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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석 Jun 01. 2020

시금치의 맛

어린이와 시금치

시금치나물을 맛있게 먹으려면 깨작깨작 먹어서는 안 된다. 담대하게 한 움큼 집어넣어야 한다. 시금치나물이 으직하게 씹히면 초록 채소의 우직함이 입 안에 감돌면서 미묘하게 고소한 향이 피어난다. 이 맛을 알고 나면 젓가락을 땔 수 없다. 이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금치나물을 먹어왔는지. 그리고 그때까지 시금치나물을 해 오신 어머니의 수고로움이란.



나는 꼬꼬마 시절엔 채소를 싫어했다. 정확히는 초록 채소를 싫어했다. 물론 채소를 좋아하는 어린아이가 어디 흔하겠냐마는, 어릴 때부터 의심이 많았던 고 성질머리에선 이런 고집이 들어앉아 있었다.


'어떻게 쓴 맛이 나는 저 녀석으로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지?'


어쩌다가 한번 어머니가 나물을 해서 주시면 얄밉게 한 젓갈 시음해보고, 맛없다고 판명되면 한 입도 대지 않았던 것이 초등학교 때 까지였다. 그런 때에도 먹을 줄 알던 초록 채소가 하나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시금치였다. 시금치야 원체 쓴 맛이 없거니와 들기름에 잘 무쳐진 시금치의 그 고소함은 한마디로 강렬했기 때문에 채소 먹을 줄 모르던 나도 적당히 씹어 넘길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명절을 기념해 일가친척이 큰집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던 날, 할아버지께서 날 보더니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집에 돌아가거든 애 데리고 병원 한번 가봐라"

 

의미심장하시던 그 말씀, 병원에 들러 이것저것 검사를 해 보더니 며칠 안 있어 나는 큰 대학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위장관 출혈로 인한 빈혈이었다. 의사는 생각 이상으로 심각한 눈치를 보였다. 들어보니 보통이라면 걷기도 힘들 만큼 심한 상황이었는데 어째선지 나는 그런 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정말 위험했을지 모른다는 그 말, 채소도 제대로 못 먹던 시절의 나보다는 곁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의 가슴에 더 무게를 얹었으리라.



참으로 묘하다. 스스로 병인 줄 모르고 있었을 땐 괜찮더니, 병인 줄 아니 갑자기 내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쓰러지기를 몇 번, 토하기를 수십 번, 몇 번씩 다시 입원하고 퇴원하기를 반복했다. 생각해보면 그때마다 나는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부모님이 나를 대신해 놀라 주었기 때문일까.



하여간 내가 아픈 이후 우리 집 밥상에 김치가 사라졌다. 맵고 짠 것이 내 위에 안 좋았기 때문이었다. 만만하면 꺼내먹는 반찬의 위치는 시금치로 바뀌었다. 우선 자극적이지 않았고 또 줄곳 먹어왔기 때문이었다. 시금치에 철분이 많다는 속설이 어머니의 지긋한 걱정을 한 움큼 덜어줄 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식탁에 맵고 짠 녀석들이 사라지니 어린 나이에 그 입이 얼마나 심심했을까. 평생 식단을 바꿔야 된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저항했다. 쫄면, 피자, 김치찌개, 돈가스, 갈비 등등 나는 기회만 되면 먹어선 안 될 것들을 골라 먹었다. 그러나 이걸 어째, 그렇게 먹었던 녀석들은 입구를 출구 삼아 내 몸을 빠져나갔다. 그러고 끝이면 다행이지, 오다가다 속을 뒤집어놓는 바람에 끊었던 약을 다시 먹으면 그나마 다행, 심하면 다시 입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내가 그런 고약한 것들을 먹은 행동은 운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어리석음에 튀어나온 사춘기적 반항이었다. 모든 반항이 다 그렇듯 부모님 속을 완전히 긇어 놓았겠지. 그러나 다행히 늦게나마 나는 그런 반항을 그만두었다. 내 몸이 아프면 나보다 부모님이 더 고생하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 후로 나는 순순히 시금치나물을 집어 들었다.



나의 몸은 성인이 되어가며 차츰 건강을 되찾았다. 밖에서 어쩌다 라면을 먹어도, 이따금 술을 마셔도 병원에 실려가지 않는 몸이 되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지만 시금치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물론 이젠 초록 채소도 잘 먹고, 더 이상 먹는 것을 가지고 치기를 부리지 않는다. 채질이 바뀌었다 해야 할까. 하지만 시금치는 여전히 으적으적 씹힌다. 그러나 이제는 그 맛이 우직하게 감돌고 미묘하게 피어난다. 젓가락을 땔 수가 없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시금치나물을 해다 주신다.



어릴 때 부모님의 관심은 귀찮고 버겁다. 그러나 그것은 관심을 받을라 치면 후다닥 도망가버리기 때문이다. 사랑을 한 움큼 받아먹으면, 기쁨이 우직하게 감돌고 미묘하게 슬픔이 피어오른다. 그 마음을 알고 나면 나의 마음도 붙어 땔 수가 없으니. 나는 자라고 커가며 바뀌었지만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그 자리에 지금 역시도 그 자리에 계신다. 어린이는 '어리석은 이'가 변형된 말이란다. 무엇이 그리 어리석을까, 시금치의 맛을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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