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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석 Apr 17. 2020

부양의무자 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악법

서당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나름 복지관에 1년 반 넘게 있으면서 느낀 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부양의무자 제도에 관해서이다. 나는 이 제도로 굶어 가는 사람은 봤어도, 수해를 봤다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직계가족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수급비를 받지 못하는 제도이다. 이 법은 원래 가족 간 부양이 이뤄지게 하며, 경재 공동체 내 이중 수급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법은 빈자들의 목을 얽맨다. 부양의무자 제도가 악법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직계가족이 빈자를 외면했을 때 빈자는 그대로 방치된다. 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에 복지대상에서도 밀려난다. 기껏해야 특수사례로 등록해 근근이 도움을 받는 것 정도이다. 이런 사례를 들으면 보통 부모를 고려장 한 양심 없는 자식들을 생각하기 쉽다. 물론 자식이 해외나 어디로든 사라져서 영문도 모른 채 홀로 남겨진 분들도 있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사례는 그들이 배우자와 자식을 '도망치게끔'한 경우다. 빚에 지치다 못해 가족들을 가정폭행과 폭언으로 쫓아보넨 것이다. 빚에 망가져, 술에 망가져 가정을 파탄시키고 홀로 남겨진 이들은 정말 주변에 아군이 없다. 사회복지사의 행정적 도움이 유일한 사회적 온기이다. 그런데 그 마저도 여의치 않다. 부양의무자 제도에 의해 그분은 수급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간, 어떻게 직계가족과 연락이 되면 '부양의무자 포기 각서'를 쓰게 하면 된다. 그럼 자동으로 그분은 수급자가 되고, 살기 위한 지원을 받는다. 그러나 행여 찾아올까 무서워 아예 종적을 감췄을 땐 그렇게도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고시원을 전전한다. 고시원 중에서도 질이 낮은 허름한 고시원에서 산다. 돈이 없지만 수급자가 아니라 임대주택에도 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사적으로 빌린 돈이 많다. 때문에 사례로 지원을 해도 쉽게 돈이 모이지 않는다. 사는 게 이러니 몸도 성치 않다. 알코올 중독만 아니면 정말 기적적으로 좋은 경우다. 5년 넘게 사례 쪽을 일한 복지사분에게 물어봤다만, 이런 케이스에서 다시 정상적인 생활로 넘어가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플 때 치료해주고, 자고 씻고 입는 것은 기본은 되도록 해 주는 것이 복지 아니던가. 역량 부족이 아닌 법 때문에 도와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국가의 책임이 아닐까.





둘째, 부양의무자 제도로는 부정수급을 막지 못한다. 임대주택단지엔 사실혼 사례가 많다. 왜냐면 결혼을 하면 경재 공동체가 되고, 소득이 많아져 수급 기준에서 탈락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좋아하고 함께 살지만, 행정 경제적으론 남남으로 사는 것이다. 이들이 편법을 쓴다고, 임대단지 살면서 밴츠를 끌고 다닌다는 것이 아니다. 이 정도는 수급자들 사이에서 상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급자로서 어느 정도 소득을 숨기는 것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필수다. 파산까지 간 빈자는 어느 정도 자금이 모인 후 경제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의 수급 기준이 이에 미치질 않는다. 정직하면 정직할수록 더 불편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하나 있다. 살짝 치매가 와서 경제관념이 약해진 분의 일이다. 그분은 술집이나 클럽에 최저시급도 안 되는 돈을 받아 가며 일을 했다. (치매가 있는 분은 청소 주선 업체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것이 그분에겐 최선이었다.) 한 푼 한 푼 모아 삼천, 사천을 모았는데 어느 순간 수급자에서 차상위로 등급이 바뀌었다. 알고 보니 모든 돈을 한 통장에 넣어놔 소득이 많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그분은 다시 소득이 마이너스가 됐고, 지금은 다시 수급자가 되었다.



실례가 이러니, 수급자들이 부정수급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거기다가 약간의 정보로도 -단순히 통장을 나눠 가지는 것, 현금을 가지고 있는 것, 제삼자에게 맞기는 것 등등- 아주 쉽게 부정수급이 이뤄진다. 그런데 실제로 만나는 부정수급 사례 중 10에 8은 약한 부정수급이다. 높으신 분들이 일례 벌이는 '생계형 비리'가 아니라 진짜, 진짜 진짜 가난한 사람이 먹고살자고 벌이는 '생계형 비리'이다. (그래서 이미 충분한 소득이 있는데도 수급비를 받고 임대단지에 사는 사람들이 더 악덕한 것이다. 그런 강한 부정수급은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
똑똑한 사람들은 현 제도 내에서 어떻게든 부정수급을 한다. 이런 면에서 부양의무자 제도는 실패했다. 오히려 정보가 부족한, 충분히 가여운 사람을 괴롭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일 뿐이다.





가족을 부양하는 자는 부양의무자 같은 제도 없이도 부양을 한다. 또 가정을 버릴 자들은 이런 제도로도 그 발길을 막지 못한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빈자를 '부양'하게 하지도 않고 이를 '의무'하지도 못한다. 차라리 자립 방해자 제도라고 부르는 게 맞을 테다. 부양의무자 제도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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