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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윤 Sep 21. 2021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에 대하여

지금 자신의 재능은, 전생에 한 일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말에 따르면 나는 분명 선비였을 것이다. 선비가 아닐지라도 분명 글과 함께 살았으리라. 그렇지 않고서야, 내 글에 대한 사랑은 설명되지 않는다!     


글에 대한 사랑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직업이 작가인가? 아니면 어려서부터 온갖 백일장을 섭렵했나?’    

 

이런 추측을 내놓을 수도 있다. 아쉽게도, 전부 틀렸다. 다만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다독상을 놓친 적이 없다. 이것만으로 내 글에 대한 사랑을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가장 선명한 증명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책을 좋아했다. 왜 좋아했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를 말하기 난감하다.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다면 존경이고, 없다면 사랑이라는데, 책에 대한 지독한 사랑이 따로 없다. 기억하는 순간부터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언제는 만화책이었고, 언제는 동화였고, 언제는 소설이었다. 그 종류는 다양해지고, 두께는 점점 두꺼워졌지만 애정은 여전했다. 학교에 가도 달라진 건 없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는 건 내게 도서관으로 가는 스타트 총소리였을 뿐이니까. 하루하루 할당치가 있는 것처럼 읽어나갔다. ‘책이 고팠다.’ 그 표현이 가장 맞아떨어지리라. 딱히 책이 모자란 환경은 아니었는데, 책이 가득한 곳에 가면 너무 행복했다. 보기만 해도 몸 안 가득 흡족함이 차올라서 웃음이 비싯비싯 새어 나왔다. 그 마음을 나는 책에 대한 사랑, 글에 대한 재능이라고 여기기 시작했다. 글에 대한 사랑이 재능이 아니라고 하진 말라. 무엇이든 간에 좋아하고 사랑하는 건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함으로써 그 사람의 인생은 많이 달라지니까. 성실한 게 재능이라고 하는 것과 통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에도 재능이 맞냐고 의심한다면, 다른 이유를 내놓아본다. 누군가는 책을 보면 잠이 온다고 한다. 나는 이런 이야길 들으면 정말 당혹스럽다. 딱히 모범생은 아니었으니 수업에 존다거나 지각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이 재미없다고 하는 건 내가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경험이라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라디오보다도 나는 책을 사랑한다. 그러다 보니 느낀 게, 책 못지않게 글자도 좋아한단 사실이었다. 아니, 책을 좋아하면 글자도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왜 그걸 늦게 알았지? 그런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고 그림을 좋아한다고 보긴 어렵다! 영화를 좋아한다고 무조건 배우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흐름에서 보면 내 깨달음은 느린 게 아니다. 물론 깨달은 속도와는 별개로, 글자 자체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 놀라긴 했다. 아, 어쩌면 그림보다도 글자를 사랑하는구나 싶어서. 미대를 진학한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이 겹치는 순간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 내 모습이, 내 인생이 달리 보였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나는 글자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 책과 활자와 글자와 문자들에게. 그것들은 정말 내게 유독 깊고 독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20년 넘는 시간 동안 질리지 않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 점점 관련된 특기가 나타나고, 흥미는 깊어진다. 20년 동안 같은 분야를 좋아했으면 좀 눈을 돌릴 만도 한데 그럴 기미는 잠잠하다. 평생 취미가 뭔지는 다 살아봐야 아는 것 아니었나. 이미 내 미래의 취미는 선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기대되는 걸 보면 내 책에 대한 사랑이 메마르기엔 멀었나 보다. 내 인생을 관통하는 사랑의 대상을 아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게 누군가에겐 가수일 수도, 노래일 수도, 어떤 한 작품일 수도 있다. 그게 나에겐 책이고, 글자일 뿐. 이런 나를 알게 되었으니 그 사랑을 한껏 누리고 즐기는 게 내게 주어진 의무일 것이다. 

활자 중독자라고 불릴 지라도.      


아, 대신 왜 책을 좋아하느냐고 묻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태어나보니 책이 있었고 읽었더니 재밌었을 뿐이고, 그 재미가 식지 않을 뿐이다!

나는 그냥,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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