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중복은 부디 다정하길

아찔했던 2025 초복의 추억

by 피존밀크




지난 초복에 우리 부부는 동네 삼계탕집으로 갔다. 평소 그리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아니지만 나름 우리 동네 유일한 삼계탕집이다. 고로, 이런 날엔 이 가게가 매우 북적거릴 것이 예상 가능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곳에 가는 걸 싫어하는 매우 싫어한다. 그래서 남편에게 꼭 그곳을 가야겠냐 물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도 가고 싶어 했다. 집에서 대충 삶아 먹어도 맛있는 게 닭인데 이 날씨에 굳이 거기까지 갈 일인가. 그래,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이 기회를 빌려 나도 한번 가보지 뭐. 덕분에 요리 안 하고 좋지 뭐!



우리 집에서 삼계탕집까지의 거리는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근데 우린 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거리를 차를 끌고 갔다. ‘삼보승차’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시원하게 삼계탕집에 도착했으나 차에서 내리자마자 작열감과 더운 습기가 훅 덮쳤다. ‘숨 막히는 더위’라는 말이 참 어울리는 그런 날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삼계탕집 안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평소엔 텅텅 비어있던 웨이팅존엔 사람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서있었고, 가게 안쪽 역시 마찬가지였다. 웨이팅존에 자리잡지 못한 사람들은 가게 밖에서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서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가뭄으로 메말라서 차마 태양을 바라보지 못하는 해바라기를 보는 듯했다. 우리 부부도 그럴 뻔했으나 운 좋게 계산대 앞 매우 좁은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서 있던 덕분에 이렇게 바쁜 날, 가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제대로 관찰할 수 있었다.


이 삼계탕집은 평소 장사가 잘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번호표 발급기가 없었다. 대신 노트에 이름과 인원수를 적은 후, 자리가 나는 대로 이름을 호명하는 시스템이었다. 테이블링이나 카톡 안내나 전화 안내 따위는 없었다. 기다리다가 사장님의 호명을 듣지 못하면 기다림의 시간은 물거품이 되기 때문에 대기 명단에 이름을 적은 사람들은 사장님의 움직임만 미어캣처럼 바라볼 뿐이었다.



나는 다행히 계산대 옆 미어캣이라 기다릴만했으나 뙤약볕 아래 미어캣들은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화가 많이 났다. 그래서 그들은 수시로 가게로 들어와 “몇 분 기다려야 돼요?”라고 외쳤다. 특이한 건 그걸 물어봤던 사람이 일정 텀을 두고 계속해서 물어본다는 점이었다.



웨이팅 노트의 페이지가 어느 정도 차면 사장님은 해당 페이지를 찢어 본인의 손에 든 채로 손님의 이름을 호명했다. 문제는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본인의 차례를 확인하려 노트를 보다가 해당 페이지가 없는 것을 보고 버럭 흥분했다. 평소에는 화낼 일 없이 인자할 분들이지만 극심한 더위, 습기, 배고픔 등등의 변인들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다.



이름이 불려 음식을 먹은 후, 계산을 할 때도 문제였다. 한꺼번에 우르르 들어온 손님들이 비슷한 시점에 우르르 계산하러 오니 캐셔의 혼이 나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매장에서 식사한 후, 삼계탕을 종류별로 포장하는 사람도 꽤 많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계산대 앞에서 추가 주문을 하자 조금씩 입력오류가 나기 시작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자 손님들은 주문대 앞에서 “뭐 하는 거야?” , ”왜 이래? “와 같은 짜증 섞인 혼잣말을 툭툭 던졌다. 거기에 덧붙여 웨이팅 하고 있는 사람들의 아우성과 짜증까지. 덕분에 계산대 앞에 서 있던 우리 부부까지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30분 정도 기다리자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자리에

앉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계탕이 내 앞에 놓였다. 37도에 육박하는 이 더위에 따끈하다 못해 부글거리는 삼계탕이 웬 말인가. 에어컨 아래 앉아있다지만 가게 안에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딱히 시원하지도 않다. 그런 상황에서 뜨거운 국물을 한 수저 먹으니 용암이 식도를 따라 위장 바닥에 떨어지는 기분이다. 비록 뜨겁지만 닭은 야들야들하고 들깨를 넣은 국물은 고소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닭뼈를 해체하고 찹쌀죽을 먹고 하다 보니 어느덧 뚝배기 바닥이 보인다.



삼계탕 한 뚝배기를 먹고 나니 이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점심시간이 살짝 지난지라 가게는 이제야 빈 공간이 보인다. 그리고 점원들의 표정이 보인다. 다들 얼이 빠져있다. 복날 음식은 내가 아니라 저 점원들이 먹어야 할 것 같다.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며 나도 모르게 “고생이 많으십니다. ”라고 캐셔에게 말했다. 내 말을 들은 점원은 순간 눈가가 붉게 변했다. 그리고 서툰 한국어로 오늘 참 힘들다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그리고 복날만 이렇게 바쁘니 중복 때는 차라리 전 날 와서 편안하게 식사하라는 말을 덧붙인다.



진 빠지는 더위 한가운데 살다 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왜 복날을 챙기셨는지 절로 알게 된다. 이 더위에 지지 않으려면 일부러라도 귀한 음식, 정성이 담긴 음식을 챙겨 먹어야 한다. 하지만 굳이 ‘복날’에만 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충 그 쯤에 챙긴다면 복날 당일은 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 부부는 중복 전 날 해당 삼계탕집을 다시 찾아가기로 했다. 사람이 없진 않겠지만 적어도 복날 당일보단 여유롭게 먹겠지. 중복 그리고 말복은 우리 모두 다정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