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피고마르다 Aug 10. 2024

엄마는 가끔 발차기 태동이 그리워

유도분만 하루 전날, 눈에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하루종일 눈물이 흘렀다.

정확한 이유는 수가 없었으나 호르몬에 농락당한 것만은 확실하다.

울고 있는 나 자신에게 도대체 왜 우느냐며 되묻곤 했는데

울면서도 머릿속에 스치는 단 하나는 내 뱃속의 작디작은 아가의 발차기와 움직임을 

이젠 더 이상 몸에서 느낄 없을 거란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즈음 출산예정일이 다가오자 태동은 줄어들 줄 모르고 오히려 더 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눈이 퉁퉁 붓도록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다음날이 밝았다.

새벽부터 병원에 가기 위해 샤워도 하고 짐도 챙기느라 분주했다.

그러다가 또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미 밤새 울다 지쳐 잠들었고,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허사였다.

이젠 정말 내 배를 마구 차던 아가의 발차기와 이 꿈틀거림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쏟아진 것이다.

나는 짐정리를 하다 말고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

아낌없이 모든 눈물을 다 쏟아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 나를 토닥이며 위로하는 남편. 

우린 이제 그토록 기다리던 아가를 직접 볼 수 있다고 나를 다독여줬지만 

열 달 동안 나와 한 몸 같았던 아가를 더 이상 내 몸에서 느낄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무서움과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렇게 병원으로 향했고 여전히 아가는 뱃속에서 힘차게 발차기를 하며 세상에 나올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


출산예정일이 지났지만 아가는 나올 기미조차 없어서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하고

유도분만 당일까지도 자연분만으로 아가를 낳을 거란 생각에 두근두근하기만 했다.  

입원 후 마지막 초음파를 보러 갔다.

수간호사 선생님이 퉁퉁 부은 내 눈을 보고 울었냐며 물어오셨다.

나는 이제 더 이상 태동을 느낄 수 없게 될 거란 생각에 너무 슬퍼서 어제부터 계속 눈물이 났다고 말했고,

그런 나를 이해라도 하듯 그럴 수 있다며, 하지만 더 예쁜 아가를 직접 안아보면 태동은 생각도 안 날 거라고 괜찮다고 그만 울어도 된다고 위로했다.

유도분만을 하는 내내 촉진제가 들어가고 진통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에도 내 손은 배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가와 조금이라도 더 교감하고 싶었고 태동을 한 번이라도 더 느끼고 싶어서.

엄마에게 태동을 더 느끼게 하고 싶었던 아가의 마음이었을까 유도분만은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나의 아가를 안아볼 수 있었다.

아가를 본 순간 눈물보다는 신기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아가의 울음소리에 나도 모르게 

"엄마야. 울지 마."

라는 말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작은 손과 발을 보면서 비로소 내 뱃속에 있던 아가가 이젠 내 뱃속에 없고

이렇게 손 내밀면 언제든 만질 수 있는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눈물의 태동은 저 멀리 사라져만 갔다.


신생아 꼬물이 시절, 잊었던 태동이 다시금 생각났다.

분명 속싸개를 해 놓았는데 십 분도 채 되지 않아 아랫부분이 헝클어져 있다.

그리고 기저귀를 갈 때마다 동동거리며 발차기를 끊임없이 해대는 아가.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내 태동이 떠올랐다.

뱃속에서 아침이든 저녁이든 새벽이든 가릴 것 없이 언제나 뻥뻥 발차기를 해대던 아가.

지금은 세상에 나와서도 열심히 발차기를 해대고 있다.

덕분에 잊고 있던 태동이 다시 생각났던 것.

그땐 분명 발차기 태동이 너무나도 그리워질 것만 같았는데

출산과 동시에 그리움은 눈 녹듯 사라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토록 그립던 발차기인데 지금은 그 발차기에 걷어차이기 일쑤다.

태동이 예사롭지 않다 생각했는데 태어나서도 여전히 발을 힘차게 뻗어내는 아가.

왠지 모를 반가움과 불과 한 달 전 태동이 불쑥 그리워졌다.

그리고는 내 배를 쓰다듬으며 이쯤에서 발이 쑥 하고 올라왔었지 라며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

아가가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동동거리고 움직일 때면

아가의 발을 잡고 자전거를 타듯 굴려주며 아가에게 속삭였다.

"엄마 뱃속에서도 이렇게 뻥뻥 차더니 지금은 아예 대놓고 발을 가만 두질 않는구나.

엄마는 너의 태동이 때론 아프고, 때론 잠 못 들게 힘들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단다.

발차기를 보니 뱃속에서 우리 아가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무척이나 설렜던 그날이 떠오르네.

그리고 태동이 없어지면 너무나 서운할 것 같아 눈물짓던 엄마도 생각나네.

우리 아가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너무너무 고마워.

앞으로도 지금처럼 이렇게 건강하게 발차기하면서 무럭무럭 자라자!"

이전 03화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