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교사 김동욱을 추모하며
선생님, 남부 쪽에 있는 남자 선생님 돌아가신 거 아세요?
아뇨,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안 좋게 돌아가신 거예요? 그분 성함이 어떻게 되나요?
김동욱 선생님이래요.
내가 소속된 교육청은 이곳에서 만든 통합 메신저가 있다. 해당 메신저에 사람 이름을 검색하면 해당 교직원의 소속, 근무상황 등을 알 수 있다. 이 선생님의 근무지가 궁금해서 메신저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검색되지 않았다. 내가 소식을 들은 날은 월요일이었고, 그가 세상을 떠난 것은 주말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교육청은 그의 흔적을 교육청 인트라넷에서 삭제해 버렸다. 마치 이런 사람은 우리 교육청에 없었던 것처럼.
난 그 선생님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마치 꼭 내가 알던 사람이 세상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어쩌면 그는 나의 옆반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고, 내가 다리 건너 아는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죽음의 주인공이 그가 아닌 내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꼭 '학교 안'에서 죽어야겠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기왕이면 순직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죽음을 결심했기 때문에 단순 자살로 종결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학교 운동장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 느티나무 옆에는 주차장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삶을 마감해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이 죽음에 대한 탐닉을 멈추게 한 것은 정신건강의학과 약물과 상담, 그리고 직장동료들이었다. 덕분에 나는 천국이 아닌 영국으로 떠나 나의 삶의 길이를 연장시킬 수 있었다. 나는 동반휴직이라는 탈출구가 있었기 때문에 그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도 이런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2025년의 삶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김동욱 선생님은 어땠을까, 그가 있던 학교는 원래 특수학급이 두 학급이었다고 한다. 학생수가 줄어들어 한 학급으로 줄어들었는데, 그렇게 되자마자 학생 두 명이 더 전학을 왔다. 순식간에 과밀학급이 되어버린 것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학급 증설을 요청하자 묵살되었다. 한시적 기간제 교사 배치를 요구했으나 묵살되었다. 자원봉사자 배치를 요구하자 묵살되었다. 수업시수는 29시수에 달했고, 아침에 등교거부를 보이는 학생의 집에 찾아가 아이를 학교로 데리고 오기도 했다고 한다. 문제행동이 심해 하루 종일 특수학급에서 수업을 듣는 전일제 학생들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대한 책임은 그의 몫이었다.
그분이 떠난 직후, 지역교육청에서는 교육청 내 과밀학급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근무하던 학급이 과밀 학급에 포함되어 이에 해당된다고 보고를 했다. 그랬더니 한시적 기간제 교사를 배치받을 의사가 있느냐 물었다. 그때가 11월 말이었는데 무슨 교사 추가배치인가, 그리고 이렇게 쉽게 추가 인력이 배치되는 것이었다면 그 선생님 교실에는 왜 배치해주지 않았을까. 이렇게 해줄 수 있는 거였는데 왜 사람이 희생되어야지만 뭔가가 변화되는 것인가, 통탄스러웠다.
2025학년도 1학기 시작 전, 자원봉사자를 요청하는 대로 다 배치해 준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우리 학교는 1학기 시작과 동시에 6명의 자원봉사자와 함께했다. 심지어 학기 중 2명을 추가 배치했다. 작년에는 자원봉사자 2명만으로 버텼다. 나머지 영역은 모두 특수교사의 몫이었다.
학급 수도 한 학급 증설되었다. 덕분에 또 과밀이었을 뻔했던 우리 반의 학생 수는 법정 최대 인원 이하로 줄어들었다. 학생이 줄어드니 한 시간당 내려오는 학생 수가 적어 이제야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다. 작년엔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웠다. 교육도 보육도 아닌 그냥 아이들을 별 사고 없이 데리고 있는데 의의를 뒀었던, 참 부끄러운 교실이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한강 작가는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 질문을 들은 당시에는 대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젠 대답할 수 있다. 김동욱 선생님이 살아있는 특수교사들을 구하는 모습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은 영원한 비극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교육청을 움직였다. 사람이 죽어야만 변화가 되는 곳이라는 것에 여전히 실망스럽지만, 이제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대해 조금은 귀 기울일 줄 아는 곳으로 변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물론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시의회 교육위원이라는 사람이 "순직 처리는 과하다", "공산당도 아니고"와 같은 망발을 내뱉을 수 있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토요일, 종각역에서 김동욱 선생님의 1주기 행사가 있었다. 가을바람이 차지만 그가 지금 있는 곳은 부디 따뜻하기를, 그리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