

그 시절,

자기 몸뚱이 하나 챙기기도 힘들었던 시절.

저희 엄마에게 베풀어 주신 한 줄기 빛과 같았던

온정에 감사드려요.


나아갈 곳 없는 끝도 없이 펼쳐진 너른 들판에서

작디작은 풀꽃 같았던 저희 엄마에게

참 좋은 어른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려요.


엄마의 삶을 바라보며

좋은 어른 한 명 없었던 게 애처롭기만 했는데,

아저씨처럼 이렇게 좋은 어른이 계셨다는 게

커다란 위안이 됩니다.







              

아저씨 그림 속,

흐드러진 개나리처럼 지금쯤 제주에도 봄이 왔겠죠?


아저씨의 무료한 침상에도

이 놀러 왔기를 바라봅니다.





아저씨의 안부가 무척 궁금한 날입니다.     












[커버사진 _ 강용택 화백 작품]

[사진 출처 _ 한라일보, 제주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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