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먼저 도착한 선물은 스테미너계의 으뜸. 장어즙이었다. 택배 박스를 열어 보니 30포 장어 진액이 가지런히 간격을 맞혀 누워있었다. 상자 포장에서부터 고급진 냄새가 폴폴 풍겼다. 쇼핑백까지 동봉되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선물이라도 하라는 세심한 배려 같았다.
며칠 뒤, 이번에는 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작은 택배 상자가 도착했다. 흔들면 찰찰. 마라카스연주하듯 경쾌한 소리가 났다. 상자를 뜯기 전 몇 번을 더 흔들어 보았다. 누런 택배 상자를 가르고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한 손에잡히는 작은 상자 두 개. 하나는 잇몸 약, 또 하는 종합 비타민제였다.
그 뒤로 일주일 정도 더 지났을까. 이번에는 엄청나게 큰 택배 상자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혼자 들고 들어오기 버거울 정도의 덩치였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거의 끌다시피 안으로 들였다. 상자 안에는 시리얼 박스 크기의 상자가 무려 8개나 들어차 있었다. ‘우리 땅에서 기른’ 문구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오트밀 박스였다.
선물이 ‘건강 꾸러미’라 하더니 모두 몸을 살뜰히 챙긴 선물이었다. 하지만 선물을 세 개나 받고도 난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싫었던 건 처음이었다.
선물은 라디오 사연 소개로 받았다.
MBC 여성시대 신춘 편지 쇼에 응모했다가 방송을 타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몇 편이 미리 소개되었고, 그중 한 편이 내가 보낸 사연이었다.
이 소식을 알렸을 때 남편은 말했다.
“사연도 소개되고, 선물도 준다니 그럼 다 끝난 거네.”
방송 중 서경석 씨가 강조하며 얘기했다.
“지금 소개된 사연도 수상작 후보가 되는 것입니다.”
한 청취자는 댓글은 남겼다.
"지켜본 바 미리 소개된 사연은 절대 당선작이 아닙니다."
아닌 게 아니라 사연을 손 편지로 곱게 적어 보낸 뒤 꿈 하나를 꾸었다. 씨름 선수 허벅지 마냥 튼실한 노랑, 빨강 두 마리 구렁이 꿈이었다. 너무 생생해서 꿈 해몽집을 찾아보기까지 했다. 곧문학계에서 이름을 떨칠 일이 있다는헤벌쭉기분 좋은 해석이있었다. 다른 해몽은 다 제처 두고 내가 듣고 싶은 그부분만채로 걸러 마음속에 품었다.
이러고 보니 내내 희망에 차뭉개 구름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
드디어 발표 날. 당선작은일주일에나 걸쳐 소개된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연이 소개되는 당일 날 아침 수상자들에게 알려 주나 보다.’하는 순진한 생각을 했다.하루하루 방송시간만 기다리며 챙겨 들었다. ‘시상식이 있다고 했는데... 전국구 사람들이 모이려면 이쯤에서는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야?’하며멍청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다. 쩝.
내가 이렇게도 눈치 없는 여자였다니!
오 마이 갓.
고백하자면 그 뒤로 여성시대를 듣지 않았다.
소심한 복수라도 하려는 듯.눈치 제로에이어 뒤끝작렬하나 더 추가다.
이상하게도 그날을 기점으로 글쓰기 불씨가 사그라들었다. 고작 글쓰기 6개월 만에 사춘기에 접어들었다. 마음은 비구름 떼로 가득했다. 그러면서도 수요일 발행 약속을 지키고자 발버둥 쳤다. 마음에도 들지 않는 글을 쥐어짜 내 계속 발행했다. 그럴수록 글쓰기가 정말 싫어졌다. 수요일 발행 간판을 내리고만 싶었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나를 괴롭게 했던 그 간판이 없었더라면. 어쩜 그 상황에서 글쓰기에 종지부를 찍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때 답답하도록 무식하게 수요일 발행을 지켜 온 나를. 지금은 궁둥이 팡팡 칭찬해 주고 싶다.
생각해 보면 수상이라도 했음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분명 기고만장 꼴불견 글쟁이가 되었을 테니 말이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반갑지 않았던 선물은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었다.
다른 사람들 품에 안겨 하나, 둘 고맙다는 인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옳은 선물답게 기쁨을 안겨 주었다.
오늘은 매정하게 돌아섰던 그곳에 다시 놀러 가 봐야겠다. 덕분에 눈치 좀 챙기는 겸손한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