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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래도 찰옥수수, 널 사랑해

초당옥수수밭 한가운데에서 찰옥수수를 외치다

by 피존밀크




어릴 적, 여름이 되면 엄마는 어디선가 옥수수를 불쑥 갖고 나타나셨다. 뜨끈뜨끈한 열기 때문에 만지면 손끝이 아려오지만 따스한 알갱이 하나하나 베어 먹던 즐거움이 있었다. 한 개 먹어서는 뱃속을 채워주지 않아 2~3개 먹어야 했지만, 그렇게 해도 엄마는 딱히 눈치를 주진 않으셨다. 생각해 보니 옥수수가 간식으로 나오는 날에는 어쩐지 수북이 쌓여있던 기억이 난다.



나이를 먹고 성인이 된 이후엔 통옥수수를 먹을 일이 딱히 없었다. 가끔 술안주로 콘치즈를 먹으며 옥수수란 음식이 아직도 내 곁에 있다는 것만 인지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결혼 후, 신혼집으로 들어가면서 다시 옥수수에 빠져버렸다. 신혼집 바로 옆에는 작은 시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있던 어느 옛날과자가게에서는 여름만 되면 찐 옥수수를 팔곤 했다. 가격은 5개에 3천원 정도로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훌륭한 가격이지!



처음엔 와 옥수수다~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갔다. 근데 사람들이 그 가게 앞에서 옥수수를 사가는 모습을 보니 괜히 호기심이 동했다. 괜히 먹고 입맛만 버리면 어떡하지? 근데 사람들이 저렇게 많이 사가는 걸 보니 어릴 때 먹던 그 맛이 여전한가 보지? 가격도 저렴하니 그냥 사보자!



그러고 보니 내 돈을 주고 옥수수를 산건 처음이었다. 성인이 되어 처음 먹어보는 통옥수수, 열기가 아직도 후끈한 옥수수를 잡고 돌돌돌 돌려먹었다. 찰옥수수는 여전히 맛있었다. 달콤 짭짤한 맛과 더불어 쫄깃한 식감까지, 내가 어릴 적 먹었던 그 맛 그대로였다. 한 개만 먹고 그만 먹으려 했으나 남아 있는 옥수수를 보니 손이 절로 간다. 결국 5개 중 3개의 옥수수를 먹은 뒤에야 나의 먹방은 끝났다.



근데 내 직장에서는 찰옥수수보단 초당옥수수가 좀 더 핫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면서, 씹으면 아삭아삭 거리는 신박한 옥수수라며 동료가 한 개씩 나눠줬다. 평소 옥수수에서 볼 수 없었던 쨍한 노란색이 내 눈길을 확 사로잡았다. 어릴 때 그림책 속에 있던 옥수수 삽화가 눈 앞에 있는 것 같았다. 한 입 베어 물어보니 무려 '과즙'이 튄다. 그리고 아삭아삭 소리가 난다. 이건 옥수수인가 과일인가, 영 헷갈리는 존재였다.



한 때는 대세에 따라 초당옥수수만 먹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나의 취향만 더 확고해졌다. 나는 역시나 찰옥수수파다. 초당옥수수의 달콤함이 싫은 건 아니지만, 옥수수는 뭔가 달콤 짭짤한 게 더 옥수수스럽다. 그리고 아삭아삭 보단 쫄깃쫄깃한 식감이 좀 더 내 스타일이다.



급식에 간식으로 나온 초당옥수수를 보고 나도 모르게 "난 찰옥수수가 더 좋은데"라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들은 동료가 "저도요!"라고 대답한다. 초당옥수수의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나 홀로 찰옥수수를 외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가 아니라 덜 외로운 기분이었다.



2025년의 여름도 점점 깊어지고 있다. 덕분에 마트 매대에 옥수수가 등장했다. 저번에 갔을 땐 10개에 9천 원이었는데, 오늘은 10개에 7천원이 되었다. 다음 주에 가면 더 싸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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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옆에 시장이 있던 시대는 끝났다. 지금의 난 허허벌판과 같은 신도시 한가운데 살고 있어서 찐 옥수수를 집 옆에서 공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귀찮지만 내가 직접 삶아 먹기로 한다. 찌기, 삶기 두 방법 중 뭐가 더 나을까 고민을 했는데 오늘은 삶기를 선택했다. 이유는... 간을 맞출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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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가 크다 보니 집에서 가장 큰 냄비가 오랜만에 콧바람을 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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끓는 물에 30분, 불 끄고 10분 뜸을 들였다. 그나저나 옥수수수염을 다 떼고 삶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 사실을 뜸 들일 때 알았다. 다행히 먹는 데엔 큰 지장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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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접 삶은 찰옥수수. 시장에서 사 먹던 그 맛 그대로다. 탱글탱글, 쫀득쫀득, 달콤 짭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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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를 배불리 먹고도 이만큼 남았다. 그리고 오늘 시부모님이 찐 옥수수를 또 주셨다, 하하하.



올여름은 옥수수와 함께라 입이 심심할 틈이 없을 예정이다.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 바람 밑에서 뜨끈뜨끈 찰옥수수 먹으며 유튜브나 열심히 봐야겠다. 그 순간이 바로 무릉도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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