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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Oct 13. 2021

책 때문에 연애를 못한다니까요?

책이 연애에 미친 영향에 대하여

오래간만에 소설을 읽었다. 아, 나는 이미 연애의 맛을 아는 거 아닐까? 거의 사랑 같은데? 그 정도가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 나는 평생 연애를 못할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런닝맨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가수 김종국이 어려운 선택을 한 적이 있다. 밸런스 게임이라는, 선택하기 어려운 두 가지 중에서 고르는 게임에서. 하나는 지금 같은 근육질 몸에 노총각인 것, 나머지 하나는 운동 못하는 몸에 결혼하는 것. 런닝맨은 기본적으로 추격전과 스파이가 묘미라 고심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김종국이 그토록 고심하는 건 처음 봐서 새로웠다. 좀 우습기도 했다. 사랑보다 운동인가 싶어서. 얼마나 운동을 좋아하면 저런 모습이 나올까, 하고 좀 감탄도 나왔다. 그런데 나도 그런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만약 책을 읽은 지금에 평생 연애 못하는 것과, 책을 안 읽고 결혼하는 걸 고르라면, 어휴! 답은 분명하다. 솔직히 고민할 것도 없다. 김종국보다 내가 더 열성일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으면서 더 확실해졌다.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희열이 너무 아름다웠으니까. 누가 알까. 나는 읽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빨리빨리 문장을 보고, 내가 모르는 이후를 찾고 싶었다. 마음 같아선 밥도 잠도 외면하고 책하고만 있고 싶었는데…. 하아, 그러기도 전에 책은 완결을 향해 가고 있었다. 속독하는 내 특기가 원망스러웠다. 책을 다 읽고 나선 작가님에 대한 찬양과, 행복과, 인물들의 매력에 대한 이야기로 입이 멈추질 않았다. 들어주는 엄마의 표정이 질려가는 것 같았지만 내 자의로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막 시동을 건 레이싱카나 갓 고백에 성공한 젊은이처럼 감정이 우두두두 날뛰었단 말이다! 사랑에 빠진 청년은 닫힌 창문 아래에서도 노래한다 했던가? 그에 비하면 걷잡을 수 없는 내 흥분은 약과다.      


다만 진심으로 걱정스러워진 것이 있다. 나는 불안정한 걸 싫어한다. 그래서 이성 친구와 만났을 때, 그게 단둘이 아님에도 부모님과의 이야기 속에서 불편함이 느껴지는 게 제일 싫다. 딸 가진 부모님의 자연스러운 걱정이지만, 어쨌든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니까. 그걸 왜 부모님께 말하느냐, 숨기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다. 이건 우리 집에선 통하지 않는 이야기다. 나는 원체 숨기는 것도, 이벤트도, 거짓말도 못한다. 그쪽에 대해선 재주가 없다. 친구들끼리 마피아 게임을 할 때도 내가 끼면 재미없어질 정도다. 성적표 한번 숨긴 적 없고 상이든 장학금이든 타는 대로 말했다. 그러니 연애라고 숨길 방도가 있을 리 있나! 뭐, 연애가 부모 자식 간의 편한 주제인 게 더 드물긴 하다. 그냥 하는 순간과 문제를 털어놓기만 하면 되는 거기도 하고. 일일이 얘기할 문제도 아니기도 하고. 문제는… 서로 친구임에도 불편한 분위기를 못 참는 내가 그 순간부터 거리를 벌린다는 점이다. 아예 접점을 줄이고 이야기도 줄고. 그러면 내가 신경 쓸 것들이 사라지니까! 가장 빠른 해결 방법이자, 근본적인 걸 없애는 일이다. 물론 그 대가는 어쩌면 조금이라도 있었을 연애의 박멸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연애를 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는 건 연애를 할 필요성을 여전히 못 느낀다는 점이다.     


결혼하기 싫다거나 연애하기 싫다는 이야기와는 좀 결이 다르다. 굳이 따지자면 왜 연애를 해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행복하다거나, 안심이 된다거나, 의지가 된다거나 한다지만 그건 좋을 때의 이야기다. 게다가 나는 앞서 말한 것처럼 책을 읽을 때 진심으로 빠져든다. 사랑에 빠진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그걸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문제다! 책이 너무 완벽하다. 어릴 땐 그 점 때문에 소통하는 데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이젠 연애의 자리를 차지하게 생겼다. 이래도 되나? 책이랑 사람이 같지 않다는 건 안다. 그런데 책은 내게 너무 편하고 도움도 되고, 재밌는 데다 여전히 매혹적이다. 사람이랑 다르게.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는 것과 연애는 별개이니 내가 사람을 안 만나는 일은 없겠지만…. 독서가 내 연애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인생에서 책이 빠질 거라곤 상상한 적도 없어서 그런지 그 영향을 짐작 못한 게 이렇게 오는 걸까? 더 큰 문제는 책이 연애를 대신해도 별 상관없단 지금의 심정 같기도 하다.      


올해 스물셋, 청춘이 책 때문에 연애를 할 마음이 안 생긴다는 걸 누가 잘 믿어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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