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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케이 May 02. 2022

자고 일어나니 빚쟁이가 되었습니다.

보증도  담보도 안되네요.  

월요일 아침, 출근이 두렵다. 출근하기 싫어서 오전에  아기 이유식 장부터 보러 갔다. 사장님께서

-뭐하러 직접 와요. 전화 주면 알아서 챙겨놓고 퇴근 전에 찾아가면 되는데.. 애기 엄마 출근하지 않아요?

-아.. 이쪽으로 올 일이 있어서 온 김에 시간도 남고 해서 들렀어요.. 오늘은 살게 많아서 메모까지 했거든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여하튼 부지런해. 애기 엄마.. 이제 9시 좀 넘었는데.. 계산해 줄게요..


장바구니 터지게 장을 보고, 신호 다 걸려서 학교 주차장에 도착해도 이제 9시 30분.. 주차장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데, 때마침 남동생 전화가 왔다. 얼마나 반갑던지.. 그냥 했다는데 내가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해대니, 아침에 안 바쁘냐고 딱 끊는다. 오늘따라 남동생도 그립다. 말 좀 더 걸어주지.. 차에서 내리려는데, 장바구니 밑이 축축하다. 앗불싸, 이유식용 고기들이 있었다. '줸장 아침부터 이걸 샀네.. 퇴근까지 이 날씨에 이걸 아.. 미치겠다. 한두 개도 아니고, 닭고기, 흰살생선, 새우.. 다시 가서 맡길 수도 없고.. 냉동제품만 챙겨 일단 사물실로 왔다. 주차장에 더 있고 싶었는데.. 별 같지도 않은 이유가 나를 일으켜서 움직이게 했다.  가끔 이런 예기치 않은 경우가 상황을 반전시켜 놓기도 한다. 하마 터면 하루 종일 차에 앉아 있을 뻔했는데 말이다.


휴게실에 들어서려는데, 그림자가 보였다. 일단 피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다시 확인하고 들어가서 재빨리 냉동실에 넣으려는데, 얼음박스가 그림 속 배경처럼 놓여있었다. 투명한 얼음도 한가득.. 이곳에 고기를 넣기가.. 넣을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고기 향 커피를 동료에게 아니 나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상상만 해도 화가 났다. 이건 아니다.. 내가 고기를 버리더라도 이건 너무 몰지각한 행동이다.. 결국 커피 한잔 뽑아 들고 한 손에 고기 비닐을 쥔 채 그냥 사물실로 왔다..


갑자기 독촉 알림이 왔다. 내가 이렇게 빚을 지게 될 줄이야 난 꿈에도 몰랐다.  

          "출간의 기회는 글에 집중할 때 찾아옵니다"

             -약속을 잘 지키는 우리 작가님 파이팅-

 "약속"을 잘 지키는..."우리 작가님"... 아.. 우리 작가래.. 갑자기 소속감이 확~이걸 어쩐다.. 난 약속을 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첫 글을 발행하던 날 매주 월요일, 금요일 이렇게 일주일에 2번 글을 쓰기로 첫 글에도 남겼으며, 독촉까지 기꺼이 받겠다고 알림 설정까지..


능력이 안 되면 안 입고, 안 먹고 분수에 맞게 살면 절대 빚 질 일 없고, 돈이 더 필요하면 더 벌고 파이를 더 쪼개든 파이를 더 키우든 남의 것을 가져다 내 인생 배불릴 일은 하지 않겠다고... 빚은 절대 없다고 아버지 사업 실패 이후 뒷감당이 너무 처참했기에 그 날이후 난 마음먹었고, 여태껏 참 잘 살아왔었다. 아빠 빚이지만, 가족 모두 감당했었다. 희생이라고 해도 좋고, 의무라도 해도 좋고, 나도 아빠 돈으로 살았으니 일부 나의 책임이라고 해도 좋다. 이건 가족이 갚을 수 라도 있으니 길이 보였다. 끝도 보였다. 미래를 꿈꿀 수도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큰 빚이 글 빚이라고 했는데... 글에 대해 무지한 내가 몇 자 쓴 글을 발행하면서 서툰 마음에 저지른 이 일이 불과 일주일 만에 밤바다 나를 옥죄어왔다. 사회 초년생이 쉽게 아주 큰 빚을 지는 이유는 경험이 없으니까.. 한 번도 직접 벌어 갚아 본 경험이 없으니까.. 내 것을 포기하고 남의 것을 먼저 내놓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작가라는 직업이 뭔지도 모르고 브런치가 좋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써둔 글을 매일 다시 읽고 고치고 다듬고.. 하나씩 쌓아가는 기쁨이 커지면서 나는 유혹에 빠졌다. "지금 브런치 작가에 도전해 보세요. 당신의 도전만 늦출 뿐.."


내 허영이 결국 글 빚을 지고 말았다. 글을 써주겠다는 약속... 나와한 그냥 결심 정도였는데.. 글 빚의 무게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과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가볍게 생각하고 글을 쓰겠다 고한 내 다짐이 빚이 될 줄이야.. 난 브런치에게 글을 써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 난 브런치에게 빚을 진 게 아니라, 나에게 빚이라는 짐을 글로 지웠다. 나 말고 이 빚은 아무도 갚을 수가 없다. 누군가의 희생도, 의무도 책임도 아니다. 단지 나는 약속을 했다. 약속은 지켜야 하고, 어긴다면 그에 합당한 다른 대안을 내놓아햐 한다. 내가 나를 뛰어넘겠다는 하찮은 욕심으로 글쓰기가 부담이 되어 버렸다. 오늘 아침 눈 뜨니 난 벌써 빚쟁이가 되어 버렸다. 아침에 온 알림 설정 창은 아직 그래도 열려있다.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 상황을 더 끌고 가야 할지 아니면 이 틀을 벗어던져야 할지 말이다. 그래도 매일 글쓰겠다고, 일주일에 2편 이상 쓰겠다고 무식하게 저지르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일주일에 2번이라고 나름 고민한 흔적이라고 있으니 어쩌면 노력하면 갚아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고 긍정적인 방향을 고려해 본다. 이게 아닌 건가?


오늘은 하루치 겨우 벌어 갚을 수 일을 것 같지만, 텅 빈 내 서랍은 다시 마이너스다. 누가 나를 기다리는 것처럼 브런치 글의 마무리는 항상 들뜨게 한다. 이거 정말 나를 또 빚지게 할 작정인가 보다. 글 벌이를 할 수 있다면 누가 나를 좀 고용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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