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는 온전히 자신과의 싸움 아닌 싸움이다.
어느 누구는 육아가 할만하다고 하고, 또 어느 누구는 육아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힘들다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육아는 엄마이기에 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현실 육아를 하다 보니 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내 인생에서 감히 하지 못했을 일들이 몇 개 있다.
엄마이기 이전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람이었던 나였다.
내가 과연 아이를 낳으면 잘할 수 있을까?
가장 첫 번째는 바로 아침잠과의 싸움이다.
나는 아침잠이 많다. 그리고 전형적인 올빼미형 인간이다.
새벽 12시부터 4시까지 활동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새벽은 오직 나만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가장 단잠을 자는 시간은 아침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이다.
물론 회사를 다닐 때는 억지로 9시 출근을 해야만 해서 힘들었지만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새벽시간을 포기할 수 없어서 주말에는 새벽 3~4시까지 놀고, 평일에는 새벽 1~2시가 되어서야 잠을 잤다.
그러니 맨날 지각할 수밖에. 그래도 회사는 13년간 열심히 다녔다.
백수가 되고, 결혼을 하고 전업주부가 되면서 나는 자유시간을 원 없이 즐겼다.
낮과 밤이 바뀐 삶이란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자유롭고, 너무나 짜릿해서 진정 내가 원하는 삶이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러던 내가 아이를 낳고 나니 나만의 자유시간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수유를 위해 나의 새벽을 바쳐야만 했다.
나의 아가는 아주 순한 편이라 밤에 우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울지도 않았다.
나는 두 시간마다, 세 시간마다 알람을 맞춰놓고 그 시간에 일어나 수유를 하고 아가를 다시 눕혀놓으면 끝이다.
새벽에는 거의 깨어 있었기에 새벽 두세 시의 수유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문제는 새벽수유가 힘든 게 아니고 아침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아침 8시가 되면 일어나는 아가에게 맞춰 8시가 되면 나 역시도 강제 기상이다.
당연히 좀비처럼 비몽사몽 몸을 움직였다.
어떤 날은 출근하는 남편에게 징징거리며 못 일어나겠다며 아기 좀 데리고 가면 안 되냐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또 어느 날은 진심으로 자고 싶어서 딱 두 시간만 아기와 떨어져서 잤으면 좋겠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기도 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잠이 쏟아지고 잠이 깨지 않아도 아가를 위해 일어나야만 한다.
가끔은 도저히 눈이 안 떨어져서 10분만 더 잠을 청하다 보면 잠에서 깬 아가가 혼자 놀기도 한다.
잠과의 싸움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전히 나는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나도 힘들고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다.
그래도 아가를 위해서라면 나는 엄마니까 일어나야만 한다.
두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포기라는 말은 쓰지 않겠다. 언젠가는 다시 꼭 할 것이므로.
나는 음주를 좋아하는 애주가이다.
아이를 낳기 전, 금요일이면 친구들과 어김없이 맛집에 가서 새벽까지 술자리를 즐기고 주말 내도록 숙취에 절어 있기 일쑤였다.
임신을 꺼려했던 이유 중 하나가 과연 내가 술을 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신기하게도 임신사실을 안 그 순간부터 술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러니 5개월 동안 모유수유가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나는 여행과 영화를 좋아한다.
최신 개봉작은 영화관에서 놓치지 않고 보던 나였지만 영화관은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장소가 되어버렸고
일 년에 한두 번 해외여행을 가고, 주말에도 가까운 지역으로 1박 2일 여행을 자주 다니던 나였지만 임신 후로는 여행을 포기해야만 했다.
하지만 여행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당분간은 진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나트랑으로 태교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30대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고 그 보상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여행을 원 없이 다니고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기에 내가 좋아하던 것들을 하지 못해도 지금 이렇게 온전히 아가에게 내 모든 걸 다 내어줄 수 있는 것 같다.
만약에 일찍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처럼 아이만 바라보고 나를 희생하면서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나의 모든 시간을 다 집중하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며 오히려 남모르게 아이 낳은 걸 후회를 했을지도.
세 번째는 세상 모든 아기가 다 예뻐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아이를 좋아하지도 그렇다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식당에서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소리가 듣기 거슬렸다.
그렇다. 아이들이 점점 싫게만 느껴졌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른 초반, 하나 둘 친구들이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앞둔 친구들은 하나같이 아기를 빨리 낳고 싶어 했는데 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이가 있으면 지금의 자유는 다 포기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나로서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내가 아가를 낳고 싶어 하다니. 그러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나의 임신 소식을 전해 들은 중학교 동창생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평소 잘하지 않던 전화까지 해서 결혼에 이어 임신까지 놀라움의 연속이라며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을 쏟아냈다.
내가 갑자기 아기를 낳고 싶어 한 이유는 바로 조카가 생기고 나서부터다.
내 눈에는 그 작디작은 조카가 그렇게 이뻐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태어나자마자 본 순간부터 100일, 200일, 돌 하루하루 점점 커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너무나 신기하고 또 커가는 모습 하나하나가 아깝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득 내가 낳은 아가라면 어떨까, 과연 이렇게 이뻐 보일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나는 어느새 결혼과 아가를 연결시켜 생각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 처음으로 아가가 들어오는 순간이었다.
내가 아가를 낳기 마음먹은 다음부터 신기하리만큼 눈에 보이는 모든 아이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웃는 아기는 물론이거니와 우는 아기, 떼쓰는 아기, 무표정의 아기, 심지어 초등학생까지도 다 그렇게 예뻐 보였다.
그리고 모든 생활의 중심에 아가가 있었다.
내 아가도 이렇게 걸으면 귀엽겠지.
내 아가에게 이런 옷을 입히면 사랑스럽겠지.
아가가 엄마라고 처음 말하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하루에 열두 번도 더 길을 가다 마주친 모든 아이들이 마치 나의 아가인 것처럼 대입시켜 생각하곤 했다.
이러니 아이에 대한 간절함이 더욱 커져갈 수밖에.
내가 만약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쯤 어떻게 살까.
늘 그렇듯 저녁에는 맛있는 안주와 술상을 차려 맥주 한 캔으로 하루를 보내며, 여느 때처럼 모두가 잠든 시간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주말은 한 달 전부터 세워놓은 영화나 여행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내겠지.
그리고 길 가다 만난 아이들은 내게 그저 그런, 아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꼭 엄마가 되지 않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인데 이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인 것처럼 말하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육아 틈틈이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는 분명 엄마이다.
아이가 없었을 때는 상상만 해도 힘들었던 일들을 지금은 고민 따위 할 겨를도 없이 나도 모르게 하고 있다.
아니, 엄마이기에 이젠 내게 가능한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