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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고마르다 Aug 02. 2024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오늘은 엄마가 오지 않았다.

그럭저럭 하루를 보냈지만 사실은 그럭저럭이 아닌 고된 하루였다.

나에게도 오늘따라 엄마가 간절히 필요한 날이었다.

나의 아가는 오늘따라 먹지도 않고 혼자 놀기 싫다고 칭얼대고 잠투정이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오늘 나는 첫 끼니는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2시쯤에야 겨우 한 술 떴고,

세수는 고양이세수, 밥 먹고 이 닦는 건 아기의 울음으로 인해 달려가느라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빨래를 돌리려고 했는데 한시 간이상 잠투정 하는 아기를 보느라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러다 아기가 잠들어서 옆에서 나도 뻗어버렸다.

두 시간이 지나고 일어나니 밤이 되었고 그렇게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렸다.


아기를 낳고 나면 친정이 가까울수록 좋다는데 그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가만히 누워서 먹고 자고 노는 아기를 돌보는 게 뭐 그리 힘들까 싶었는데

내가 직접 겪고 보니 그래서 더 힘든 것이다.

아기는 먹고 자고 노는 것을 혼자 할 수 없으니까.

우선 '먹고'는 모유수유 중이므로 오로지 나의 몫이다.

한쪽 먹이고 트림 시키고 또 한쪽 먹이고 하다 보면 한 시간은 우습게 지나간다.

아기가 쭉쭉 먹느냐 그것도 아니다.

먹기 싫어서 머리를 요리조리 돌리기도 하고 젖꼭지를 물었다가 뱉었다가 장난을 치기도 한다.

어떤 때는 아예 먹지를 않아 한 모금이라도 먹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힘을 빼기 일쑤다.

먹고 나면 다음은 놀기.

'놀고'는 그야말로 아기 혼자 놀 수도 있고 엄마가 같이 놀아줄 수도 있다.

우리 아가는 혼자서도 잘 놀아서 눕혀놓고 재빨리 설거지를 하거나 씻을 틈이 가끔 생기기도 했다.

아가가 노는 사이에 해야 할 모든 일들을 서둘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10분도 채 놀지 않고 엄마를 찾거나 싫증을 내는 아가.

그럼 또 엄마는 아가 옆에 있어야 하니까 사실상 자유와 휴식 따위는 없는 셈이다.

'자고'가 최고의 난코스다.

물론 잘 자는 아기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잠을 재우기 위해 엄마는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른다.

안겨서 자다가 눕히기만 하면 그야말로 등센서가 발동되어 바로 울음을 터뜨리는 아가 때문에

안았다 눕혔다만 반복하다 보면 아가의 잠이 금세 달아나버린다.

그 잠시 안겨자는 사이에 아기의 에너지는 충전 완료다.

그럼 '자고'는 그로써 끝.

재우기 위해 한 시간 고생했지만 자는 건 고작 20분 토끼잠.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그러고 나면 다시 '먹고'가 찾아온다. 오 마이 갓.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시간은 무심하게도 잘도 흘러간다.


백일 이전의 아기는 그나마 누워만 있기 때문에 손이 덜 간다면

백일 이후에는 아가가 성장함으로써 뒤집기도 하고 엎드려서 움직이기도 하니까

힘들면 또다시 눕혀줘야 해서 손이 무척 많이 간다.

좋고 싫음을 알아서 자기표현을 시작하는 시기라서 짜증도 많고 울음도 많은 시기이다.

엄마는 하루종일 이 모든 걸 다 받아줘야 하니 몸도 몸이지만 멘탈이 털털털.

그러면 엄마는 언제 밥을 먹고 언제 잠을 자고 언제 씻고 언제 자유시간을 가질까.

사실상 이 모든 걸 다 하는 날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느 날은 씻는 걸 포기할 때도 있다. 나는 3일 머리를 못 감아서 죽을 뻔했다.

또 어느 날은 밥때를 놓쳐서 꼬르륵거리다가 배에 아예 감각이 없어진 적도 있다.

모유수유는 잘 먹어야 한다는데 아기가 먹을 시간을 안 주는데 어찌 잘 먹나.

간편하게 라면을 먹으면 안 되나 싶겠지만 라면은 아주 고난이도의 음식이다.

라면 끓여놓고 아기가 울기라도 하면 그 라면은 불어 터져 버려야 할지도.

이렇게 엄마의 하루는 아기를 먹이느라 엄마 밥은 정작 먹지 못하고

아기와 놀아주느라 엄마의 자유시간, 휴식시간은 꿈도 못 꾼다.

그나마 아기가 낮잠을 한 시간 남짓 잔다면 이때다 싶어 아기 옆에서 쪽잠을 자기도 한다.

아기가 한 시간 내내 곤히 자는 것이 아니라 자다가 울거나, 움직이고 깨려고 하면

또 토닥여주고 해야 하기 때문에 한 시간 숙면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결론은 친정이 가까울수록 엄마는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휴식을 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꼭 친정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옆에서 단 한 시간이라도 아기를 봐준다면

엄마는 그나마 마음 편히 먹고 자고 쉴 수 있다.

그래서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가 필요한 것이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누군가의 손을 빌려서라도 잠시라도 숨통을 트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이 정도도 생각 안 하고 아기를 키울 생각이었냐고 한소리 하고 싶겠지만

매일 이런 패턴의 생활이라면 과연 맨 정신으로 아기를 키울 엄마는 몇이나 될까.

나는 아마 혼자였다면 아기보다 내가 더 많이 울었을 것 같다.

친정이 가까워 엄마가 거의 매일 오다시피 해서 겨우 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새끼를 돌보느라 겨를이 없고

나의 엄마는 엄마새끼인 나를 챙기기 위해 매일 우리 집에 왔다.

나의 엄마는 점심때쯤 와서 점심을 챙겨준다.

혼자서는 대충 먹거나 그마저도 못 먹는다는 걸 알기에 뭐든 챙겨준다.

그리고 같이 밥을 먹는데 늘 나보다 빨리 먹는다.

그리고는 혼자 놀면서 칭얼대는 아가를 봐주며 나더러 천천히 먹으라고 한다.

어떤 날은 아기가 잠에서 깨자마자 데리고 나가 아기와 놀아주며 나더러 한숨 자라고 한다.

또 어떤 날은 내가 아기를 재우는 틈에 아기 손수건이며 옷을 개어주기도 하고

설거지며 반찬이며 후다닥 해치워주기도 한다.

아기 아빠가 늦는 날이면 아빠를 대신해 목욕을 같이 시켜주고

나를 대신해 자기 전까지 있는 힘껏 놀아주고 아기가 잘 때쯤 쿨하게 집으로 향하는 나의 엄마다.

아마 나의 엄마가 이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내가 어찌 모유수유를 4개월째 할 수 있었을까 싶다.

아마 젖이 말라도 금세 말라버렸을 것이다. 잘 못 먹으니까.


아기에게 엄마가 필요하듯 지금 나도 나의 엄마가 필요하다.

나의 엄마에게 나는 여전히 손 많이 가는 딸이며 챙겨줘야만 하는 딸일 것이다.

그런 딸이 바로 옆에 살며 아기를 낳고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매일 징징거리고 있으니 오죽이나 신경이 쓰일까.

서른 중반, 한날 저녁에 엄마랑 둘이 맥주를 마시다가 엄마가 대뜸 결혼을 하지 않을 거면 아이라도 낳으라고 했다.

나이 들면 아기 낳기 힘드니까.

그리고는 아기는 엄마가 키워준다고 했는데.

그때는 결혼도 아기도 생각이 없을 때라 그저 싫다고만 했는데.

그때 낳았어야 했나 싶기도 하다.

마흔이 되어서야 아기를 낳으니 나의 체력도 힘들고

엄마도 나이가 있으니 아기를 봐주는데 힘에 부치는 것 같으니 말이다.


그래도 나는 지금 아기를 낳은 게 오히려 더 다행인 것 같다.

왜냐면 내가 낳고 싶어 낳았으니까.

그나마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해야 하나.

물론 힘들고 지치고 어렵고 답답하고 때로는 눈물도 나지만 아기를 낳은 걸 후회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왜냐면 나에게는 언제든 필요하면 달려와주는 나의 엄마가 있으니까.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나의 아가가 방긋 웃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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