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책을 좋아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책을 잡고 태어난 건 행운이었다. 읽는 것이든 쓰는 것이든 한 번도 거부감을 느낀 적이 없는 걸 생각해보면 말이다.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가장 만족스러운 운명이었다. 평생의 친구를 가지고도 특기까지 얻은 셈이니까.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활자를 좋아하는 것도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학교라는 작은 사회에서는 특히!
‘학교에서 책을 좋아한다’라는 건, 그 아이가 학교에서 책을 많이 읽는단 이야기다. 얼핏 들으면 아무 문제없어 보인다. 얌전하고, 차분하고, 똑똑하게 들린다. 누가 알까? 이 소리는 친구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과도 통한다. 조금 불편할 수도 있지만, 학교는 공부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또래를 만나기 위해 자리하는 공간이다. 배우는 것은 가정교육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개인 과외도 있고, 인터넷 강의라는 방법도 있다. 그러니 학습만을 바라본다면 굳이 학교에 갈 이유가 없다. 자유롭지 못한 공간과 낡은 시설, 부딪치는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는데 왜 학교에 가겠는가. 세월마다 다채로운 문제가 나타남에도 학교가 계속해서 존재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가장 오래되어 믿을 수 있는 시설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학교가 다른 역할도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저 교육에서 끝나지 않고, 또래들끼리 만나고 사회를 이루는 걸 겪게 하는 것. 어쩌면 그게 교육보다도 중요한 학교의 존재 가치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곳에서 책을 좋아한다는 평을 듣는 건 마냥 긍정적이기 힘들다. 또래와 만나고 다투고 이야기하면서 배워야 할 시간을 제대로 지내지 못하고 있단 소리니까.
책으로도 물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게다가 책은 또래와 다르게 검증된 지식이요 수준이 높은 상식이라서 노력에 비해 그 능력이 빨리 올라간다. 읽는 걸 좋아하면 자연히 학교 공부에도 마냥 거부감이 안 생기기도 하는 건 덤이다. 하지만 책은 너무나 위대하다. 아이는 자신의 주관을 생각하기 전에 책을 따르게 된다. 자신의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답이 나와있는데 누가 더 성찰을 해보겠는가. 또래를 통해 교류를 해보려 해도 책이란 관심사가 겹치기는 힘들다. 자연히 아이는 주관은 없고, 책을 많이 읽어 아는 것이 있어도 써먹지 못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이건 내가 내 인생을 되돌아보고 내놓은 이야기다. 아무도 책만 읽는 걸 습관화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지 않았다. 선생님이든 주변 사람들이든 그저 책은 많이 읽으면 좋다고만 했다. 나는 좋은 점은 이해했지만, 나쁜 점도 있단 의구심을 늘 품고 있었다. 만약 책을 많이 읽는 게 좋기만 하다면 나는 왜 힘들었나. 나 혼자만의 문제였을까? 뭐가 원인이었을까? 오랜 시간 가지고 있던 해묵은 질문의 답은 시간이 많이 흐르고서야 나왔다. 내가 내 어린 시절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기가 되어서야…. 차근차근 되새겨보니 해답은 놀랄 정도로 빨랐다.
나는 어린 시절 학습만화와 명작 소설을 특히 좋아했다. 그 책들이 장르는 달랐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다름 아닌 어른스러운 아이가 나왔다는 점. 그런 아이는 똑똑했고, 차분했고, 생각이 깊었다. 높아봐야 초등학생 나잇대에 보이긴 힘든 아이들이었다. 지금에서야 그 모습은 어른들의 이상향에 가깝다는 걸 알았다. 어른들과 대화도 통하고 말을 잘 듣는 그런 아이. 그 나잇대에 맞게 장난기도 많고 활기찬 아이는 가볍게 여겨질 뿐,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본 아이는 어떻게 임했겠는가. 어쩌면 그게 만든 어른들의 진짜 목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른스러운 아이’를 동경하며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했으니까. 내 속마음을 다 얘기하지 않고, 혼자 삭히며 똑똑해 보이려 애썼다. 뭐든 잘하고 싶어 서툰 건 해보지도 않았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게 너무 부러웠고 하고 싶었지만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것이건만, 내게 곱고 예쁜 흔적만을 남긴 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