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 어때요? 힘들죠?'에 답변하기 위한 '사회정서교육 연구기'
2025년 8월 11일
요즘 언제부턴가 학생들의 학급자치회의에서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1학기 말, 학급에서 부스를 꾸미는 축제에 대한 회의에서도 그랬다. 일단 전반적으로는 나의 학창 시절의 학급회의 보다 훨씬 성숙함을 느낄 수는 있다. 다채로운 의견 개진, 예상되는 문제점 검토의 측면, 발언 순서를 정확히 지키는 등의 회의의 규칙 준수 측면도 훌륭한 것이지만, 일단은 교사가 개입하지 않아도 전혀 교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학생주도적이고 민주적인 회의 풍토는 가히 '교복을 입은 시민'이라고 이야기할 만한 것이다. 우리 때는 주로 교사의 지시를 전달받는 수준이거나, 일부 철인 같은 리더들을 따르고 돕는 식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부터 발생했다. 회의까지는 멋지게 이루어 냈으나, 그 이후의 일이 이상하리 만큼 진행이 잘 안 되었다.
이런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일단은 너무 형식적인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논의를 진행하다가도, 결국 의사 결정은 다수결을 통해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도 다수결이니까, 참 합리적인 방법이긴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에 가서 꼭 두 가지 안이 상충하게 되다가, 아주 근소한 차로 하나의 안이 선정되곤 했다. 그래서 하나의 의견으로 크게 모이는 단합의 분위기보다는, 자신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한 아쉬움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그러다가 결정된 안이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어느 누구도 구심점이 되어주지 못했다. 다수는 다수의 이름에 숨어 책임을 회피했으며, 소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 '그러니까 내 의견이 채택되었어야 하지 않냐'하는 식이었다.
갑자기 웬 요즘의 학급회의 이야기를 하냐고 물으신다면, 이것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사회정서교육적 내용이 김윤경 선생님의 책에도 나온다.
'만일 사회정서적 역량에 대한 고려 없이 단순히 토의와 토론만 한다면 학생들은 대립 확인, 자기주장 관철, 다수결 절차에 따른 맹목적 추종, 소수를 무시하는 태도만을 배울 지도 모른다. 성숙한 시민 역량을 고려하지 않은 민주시민교육은 민주주의 절차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사람을 양성할지도 모른다.'
요지인 즉,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처럼 '사회정서학습 자체를 민주시민교육을 위해서 실시할 뿐만 아니라 이미 효과적인 민주시민교육 방법으로 제안된 토론, 자치, 봉사 활동 같은 활동에 사회정서학습을 연계함으로써' 역시 상호보완적으로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꼭 다수결을 이용하여 하나의 부스를 결정해야 한다고 한 적도 없는데 왜 학생들은 딱 한 가지만 정하려고 그렇게 애를 썼을까. 어쩌면 하나의 정답 찾기에 길들여진 결과는 아닐까 하는 생각에 걱정도 되었다. 그래서 결국, 사회정서학습적으로 접근하는 법을 알려준다는 스스로의 핑계를 대며 내가 개입하고야 말았다. 계획서 마감을 하루 넘길 때였고, 축제는 일주일도 안 남은 날이었다. 시간은 무척 촉박했지만, 내가 제안한 것은 간단했다. '최대한 모든 학생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듣기'였다.
중간중간 또다시 안 되는 쪽의 이야기들이 또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했지만, 우리 중학교 생활 중 마지막 학급부스 축제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친구들이 자신의 생각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쪽으로 하자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안 될 이유보다는 될 이유를 찾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보자고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 반은 결국 하나의 의견으로 모으는 것에 실패했다. 대신, 자신의 소질과 적성과 취향과 희망에 따라서 어느 정도로 무리는 지음으로써 네 개의 부스를 운영했다.
그리고 또 결국, 학급회의에 실패한 우리 반은 결과적으로는 우수 학급부스 상을 받게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다수결에 의해 죽었다.
지혜를 사랑하여, 그 지혜를 찾느라고 세상에 느낌표 대신 물음표를 던진 결과였다. 학급 부스가 척척 기계적으로 잘 돌아가지 않으면 좀 어떤가. 뚝딱뚝딱 매끄러운 솜씨로 사람들에게 양질의 결과물을 제공하며 대성공을 이루는 부스도 훌륭하지만, 한 구석에서 홀로 물음표를 좌판에 늘어놓는 부스도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게 사회정서교육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간의 물음표만 잔뜩 내놓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물음표를 그대로 인정하고 경청하는 것이야말로 사회정서교육의 근간이라는 생각도 든다.