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철학사는 버트런드 러셀이라는 분이 쓴 책입니다. 이 책은 1945년도에 나왔는데 2차 세계대전이 벌어진 년도죠. 한창 세계가 세 갈래로 찢어져서 싸울락 말락 할 때 집필된 책입니다. 러셀 경은 나치즘, 파시즘을 싫어했어요. 따라서 파시즘을 낳은 대륙 철학 계보, 예를 들어 헤겔이라던지 니체라던지 더 깊게 가자면 플라톤도 별로 좋아하지 않어요. 철학이 러셀 현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만큼 학문의 역사를 서술하는 과정에서 러셀의 호불호가 책에서 짙게 나타나는 편이에요. 독일, 이탈리아에선 파시즘을,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라면서 스탈린식 강경통치가 이어지는 것을 보다 보니 아무래도 경개한 게 있겠지요.
이 책의 이름이 서양철학사지요? 이 이름에도 의미가 있어요. 러셀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철학사라고 하면 무조건 유럽 지역에서 이어져 내려온 철학자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이런 사람만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과학사’라고 하면 바로 채무선이나 장영실을 떠올리진 않잖아요. 뉴튼이나 라이프니츠 이런 분 생각나죠. 그리고 뉴튼 라이프니츠만 써다가 책을 내도 굳이 서양 과학사 이렇게 내지 않고요. 이런 느낌으로 과학사라고 하면 동양이 아닌 서양을 중심으로 보듯이 철학도 일단 무조건 서양을 기점으로 이뤄진다고 봤던 시기예요. 심지어 유럽사를 보고 세계사라고 하기까지 하던 시기다 보니 다른 사람은 그냥 철학사 이렇게 붙옅을 수도 있는데 러셀은 서양철학사라고 붙인 거죠.
서양철학사라는 말은 동양철학에 대한 암묵적인 인정이었어요. 르네상스 때부터 대항해시대라고 해서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동양의 서적들이 많이 유입이 됬었어요. 인도의 베다, 우파니샤드, 아니면 중국의 금강경이나 논어, 도덕경 이런 서적들이 교역이 활발해지면서 서쪽으로 넘어가거든요. 그때부터 급진적인 지식인들이 동양 철학을 흡수하기 시작해요. 스피노자라던지 라이프니츠라던지, 쇼펜하우어도 인도철학에 대해 언급을 했었지요. 그렇게 동양 쪽에서도 나름 그럴듯한 철학이 있고 채 개적으로 발달을 했다는 생각이 이렇게 알음알음 알려왔었어요. 러셀도 그 분위기에 합류해서 우리의 철학은 모두의 철학이 아니라 우리만의 철학이야, 유라시아 대륙 서쪽에 사는 우리 사람들의 철학 이렇게 규정을 해서 지은 게 서양철학 사라는 이름이에요.
이 책은 ‘철학이 뭐가 필요해’라는 질문으로 시작을 해요. 철학이 왜 필요한지 먼저 자문합니다. 그때도 철학은 뭐가 필요해? 인문학 뭐가 필요해? 돈도 안 되고 생산성도 없고 문사철은 나가서 치킨이나 차려!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에요. 러셀은 이런 식으로 대답을 해요.
‘그건 순서가 잘못됐다. 철학이나 인문학이 생산성이 있고 쓸모가 있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쓸모를 찾기 위해 철학을 찾은 것이다. 정말로 우리가 건강하게 질문을 하고 그 질문에 답을 건강하게 찾고 싶고 뭔가를 불확실한 체로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는 철학을 해야 한다, 할 수밖에 없다.’
조금 매운맛을 첨가하자면, 철학이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생각이 불완전하고 제대로 질문을 던질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죠. 어쨌든 그런 식으로 시작을 합니다.
‘철학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우리의 올바른 생각을 깊게 다지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본격적으로 책이 시작하고 가장 먼저 그리스가 언급돼요. 서양의 철학은 본격적으로 그리스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요. 그런데 그리스 이전에 있던 문명도 있을 거 아녜요? 이집트라던지 메소포타미아, 바빌로니아 등등이요. 그런 문명들을 일단 언급하고 넘어갑니다. 모든 철학의 시작은 일단 원시 신앙에서부터 이어져 오죠. 띠라서 고대 문명들의 종교적 정신적 태도를 비교합니다. 그중에서도 이집트의 신앙과 메소포타미아의 신앙을 비교해요. 러셀의 정리를 압축하자면, ‘제발 잘 죽게 해 주세요.’가 이집트의 신양이고 ‘제발 잘 살게 해 주세요.’가 메소포타미아의 신앙이라고 해요. 이집트는 너무 죽음의 문제에 빠져든 나머지 세속적 발전이 더뎠다 해요. 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아시리아라던지 바빌로니아라던지 수메르라던지 문명 교체가 엄청 많이 일어났잖아요? 사람들이 한 곳에서 치고받고 싸우다 보니까 이집트인들처럼 누워서 죽기만 해도 장땡이고 일단 살아있을 때 좀 부유하고 보자는 생각이 생겨났어요. 그리고 이런 생각이 기복적인 신앙을 많이 발달시켜요. 따라서 점성학이나 천문학이 많이 발달했고, 현세를 기반하는 사고방식이 이성적인 생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평가를 합니다. 특히나 메소포타미아에서 발전한 천문학이 그리스 지역의 탈레스 같은 학자들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해요.
이제 그리스의 시대가 왔어요. 근데 왜 하필 그리스의 시대에 철학이 시작됐을까요? 메소포타미아랑 이집트에선 철학이 발전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이유를 러셀이 지리학에서 찾아요. 지리학에서 철학의 시작을 찾았다는 건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바로 아실 거예요. ‘총 균 쇠’ 이 책이 유행을 하기 전 까지만 해도 사람들 사이에서 서양 우월적인 사고방식이 있었어요 ‘서양이 잘 사는 이유가 대체 뭐일까, 그건 바로 서양인들이 잘나서가 아닐까? 백인들이 잘나서가 아닐까?’ 이런 거요. 이런 사고방식의 끝판왕이 나치들의 아리아 인종 우월 이론이었죠. 그리고 그런 사고방식은 아리아인들이 우월하니 지배자를 해야 하고 유대인들은 열등하니 죽어도 된다는 생각을 낳았고요. 근데 러셀은 그런 사상을 싫어하고, 맞는 말도 아니었으니 이유를 인종이 아닌 지리학에서 찾습니다. 어떤 지리적 요건이 철학을 만들었냐 하면, 그리스 지도를 보면 산이 굉장히 많거든요. 바다 쪽 해안을 따라서 산과 산 사이에 작은 평지들이 드문드문 분포되어 있었어요. 그 평지에 자리를 잡은 폴리스들이 서로 느슨하게 연결돼 있는 상태로 있던 게 그리스예요. 폴리스들이 어느 정도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내다가 더 이상 자급자족을 못 하게 됬고, 산에 막힌 육로 대신 해로를 통해서 교역을 하기 시작했어요. 약탈도 하고 침략도 하면서 서로서로 간 대화할 거리가 많아졌죠. 따라서 자연스럽게 언어가 발달해요. 언어가 어휘나 문법이 풍부해지고 더 추상적으로 말을 할 수가 있게 언어가 깊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런 식으로 발달을 합니다. 그래서 이 언어로 철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죠.
이렇게 언어적인 판을 깔고 호메로스를 언급을 합니다. 그렇게 발달한 언어로 호메로스 신화가 생겨났다고요. 호메로스는 일리야스랑 오디세이아를 쓴 극작가예요. 일리야스랑 오디세이아가는 그리스 식 영웅들 이야기예요. 신의 친척이나 뭐 영웅들이 복수를 하기 위해 아니면 예언을 따라서 모험을 떠나고, 괴물과 싸우고 거인과 만나거나 하는 이야기가 이 두 작품의 분위기예요. 호메로스가 살던 시기는 역사적 암흑기였어요. 고대의 더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와 우리가 흔히 아는 고대 그리스 간 사이 시대에 남아 있는 기록이 거의 없어요. 거의가 아니고 아예 없다시피 해요. 그래서 이 시기를 암흑기라 부릅니다. 그런데 그런 암흑기에 몇 개 안 남아 있는 언어적인 기록물이 바로 호메로스의 작품들인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호메로스 작품을 보고 이 시대 때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았나, 어떤 문화적인 그런 배경을 하고 살았나를 유추할 수 있어요. 여기서 러셀은 이걸 유추해 냅니다. 이거 작품을 보니까 신들 조차 예언자의 예언에 의해서 망하고 흥하더라. 이 말은 무엇이냐, 예언자가 가장 쌘 거냐? 그게 아니라 신도 이길 수 없는 어떤 법칙이 있다는 것을 그때 사람들은 믿고 있었던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모든 것을 쥐락펴락 하는 게 아니고 그 신들조차 어쩌지 못하는 법칙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결국 이어지고 이어져서 결국 자연볍칙과 흡사한 그리스 철학의 그 무언가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해석을 합니다.
버트런드 러셀은 법칙 이야기 후에 그리스 내부의 토속 신앙을 이야기해요. 그리스에 있었던 토속적인 신앙은 어땟느냐, 물론 폴리스마다 문화가 서로 달랐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농사짓고 사는 촌락에서는 대표적으로 헤르메스랑 판 이 두 신을 섬겼다고 해요. 나무둥치를 갖다 놓고 신상이라 여긴 다음 풍요를 기원하고, 풍년이면 제물을 바치고 흉년이면 그 나무를 쪼개서 신한테 겁을 줬다고 해요. 이랬던 풍요의 신들이 디오니소스랑 바쿠스로 이어져요. 바쿠스는 트리키아 인들의 신인데 이게 그리스로 넘어오면서 정착을 한 거예요. 하여간 비슷한 기원을 가진 풍요의 신들이 이름이 바뀌고 융합되면서 판 헤르메스 디오니소스 바쿠스 나뉜 거죠. 결국 이 신들은 같은 계보 선상에 있다고 보면 돼요. 이 신들은 공통적으로 풍요의 신들이었죠. 한데 곡식의 풍요로움이 포도 같은 게 이제 나중에 술이 되니까 이 신이 배부르게만 하는 게 아니라 기분 좋게도 해 주네, 싶어 사람들이 이들을 술의 신으로 섬기기 시작해요. 나중에 풍요는 뒷전이고 술 마시고 취하는 게 일 번이 됐죠. 그중에서 바쿠스는 결국 정신적인 만족감을 주는 신으로 바뀌어요. 바쿠스의 신도들도 취하고 미치는 걸 신앙 재례처럼 중요하게 생각했고요. 바쿠스 신도들은 정말 광란의 재례를 했어요. 한 밤중 마을 언덕에 올라가서 옷을 다 벗어 재끼고 미친 듯이 춤을 추면서 술도 들이키고 광란의 파티를 벌인 다음 짐승을 대려다가 살아있는 채로 뜯어먹으며 종교의식을 벌였다고 해요.
바쿠스 교는 후에 오르페우스교로 발전이 돼요. 마치 유대교가 그리스도교로 발전한 것처럼요. 오르페우스라는 사람이 바쿠스 교를 개혁해서 바꿨다고 해요. 오르페우스는 신이 한번 찢어져서 죽었다가 제우스에 의해 다시 태어났다던가, 영혼은 윤회한다던가, 정결한 삶을 통해 영혼을 천상계로 올려야 한다는 교리를 바쿠스 교에 추가했어요. 본격적으로 정신을 영혼이라 여기며 불멸성을 부여해 신성시했던 거죠. 오르페우스가 말한 영혼 윤회는 꽤나 중요한데요. 영혼을 깨끗이 하여 몸에서 벗어나 신의 세계로 간다는 생각이 중세 때까지 계속 나와요. 그래서 오르페우스식 몸에 대한 부정과 정신에 대한 긍정, 이건 기억하시면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고대 그리스에서 철학이 만들어지기까지 모든 배경 예기가 끝나요. 지금까지 나온 걸 정리하면 이래요. 그리스는 지리적으로 나눠 저 있어서 해로로 교역을 하면서 언어를 발달시켰다. 그렇게 발달한 언어가 호메로스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을 보니 신조차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있다더라. 그 법칙이 자연법칙 비슷하게 관련된 믿음으로 흘러 들어갔다. 또한 촌락에선 윤회 사상과 정결 사상을 말하는 풍요와 광기의 신 바쿠스를 믿는 오르페우스교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